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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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 Massacre / 보스턴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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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한국어 위키백과는 '사건'을 뺐다.

1 개요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는 무료한 날이었다.

- T.프레스턴. 1770년 3월 5일의 일기에서

영국에선 킹가의 사건(incident on King street)이라 부르는 학살 사건이다.
7년 전쟁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영국의회는 식민지에 조세를 강화하는 법안을 여러번 상정했고 이는 인지세, 타운센드법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은 본국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1770년 3월 5일 주둔군 보초와 주둔군 숙사앞에 모여있던 시민과의 갈등이 발단이 되어 보스턴시에서 인부 9명과 영국군 사이에 우발적인 분쟁이 일어나고 일부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곧 보스턴 시민들과 군인들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군인들이 발포를 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사상자가 발생해 유혈사태로 확대된다. 5명 사망 6명 중상. (시위대가 영국 군인들에게 욕 하고 눈덩이를 던지자, 영국군 명령없이 사격.) 이후 식민지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을 얻으며 후에 일어나는 보스턴 차 사건미국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여담이지만 발포한 병사 8명과 총 책임자였던 T.프레스턴 대장은 군사재판에 회부되나 무죄판결을 받는다.

2 명칭에 대한 논란

미국 개척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사건들은 대학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이 사건에는 대학살이라고 하는데 다소 비판이 있다. 사실 대학살이라고 표현하기엔 사상자들의 수가 매우 적으며 미국이 이 사건을 계기로 반 영국심리를 고조시키기 위해 붙인 단어였다는 논란도 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대학살이라는 단어선택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책 속의 책》이라는 책을 90년대에 쓴 폴 임이란 재미교포는 지들이 수백만 단위로 벌인 미국 원주민 학살은 서부개척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넘어간 주제에 꼴랑 5명 죽은 게 학살이란다며 비웃는 글을 쓰기도 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