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

백철(白鐵, 1908년 3월 18일 ~ 1985년 10월 13일)
본명은 백세철(白世哲)로,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이다.

일본 유학시절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NAPF)'에서 활동하였으며, 귀국 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KAPF) 에서 활동한다. 이 시기 <농민문학문제>, <문예시평>, <창작방법문제> 등 농민문학과 창작방법론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였으며, 해외문학파와의 논쟁에 참가하여 카프의 입장을 대변했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처음 문단에 소개하여 이와 관련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카프 2차 검거사건 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카프 해산 이후 전향하였다.[1] 전향 후 그는 카프시절의 도식성을 비판하며, 휴머니즘론을 제창하고 이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40년대에 접어들면 <낡음과 새로움> 같은 평론을 통하여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한다.[2]

해방 이후에는 『문학개론』(1947)이라는 이론서와 『조선신문학사조사』(전 2권, 1947~1949).[3]이라는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57년 미국 예일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면서 뉴크리티시즘(신비평주의)을 접하고 이를 한국에 소개하였다.

평론가 백철과 관련하여 김윤식 교수는 『백철 연구』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라도 금세 받아들이고 내팽개쳤던 ‘웰컴주의’ 평론가"였다고 평가하였다. 아울러 해방 전 그의 글쓰기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라고 명명하고,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에 대해서 "한 없이 지루한 글쓰기"라고 명명하였다. 뭔가 까는 듯한 느낌이다(...)
  1. 그래서 북한에서의 평가는 변절자. 그렇기에 친일문학을 한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기술한다.(...)
  2. 이로 인하여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등재되었다.
  3. 주로 외국 문학사조의 유입과 이를 수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