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시절.
SK 와이번스 시절.
롯데 자이언츠 No.86 | |
박정환(朴廷煥) | |
생년월일 | 1977년 10월 23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서울효제초-청원중-동대문상고-동국대 |
포지션 |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2차지명 4라운드(전체 46순위,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00~2007) SK 와이번스(2008~2011) |
지도자 경력 | SK 와이번스 전력분석관(2012~2013)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2014~2015) 롯데 자이언츠 수비코치(2016~)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 |||||
빌리 홀(1999) | → | 박정환(2000~2007) | → | 박석민(2008~2010) |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한 내야수. 등번호는 8번(삼성) - 6번(SK). 현재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 선수 시절
동대문상고 시절부터 주목받은 선수로 1996년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지만, 동국대학교에 진학한다. 1999년 전국 대학야구 춘계리그 최우수 타격상을 수상하였다. 졸업 후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며, 2002년에는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1][2] 그러나 이후 2003년 초 한화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넘어온 재일교포 고지행이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하며 백업으로 밀렸고,[3] 설상가상으로 2004년 FA를 선언한 2루수 박종호의 영입으로 아예 입지가 좁아지고 말았다. 2004년 말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6개월 간의 복역 이후 2005년에 받은 재검에서 완전 면제 판정[4]을 받았다.
그럭저럭 괜찮았던 내야 백업요원이었으나, 삼성에서 방출되기 몇 년 전부터는 유독 욕을 많이 먹었다. 선동열 감독이 박정환을 양준혁과 플래툰으로 사용했기 때문.[5]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2007 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1사 1,2루 상황에서 배트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삼진당하면서 까임은 극에 달하였고, 결국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주로 대타나 내야 유틸리티 수비요원으로 출장하였다. 2010년 초반 16연승을 내달릴 때 꿋꿋한 밀어치기로 4할의 타율을 넘나들며 팀의 상승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고 '노망주'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이 16연승은 SK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큰 버팀목이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16연승 기간동안 임훈과 함께 그를 최고의 공헌 선수로 꼽았을 정도. 하지만 5월에 타격감이 떨어지면서 실책마저 계속 범하고, 결국 2군으로 내려가기에 이른다. 종종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이때와 같은 의미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0년 9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최종전 8회 4: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이브 왕 손승락을 상대로 동점을 만드는 적시타를 터뜨려 역전승에 공헌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었지만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1년에는 9경기 출장에 그쳤고,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시절
2011 시즌 후 은퇴해 SK 와이번스 전력분석관이 되었으며, 2013 시즌 후 2군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2015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의 2군 수비코치로 합류했다.
4 트리비아
선수 시절에는 2002년 외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으나, 의외로 반지 캡터의 자질을 갖고 있다. 삼성에서 2개(2002년, 2006년[6]), SK에서 2개(2008년, 2010년[7])를 합해 총 4개의 우승 반지를 챙겼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
2000 | 삼성 라이온즈 | 47 | 60 | .267 | 16 | 4 | 0 | 2 | 5 | 19 | 0 | |||
2001 | 84 | 217 | .263 | 57 | 8 | 3 | 5 | 36 | 30 | 0 | ||||
2002 | 119 | 316 | .234 | 74 | 12 | 2 | 9 | 36 | 49 | 3 | ||||
2003 | 81 | 177 | .237 | 42 | 12 | 0 | 1 | 20 | 24 | 0 | ||||
2004 | 29 | 33 | .121 | 4 | 0 | 0 | 0 | 3 | 3 | 0 | ||||
2005 | 26 | 38 | .184 | 7 | 1 | 0 | 1 | 7 | 5 | 1 | ||||
2006 | 43 | 91 | .165 | 15 | 1 | 0 | 0 | 2 | 8 | 1 | ||||
2007 | 46 | 76 | .224 | 17 | 3 | 1 | 0 | 5 | 7 | 1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
2008 | SK 와이번스 | 25 | 50 | .240 | 12 | 4 | 0 | 1 | 6 | 3 | ||||
2009 | 45 | 60 | .317 | 19 | 4 | 0 | 1 | 9 | 4 | 2 | ||||
2010 | 44 | 92 | .304 | 28 | 9 | 0 | 1 | 10 | 15 | 0 | ||||
2011 | 9 | 9 | .222 | 2 | 1 | 0 | 0 | 2 | 1 | 0 | ||||
통산 | 598 | 1219 | .240 | 293 | 59 | 6 | 21 | 141 | 168 | 9 |
- ↑ 이 해가 박정환이 1군에서 가장 많이 뛴 유일한 해다.
- ↑ 여담으로 박정환과 김재걸 이 둘이 번갈아가며 삼성의 2루수를 맡던 시절이었던 2002년에는 '삼성의 2루수는 쉬어가는 타선이다' 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두 선수 다 타격이 시원찮고 수비로 버티는 선수였는데다가, 당시 삼성의 중심 타선에 이마양이 버티고 있었으니...
- ↑ 당시 클린업 트리오를 내세워서 공격야구를 하였던 삼성에 타격이 괜찮았던 고지행이 들어오자 수비형 선수였던 박정환은 당연히 벤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 ↑ 보통 사람보다 콩팥이 작은 위축신으로 굳이 병역비리 없이도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감방에서 삽질.
- ↑ 또한 이 때 한대화 수석코치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동국대 라인이란 말이 나왔다. 박한이도 한대화의 손을 거쳤다.
- ↑ 2005년에는 팀이 우승했지만 박정환 본인이 한국 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 한국시리즈에 한 경기도 나오지 않고 반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