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사진출처) 미디어파사드로 외벽을 장식하였다.[1][2]
벤츠 타고 서울에서 대구 가던 시절
광주여객주식회사(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가 공개한 옛 벤츠 고속버스.
회사 슬로건은 크고 아름다운 기업 저 형제의 난을 보고도? 뭐 어때 선진네트웍스는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도 하던데
1 소개
대한민국의 재벌, 대규모 기업집단 중 하나로, 금호고속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금호(錦湖)는 창업주 박인천의 호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에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과 세종대로네거리 사이에 있다.
한진그룹처럼 여객/물류 운수업으로 시작한 기업집단이지만, 운송업이 그룹의 시작 및 기반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금호타이어 때문에 단순히 타이어를 만드는 석유화학 회사로 생각하기 쉽다.
창업주는 박인천(1901~1984)이다. 1946년 광주택시,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이후 광주고속을 거쳐 현재 금호고속)을 창업함으로써 그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88년에는 제2민항인 아시아나항공을 세워 취항했다. 2004년에는 현재의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기존에는 금호그룹), 2006년에는 현재의 C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박인천 창업주가 1984년 타계한 후 자녀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찍지 않고, 2세대가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져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독특한 가풍을 갖고 있었다. 2세대 중 장남 박성용(2대 회장, 1984~1996), 차남 박정구(3대 회장, 1996~2002) 시절에는 이게 잘 됐다. 그런데 3남, 4남인 박삼구(4대 회장, 2002~현재), 박찬구 대에서 망했어요. 아래 나오는 무리한 확장으로 형제들간에 사이가 벌어져서 결국 4남 박찬구가 금호석유화학을 가지고 나가는 방식으로 그룹이 쪼개지게 생겼다. 박찬구:나라도 살아야겠어!!!
박인천 창업주의 딸 박현주는 조미료인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임창욱 회장과 결혼했다.(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온 딸 임세령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과 1998년에 정략 결혼하지만, 2009년에 이혼했다.) 흥미진진
금호그룹은 한진그룹과 물류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으나, 사실 한진에 밀린 만성 콩라인이었다. 이를 제치기위해 지속적인 M&A를 시도하였고,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여 2007~2010년간 한진그룹을 제치고 재계순위 9위를 차지하는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에게 승부사, 마이더스의 손 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던 이 M&A들이 그룹을 좀먹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건은 형제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무리한 M&A로, 결국 유동성 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형제의 난을 얻는 최대 요인이 되었다.
결국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에서 다시 회수해갔고, 대한통운 역시 CJ그룹에 팔렸다. 문제는 대한통운 밑에 금호터미널이라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버스 터미널을 전부 소유한 회사를 이미 만들어 놓아서, 대한통운을 팔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정체성까지 흔들리게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에서 이 계열사들을 재인수함으로써 논란은 종료되었으나, 이번에는 금호고속[3]을 저당잡히고 돈을 빌려서 그룹을 살리겠다고 하고 있다(...).[4]
이 대한통운과 대우건설 인수에 그룹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몇몇 우량 계열사가 매각되었다.
그룹차원에서 대한통운이 보유한 현금을 빼오기 위해 배당, 유상감자 등과 함께 몇몇 계열사의 지분을 대한통운에 비싼 값에 매각하였는데, 그 중에는 렌터카시장 부동의 1위였던 금호렌터카도 있었다. 금호렌터카를 대한통운의 렌터카 사업부와 통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한다는 명분아래 팔았다 대한통운에서 합병하였다#. 이후 다른 대한통운 계열사와 다르게 한창 재벌놀이에 심취중이던 KT에 매각되어 KT렌탈과 합병, KT금호렌터카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다시 매각되어 롯데그룹에 피인수, 롯데렌터카 로 바뀌었다.
위에 나온 금호터미널, (주)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공항개발 또한 물류산업을 통합하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분 하에, 실상은 대한통운의 현금을 빼오기 위해 팔았다. 그런데 이 3개회사는 금호고속, 아시아나항공의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므로, 위에 나온 것처럼 대한통운을 매각하면서 되사왔다. 문제는 대한통운을 인수하였을때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반반씩 지분을 인수하였는데, 대한통운 매각시 이미 대우건설을 매각한 이후였기 때문에 볼꼴 못볼꼴 다 보고 결별한 대우건설이 대한통운의 1대 주주자격으로, 샀던 가격 이하로는 못판다고 나와서 결국 더 비싸게 주고 사와야 했다.
또한 금호생명은 한국산업은행에서 인수하여세금으로 재벌놀이 뒷처리해 KDB생명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정책으로 산은 계열사가 되어 안전히 운영하나 싶었는데, 박근혜정부의 민영화 취소로인해 2016년 현재 재매각 대기상태이다.
