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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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81
박종호 (朴鍾皓 / Jong-ho Park)
생년월일1973년 7월 27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관악구
출신학교서울구암초 - 성남중 - 성남고
포지션2루수
투타우투양타
프로입단1992년 고졸 연고선수 자유계약
소속팀LG 트윈스(1992~1998)
현대 유니콘스(1998~2003)
삼성 라이온즈(2004~2008)
LG 트윈스(2009~2010)
응원가동요 밀과보리가 자라네[1][2]

1994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강기웅(삼성 라이온즈)박종호(LG 트윈스)이명수(OB 베어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정태(롯데 자이언츠)박종호(현대 유니콘스)안경현(두산 베어스)

2004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안경현(두산 베어스)박종호(삼성 라이온즈)안경현(두산 베어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마해영(롯데 자이언츠)박종호(현대 유니콘스)양준혁(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2004 ~ 2008)
틸슨 브리또(2002 ~ 2003)박종호(2004 ~ 2008)존 에니스(2008)

1 소개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현재는 LG 트윈스의 1군 수비코치.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정교했던 스위치 히터

등번호는
67번(LG, 1992~1998 시즌 중) -
31번(현대[3], 1998~2003 - 삼성, 2004~2008 시즌 중 - LG, 2009~2010[4])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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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때 LG 트윈스 1기 시절.
이종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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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 최전성기를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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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큼 좋게 보낸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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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돌아온 LG 트윈스 2기 시절.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으로 1992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그 해 시즌 종료 후 스위치 히터 전환을 시도하였고, 1993년에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원래 스위치 히터를 안하려고 마음먹었으나 타력덕후 김용달 타격코치와 약간 자존심이 상할 마음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너를 마음껏 밀어 줄테니 한번 바꿔서하자 실패하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 너는 따라와라"라고... 하면서 스위치 히터로 전환한거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 그 해 2할 6푼 타율에 21도루로 같은 팀 유지현과 준수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면서 2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

그러나 1995년에는 손목 부상과 방위병 복무로 인해 1군 61경기 출장에 그쳤고, 1996년에는 방위병의 경기 출장이 전면 금지되면서 잔여 기간 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1997년까지 2년 연속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이는 곧 밑에 서술되어 있듯 현대 유니콘스트레이드된 계기가 되고 만다. 거기다 그 당시 LG 내야진은 신국환, 안상준, 권용관 등 센터 내야 자원이 많았기 때문에 방위 복무와 부상으로 고전했던 박종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애초에 부상 선수를 위한 자리가 프로에 어디에 있는가?

1998년 좌완투수 최창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게 되는데,[6] 이 때는 박진만과 호흡을 맞춰 류중일 - 강기웅 키스톤 콤비 이래 박진만 - 박종호라는 최강의 키스톤 콤비가 탄생되었다.[7] 이후 현대에서 3번이나 우승을 맛보게 된다.[8]

이후 현대에 있던 키스톤 콤비는 삼성에서도 이어지나 이후에는 그의 부상이 찾아오면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의 박진만의 파트너였던 박종호의 자리에는 김재걸이 땜빵으로 메워 주다가 2007년부터 신명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인 1999년 2루수와 3루수로서 3할 타율에 10홈런 13도루를 기록, 이듬해의 대활약을 암시하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 해의 10홈런은 2000년과 더불어 둘 뿐인 박종호의 두 자리수 홈런. 다만 이 해 1999년도의 골든글러브는 팀을 포시에 이끌고 .329의 고타율을 기록한 박정태에게 돌아갔다. 박종호가 받았다면 홍현우가 분노했겠다. 덤으로 이 해 박종호가 맞은 사구가 무려 31개나 된다.[9]

2000년 소속 팀이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울 때는 미묘하게도 성이 같은 박경완, 박재홍, 박진만과 같이 역사상 최강의 골글 센터라인 [10](포수 - 유격수 - 2루수 - 중견수)을 구성하였고 121경기 .340 타율로 타격왕[11]에 올랐으며 이 해에 59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다.[12] 2루수이자 스위치타자 타격왕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이 해의 한 가지 흠이라면 코시에서의 실책.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초 병살성 타구를 최고 수준의 수비를 보여주던 박종호가 실책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는 3연승 내리 달린 후 3연패를 하면서 사지에 몰리지만 7차전의 톰 퀸란의 활약으로 역대 최강 팀의 이름에 걸맞게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으니 박종호에게 다행이라면 다행. 참고로 7차전에는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현대의 창단 첫 우승이자 핵심 멤버였던 노장 이명수가 2루를 맡았다.