금호종합금융은 우리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우리종합금융이 되었는데,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으로 인해 앞날을 담보할수 없는 상태이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최대 주주였다. 경기가 좋을 때만해도 계열 건설사에서 복합 터미널로 재개발한다고 떠들었었는데, 보유 지분을 전부 사모 펀드에 매각하였다. 결국 당시 알짜 매장이었던 인천점이 위치하였던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롯데에 빼앗긴 신세계그룹에서 강남점마저 뺏길까 우려되어 인수하였다.
최근에는 오너가 3세들이 대우건설 인수로 본 손해를 벌충하기 위하여 자본잠식 상태의 부실기업 지분을 계열사에 떠넘기고 그 매각대금으로 우량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엽기적인 행태가 드러나서 검찰 수사중이다.금호가 오너 3세들, 부실 계열사에 손실 떠넘겼다.
가장 대표적인 호남 지방의 기업이나, 정작 그룹에서는 호남의 지역색을 가능한 줄이려고 하는 입장이다. 사실 기업의 규모 자체도 대단히 커서 더 이상 향토기업이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도 곤란한 상태이기도 하다. 창업주의 5남인 박종구가 지역색이 다른 이명박 정권 하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지내고,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을 만드는 등 그룹 차원에서는 적극적인 듯. 이 때문에 호남 연고의 프로 스포츠 얘기에서 '금호그룹의 지원은 안될거야 아마'는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다.[5]
다만 스포츠 문제의 경우엔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본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부터 현재까지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 및 인재 육성에 노력을 기울인 대신 상대적으로 프로 스포츠 분야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한때 금호생명에서 WKBL 팀을 운영했던 게 거의 전부였고 이마저도 한국산업은행에 인수되어 현재는 구리 KDB생명 위너스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학법인 죽호학원에 소속된 광주 금호고등학교(운암동 소재)는 광주 FC의 U-18 유소년클럽이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 중에서도 클래식 분야에 대한 후원은 상당한 수준이며 체계적이다. 이렇게 된데에는 故 박성용 회장이 상당한 수준의 클덕 클래식 애호가였던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는 영재 육성에 관심이 많았기에,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 있는 한국인 신예 음악가 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후원을 받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 서울의 옛 본사 건물[6]과 광주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 안, 그리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7] 금호아트홀이라는 실내악 홀을 만들어서[8] 싼값에 좋은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매년 영재들을 심사해서 이곳에서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그외에 각종 지원을 한다. 또한 워낙 몸값이 비싸서 수지타산이 안맞아 대한민국에는 못 데려오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성사시켜 정기적으로 오게 만든 것도 금호아시아나였다.[9] 오죽했으면 박성용 회장 장례식에 재계보다 클래식계에서 조문을 더 많이 왔을 정도였다.[10]
2 계열사 목록
- 금호산업 : 그룹의 지주회사. 아시아나항공 등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무리한 대우건설인수로 경영이 악화되자 2010년 채권단에 매각했다가 경영권을 다시 되찾았다. 2015년 9월 24일 박삼구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여 7228억원의 가격에 이 회사를 재인수하기로 계약했다. 기사 자세한 회사 설명은 항목 참조.
- 금호고속 [11]
- 금호터미널
- 금호타이어 [12]
- 아시아나항공
- 아시아나에어포트(AAS) [13]
- 에어부산
- 아시아나IDT
- 아시아나세이버(구. 아시아나애바카스)
- 아시아나개발
- 에어부산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 금호아시아나인재개발원
- 죽호학원 [14]
2.1 금호석유화학의 계열분리
2016년 기준 금호석유화학그룹 소속 회사
- 금호석유화학
- 금호피앤비화학
- 금호개발상사
- 금호알에이시
- 금호미쓰이화학
- 금호티앤엘
- 금호폴리켐
- 코리아에너지발전소
- 철도솔라
- 여수페트로
- 영광백수풍력
박찬구 회장 소유, 2009년에 벌어진 통칭 박삼구 회장과의 형제의 난 이후로 금호아시아나와는 계속 분리된 상태였고, 그중에 공정위가 "친족분리 조건 미충족"이라는 이유로 14년 4월에 금호아시아나와 함께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으로 지정하자 박삼구 회장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는데 15년 7월 서울고법이 박삼구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계열분리가 가시화될 예정이다.15년 12월에 대법원이 계열분리 판정을 내렸다.