허나 2001년 전 해의 활약이 무색하게 .241로 규정 타석 꼴찌행(..) 무려 1할이나 떨어졌다. 물론 전 해 멤버들이 거의 예외없이 0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우승만을 보고 달린 작년의 후유증으로 볼 수도 있었으나, 어찌됐건 팀의 정규 시즌 2위 달성에 힘을 보탰다. 2002년과[13] 2003년에는 [14] 조금씩 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팀의 3번째 우승을 이끌었다.[15]

FA 자격[16] 얻어 2003년 11월 말 삼성 라이온즈와 4년 22억에 계약을 맺어 이적하게 된다. 사실 삼성은 그 해 정수근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정수근이 롯데로 이적하자 당시까지 취약점으로 꼽히던 2루수 보강을 이유로 데려온 것이었다.[17] 현대에서는 보상 선수로 노병오를 지명했다. 한편 보상선수 노병오는 현대에서 얼마 못가서 은퇴했다.2004년에는 2003년 말의 연속 안타 기록을 그대로 이어가는 등 꾸준히 활약을 하였으며,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때는 삼성이 박종호의 연속안타 이벤트를 열었을 정도.[18] 이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10년 후인 2014년에 KBO가 비 더 레전드라는 일종의 게임으로 쓰이게 된다. 2004년에도 작년과 비슷한 성적을 찍었다. 수비에서는 괜찮았고 골든글러브도 4년만에 탈환하였다.

2004년 플레이오프 두산戰 경기에서 큰부상을 당한 기점으로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부상으로 2007년도 부터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거기에 당시 각동님의 야구 스타일인 기동력 야구에 맞지 않았던 그는 신명철이 영입되면서 비중이 줄어들게 되자 2008 시즌 도중 한화에서 건너온 용병 제이콥 크루즈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사실상 은퇴에 몰렸지만, 2008 시즌 후 친정 팀 LG 트윈스 감독으로 있던 옛 스승 김재박[19]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LG와 계약하며 복귀하게 되었다. 2009년에는 괜찮은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이후에 박경수가 2루수로 전향하면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010년 5월 27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9월 26일 잠실 삼성전에서 은퇴식을 열었으나 그 날 LG는 차우찬의 완투 쇼에 막혀 패했다....

3 코치

은퇴를 선언하자마자 2군 야수 인스트럭터로 LG 구단에서 임명하여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2군 수비코치를 맡고 있다가 2015년 6월 15일 서용빈과 함께 1군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LG 선수들의 답없는 수비 능력 때문에 가루 단위로 까이기도 한다.
2016년 들어서는 과감한 수비 시프트를 선보이고 있다. 결과는 나름대로 성공하는 편.

4 여담

우투양타의 스위치 히터로 2000년 시즌 타율 0.340으로 타격왕에 올랐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양손 타자(스위치 히터) 타격왕이었다.[20] 그리고 타격왕이 나온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못 한다는 징크스를 최초로 깬 타격왕이다.

유일하게 타율왕 다음해에 정규타석 타율 꼴지를 차지한 선수이기도 하다.(2000년 .340 2001년 .241)

이외에도 59경기 연속 출루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2001년 펠릭스 호세가 깨 버렸다.[21] 이 정도면 최태원과 더불어 연속 기록의 달인.

외모와 달리 싸움 실력이 대단한 선수였다고 한다. 선수들이 꼽은 싸움짱 1위로 꼽히기도 했다. 1997년 LG와 롯데의 사직 경기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당시 롯데 주전 2루수 박정태와 시비가 붙어 양팀의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박정태도 작은 체구와 달리 싸움에서 2인자라면 서러운 선수라 둘이 제대로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22]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후 대구광역시 달서구 본리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빵집을 열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다. 다만 가족은 은퇴 전까지 대구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종호의 아들이 대구에 있는 리틀야구단에 뛰고 있다는 소식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이 알려지면 추가바람.

선수시절 구레나룻수염을 기른 선수로 유명했는데, 실제로도 온 몸에 털이 많은 체질이였다.90년대 LG선수들 흑백 사진 모음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2LG 트윈스4573.1921401171008.260.272
199391316.2638315463342833.392.331
1994105335.26087146
(1위)
656592158.391.366
199561207.2515253022261228.304.331
1996군복무(공익근무)
199765160.219354201116229.269.337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8LG / 현대103218.229508221838845.312.358
1999현대 유니콘스119396.3011192941055791359.470.388
2000121441.340
(1위)
150303104889973.490.428
(2위)
2001123456.24111012396567564.340.331
2002108402.26610715275358436.366.326
2003131502.29314726466190665.396.371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4삼성 라이온즈132514.28214525085978756.377.350
2005119392.26810521043663564.352.368
2006104273.2386513013065337.297.325
20071727.18553004001.296.214
20083382.232192005809.256.304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9LG 트윈스62161.267435111116023.329.357
통산15394955.27013362273571584761103686.373.356
  1. LG의 박종호, LG의 박종호 안타한방 날려줘요 LG의 박종호, 랄라랄라 랄라 랄라랄라랄라 안타한방 날려줘요 LG의 박종호
  2. 이 응원가는 박종호의 은퇴후 김태완이 물려받는다. 김태완의 삼성 이적후 아직까지 주인은 없다.
  3. 원래는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 돌핀스 시절 키워낸 좌완투수 최창호의 등번호이나, 양자간의 맞트레이드로 박종호가 물려받는다.
  4. LG 시절에는 차명석의 등번호였다.
  5. 실제로 둘이 꽤 비슷한 점이 많다. 같은 팀 소속이였고, 스위치히터에 내야 포지션을 두루(박종호는 2루수외에도 1,3루도 가능했다.)섭렵한 점까지.
  6. LG 트윈스의 트레이드 흑역사가운데 하나이며 이때의 LG 팬들의 허탈감은... 그러나 그 후에 이보다 허탈할 일이 더 많아지게 된다.
  7. 원래는 기존의 2루수 이명수가 따로 있었으나 이명수는 김경기가 부진하자 1루수도 봤다. 박종호는 2루와 3루를 번갈아 보다가 후에 철벽수비와 한방을 자랑하던 톰 퀸란이 오면서 2루수로 완전히 안착했다.
  8. 1994년 LG 시절과 2005년, 2006년 삼성에서의 우승을 포함한다면 총 6회의 우승을 경험했다.
  9. 종전 기록이던 공필성의 기록을 바꿨다.
  10. 또는 밀레니엄 4박 이라고 불렀다.
  11. 역대 최초 스위치 히터 타격왕 그리고 타격왕에 오르는 타자는 그 해 우승을 못한다는 징크스를 완벽하게 깼다.
  12. 이 기록은 이듬해 펠릭스 호세가 60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경신했다.
  13. 다소 민망하지만 0.266
  14. 0.293
  15. 현대의 자율 훈련에 본인도 너무 만족한 나머지 훈련을 제때 하지않고 노는것에 정신없었다고... 박동희 칼럼 참고
  16. 이적을 하게 된 계기는 현대가 2001년 이 후로 재정난에 삐꺽했는데 그 해 같은 팀 FA 주장 이숭용이 있었다. 현대는 먼저 프렌차이즈 스타인 이숭용을 먼저 면담 후 계약을 했다. 박종호는 금액에 조금 차이가 있어 삼성이 접근하였다.
  17. 당시 삼성의 2루 자리는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 선수물빠따였던 김재걸박정환이 번갈아가며 맡았다.
  18.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결과, 링거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경기에 출장했었다고 한다.
  19.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
  20. 다만 김재박의 밀어주기도 있었다. 12경기에 일부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 그런데 김재박은 2009년에도 또 한 번 이 짓을 한다.
  21. 당시 호세에 대해 견제가 심했기 때문에 볼넷으로 출루하기 일쑤.
  22. 1년 선배 강병규조차도 두려워했다. 참고로 박종호가 야구를 하게 된 계기도 강병규랑 상당히 친해서라고. 강병규가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하게 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