2.1.1 형제공동경영 체제의 종말
4형제 중 둘째인 2002년 박정구 3대 회장이 먼저 세상을 뜨면서 3남 박삼구가 2002년 4대 회장에 취임하며 사명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하였다. 이 때 첫째 박성용 2대 회장이 동생들과 함께 ‘형제공동경영합의서’를 작성한다. 이 합의서를 주목할 것. 초기 합의서에는 그룹 회장직은 65세까지이며 최장 10년을 넘기지 않을 것, 회장직은 4가계 합의로 추대할 것, 4형제가 그룹 지분을 동일하게 보유할 것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장남 박성용 명예회장이 뒤이어 작고하자, 박삼구 4대 그룹회장이 합의서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우선 ‘65세, 최장 10년’ 조항이 삭제됐고, 그룹 회장에 대한 4가계 의견이 엇갈릴 시 다수결원칙과 연장자 의견에 따른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2006년 수정안에서는 그룹 존속 위해 그룹 분할, 해체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2008년 수정안에서는 합의서 위반 시 소유 주식에 해당하는 금액 50%를 다른 가계에 보상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합의서가 수정될수록 형제간 골은 깊어가고, 심지어 2008년 수정안에는 박찬구 회장이 서명 날인을 하지 않았다.[15] 이 갈등은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까?
금호 가(家)의 분리, 사건의 발단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로부터
위기의 단초, 빗나간 ‘신의 한 수’
박삼구 4대 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업을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크고 아름다운 기치 아래 당시 종합시공능력 평가 1위의 초 우량 건설회사였던 대우건설의 주식 72.1%를 무려 6조4255억원에 인수한다. (당시 국내 일반기업 M&A사상 최대 규모) 천문학적인 인수금액을 감당하기 위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2조 9천억원의 대부분을 금융사에서 차입하고, 나머지 3조5천억원은 연기금과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를 통해 조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FI들로부터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위임 받는 대신 3년 뒤인 2009년 FI 보유 주식을 주당 3만4천원에 되사는 풋백옵션을 체결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3남 박삼구 회장과 4남 박찬구 당시 화학부문 회장이 갈등을 빚게 된다. 박찬구 회장은 유동성 위기를 우려해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묵살당했고, 2009년 우려가 현실화되자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했다. 이로 인해 ‘형제공동경영합의서’ 상 동일지분 보유 항목이 위반되긴 했으나, 4가계 합의 룰을 깨고 독단적인 경영으로 합의서를 무색하게 한 건 박삼구 회장이었으며 주식 매입은 금호석유화학까지 유동성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게 박찬구 회장 입장이다. (현재 재무건전성을 보면 금호석유화학 분리는 박찬구 회장의 신의 한 수)
2008년 금융위기 직격탄과 워크아웃 및 자율협약 돌입
다시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 상황로 돌아가 보자.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에 공황이 찾아와 증시가 추락한다.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 풋백옵션 행사 시기가 다가오는데, 건설업 불경기로 대우건설의 주가는 3년 전인 2005년 11월 인수계약 체결 당시의 약 1만3천원에서 오히려 1만원 전후로 하락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채무부담을 가중시켰다. (주당 3만4천원에 도달하지 못할 시 금호그룹이 그 가격에 투자자들의 주식을 모두 매입해야 함, 망했어요) 채무불이행에 의한 부도를 맞을 위기에서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도 자율협약에 돌입하게 된다.
2.1.2 금호석유화학, 독자 그룹으로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할 당시만 해도 금호석유화학은 차입금이 2조 2,307억원, 부채비율은 498%에 달했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은 업계 호황 하드캐리로 2010년과 2011년 역대 최고의 실적을 내고, 역대 최고 신용등급인 A-를 달성했으며, 2012년 11월 기준 부채비율을 189%까지 끌어내리는 등 경영정상화를 준수하게 달성하며 2012년 말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2011년에는 독자적인 비전인 ‘VISION 2020’을 선포하고 실질적인 분리 경영을 이어갔으나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으로는 계속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속이었다. 2015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금호석유화학 계열분리 소송에서 승소하며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법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었다.[16]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한 것이 소송과는 아무 관련 없는 금호석유화학에게는 호재로, 승소한 금호아시아나에게는 부채가 늘어난 영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진 건 재미있는 상황. 박삼구 회장의 큰그림?
금호석유화학그룹은 경영이 분리된 후에도 여전히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금호석유화학그룹 페이지 참고.
2.2 계열사였다가 지분매각
- CJ대한통운 [17] "대한통운" 만 매각하는것으로 그 산하의 다른계열사는 제외였다. 금호그룹이 대한통운을 보유하고 있었을때 대한통운의 현금을 빼오기 위하여 금호터미널, 한국복합물류, 아시아나에어포트, 금호렌터카 등의 회사를 비싼값에 매각하였었는데, 대한통운의 재매각시 금호렌터카는 KT에 매각하였고, 다른 자회사는 분리하여 아시아나항공으로 재인수되었다. 그래서 대한통운이 가진 금호터미널 부지를 눈독들이고 인수전에 참여하였던 롯데는 나중에 빠졌다.#
- 대우건설
- 대우빌딩 (서울스퀘어)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 대주주였음, 신세계에 지분매각됨.
- 롯데렌터카 (구 kt금호렌터카)
- 금호종합금융
- KDB생명 (구 금호생명)
- ↑ 사진에 보이는 쪽이 아니라 뒤쪽이 미디어파사드이다. 한때 금호그룹의 손에 있었던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에도 미디어파사드가 있다.
- ↑ 사옥 바로 옆에 흥국생명 본사가 있는데, 여기엔 그 유명한 조너선 브롭스키의 조각상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있다. 옆에 있는 금호아시아나는 이것 때문에 풍수적 문제를 지적받았다.(...) #
- ↑ 금호산업주식회사 고속사업부
- ↑ 다른 계열사도 아니고 하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신이자 상징과도 같은 금호고속을 희생시키겠다는 뜻이라서 회사 내외에서 말이 좀 많이 있는 편이다.
- ↑ 프로야구 초창기에 호남색이 가장 짙었던 금호그룹이 야구단 창단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스포츠에 관심이 적었을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지역색을 지우고 싶어했었다. 결국 삼양, 교보에도 거절당한 호남권 프로야구단은 해태제과에 인수되면서......,
- ↑ 위에서 설명한 인수합병시 하필 이 건물을 대우건설에 배정했고 그 결과 현재는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대우건설의 본사가 되었다. 음향에 신경써서 워낙 실내악 전용 공연장으로 제대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대우건설 쪽에서도 방빼를 시전하기 어려웠고, 덕분에 대우건설 본사인데 3층만 금호아시아나가 쓰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 ↑ 이쪽은 2015년 현재 그룹 회장인 박삼구가 연세대학교 동문회장이라 기부금을 출연해서 만들었다. 광화문에 있던 원래 금호아트홀과 구별을 위해 이쪽은 금호아트홀 연세라고 부른다.
- ↑ 광화문 금호아트홀에는 심지어 박성용 회장이 생전에 매번 앉던 좌석이 따로 있다. 치우쳐 있는 곳이라 이른바 VIP석도 아니고 오히려 싸게 팔 가능성이 높은 자리지만 연주자는 잘 볼 수 있어서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리이다.
- ↑ 티켓 값이 최고 45만원이어서 올때마다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워낙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니 그래도 표는 다 나간다. 문제는 개런티가 워낙 세서, 그래도 약간 적자가 난다 카더라.
- ↑ 스포츠 캐스터로 유명한 임용수가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연이 있다. 성악과를 졸업한 후 1993년 금호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맡은 직책은 금호그룹의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인 클래식 음악 후원 재단의 직원으로 근무.
- ↑ 2012년에
울면서매각.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사들인다는 조건이 붙어있지만... 2015년 5월 26일에 3년만에 드디어 다시 사들였다. (금호고속이 보유한 금호리조트 48.8%도 함께 인수한다.) 그룹은 모태기업인 금호고속 재인수를 시작으로 그룹 재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듯. - ↑ 현재 채권단에 지분이 넘어가있다. 금호산업도 같은 처지의 상황, 금호산업은 채권단이 회계법인 평가를 거쳐 7월 결정할 매각가를 박 회장이 받아들이면 그룹으로 복귀하고, 금호타이어는 연내 지분매각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8월 현재의 상황을 보면 금호산업은 예상밖의 높은 매각 협상가때문에 협상이 표류하고 있고, 금호타이어는 실적 부진과 노사 갈등으로 인해 여러모로 영 좋지 않은 상황. 게다가 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워크아웃을 앞둔 이 두 회사가 발행한 CP를 사들이는 부당 내부거래를 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 ↑ 아시아나항공의 조업사이다. 항공사마다 필수적으로 조업사는 존재한다. 대한항공의 조업사는 한국공항(KAS) 이다.
- ↑ 광주중앙중학교, 금호고등학교,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금파공업고등학교.
- ↑ 류현정, 공동경영합의서와 금호家 '형제의 난', 조선비즈, 110623|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3/2011062301096.html
- ↑ 류형열, 대법원,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다른 기업 집단”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12130940201&code=920100#csidx6aa3adef3ce1b2d9cba6bbb81fcf91d
- ↑ 인수전 막바지에는 친족간인 CJ그룹과 삼성그룹마저 참여하면서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급의 치열한 인수전을 보여주었다. 당시 CJ에서는 삼성증권에 인수 관련 자문을 맡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삼성SDS에서 포스코와 협력하여 인수전에 뛰어들더니 삼성증권에서 인수자문을 철회해버렸다. 삼성증권에서 갖고있던 CJ의 정보는 어디로 갔을까? 덕분에 CJ측에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었고, 시장에서는 포스코+삼성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었는데, CJ측이 분노파워로 가격을 무려 5000억원씩이나 높게 써내는바람에 인수에 성공하였다,
나중에 10% 깎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