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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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1]

1 개요

虐殺

한자로는 모질 학에 죽일 살을 쓴다. 어사전의 의미는 가혹하게 마구 죽임. 일반적으로 단기간의 대량살인, 대규모 집단살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나, 단 소수의 사람을 죽였을지라도 그 과정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경우 살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런 막장행각을 저지르면 역사에 악랄한 학살자로 기록된다. 다만 이런 학살자가 영웅화된다고 여기고 그를 수용하는 서브컬쳐물이[2]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학살 때문에 영웅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웅이 공적을 세우는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것이고, 아무리 대영웅이라도 학살과 같은 악행이 자행되면 그것은 과오로 기록될 뿐이다. 가까운 예를 조조, 항우, 백기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칭기즈칸이 간혹 거론되지만, 그것은 칭기즈칸의 정복활동이 과오를 가린 것일 뿐이며 칭기즈칸과 몽골의 학살에 이를 갈며 칭기즈칸이 영웅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시각도 충분히 있다[3]. 학살은 거두절미하고 그저 과오일 뿐이며 단지 상황에 따라 불가피성이 인정될 수 는 있을 뿐이다.

학살자의 영웅화를 잘 표현한 명대사로 알려진 찰리 채플린이 제작한 1947년작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4]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긴 "한두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0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풍자나 비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5] 학살이 당대 좋게 여겨지는 것은 철저히 적에 대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적과 아군의 구분은 철저히 편의적이고 대부분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 대중이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강력한 정복자를 보고 - 그게 과연 민중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느냐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 우와 멋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며, 이는 대중들이 흔히 전쟁사군사사쪽에 유독 흥미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현대까지 꾸준히 일어났으며, 부족사회에서는 식인과 같이 동반되기도 했다. 이후 노예제가 등장하면서 줄어들었으나 적에게 공포를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학살로 유명한 인물들은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폴 포트, 오다 노부나가, 칭기즈 칸, 히틀러, 밀로셰비치, 도조 히데키 같은 권력자들을 우선 꼽을 수 있으며, 유명하지 않아도 학살을 저지른 사람은 더 많다.

또한 종교 문제를 놓고 학살이 벌어지기도 하며, 19세기 콩고의 경우처럼 제국이 식민지에서 벌인 약탈적인 학살, 또 전쟁으로 인한 학살도 많다. 전쟁은 어차피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무리 전쟁이라도 무고한 민간인을 여럿 살해한 경우는 학살로 보아야 한다.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공산군이 저지른 학살이 유명하지만, 그 공산군과 싸우다 홰까닥 돌아버려서 적인지 아닌지도 가리지 않고 부락 하나를 통째로 작살내버린 미군의 작태 역시 학살일 수 밖에 없다. 프랑스군 역시 알제리 전쟁 에서 베트남 못지 않은 대삽질을 벌였고. 좀 애매한 경우로 직접 총질이나 죽창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6]이나 비아프라 전쟁 때처럼 물자결핍이나 대규모 기근을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도 학살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고의적으로 기근을 불러일으킨게 아니라면 학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학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정책의 실패등) 저런 상황을 불러 일으킨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건 명백하지만 그것이 학살이라고 하는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강대국의 수탈 과정에서 학살이 주로 발생했다면, 그후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제국주의가 사그라든 20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종족분쟁에 의한 학살이 빈번해졌다는 것이 한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중국에서는 도살(屠殺)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와 달리 학살의 뜻으로도 쓴다. 난징대학살 박물관을 남경대살기념관(南京大屠杀纪念馆)이라고 써놓은 것이 그 예이다.과거 한자 문화권의 전쟁 기록에서도, 특정 지역을 점령했을때 도성, 도+지역단위, 도+지역명등 도(屠)자가 붙어 나오면 지역 단위의 조직적인 학살이 벌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경우에 따라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등 폭동적 시위진압을 할 때 학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광주학살이나 천안문 학살.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도 학살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인 현재는 일반적으로 양민학살 대신 민간인 학살이란 표현을 쓰는 편이다. 양민이란게 '무고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념 등과 전혀 상관 없는 무고한 사람이 집단 살해당한 일에만 '학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보도연맹 학살사건 같은 이념 때문에 일어난 '집단 살해'는 학살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양민학살' 쪽이 비극적인 느낌이 더 강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라면 학살의 대상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닌,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살해를 당했다면 비록 군인이더라도 학살 대상이 된다. 군경 및 그 가족을 살륙한 6.25 때의 인민재판이라든가, 자리에 누워 있는 부상병들을 죽여버린 서울대병원 학살사건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개중에는 적군도 아닌 아군의 병크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많은 인명이 죽어간 사례도 적지 않은데, 국민방위군 사건 같은 것은 애초에 정규군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솜전투나 임팔전투같은 것은 그냥 학살로 봐야 할 정도다. 그리고 말메디 학살이나 슈노뉴 학살과 같이 적군 포로를 죽인 경우는 또 다른 종류의 학살로 구분해야 한다.

학살이 또 다른 학살을 부르는 일도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보복성 학살' 이 될 터인데, 학살을 당한 측이 힘을 얻었을 때 앙갚음을 하는 경우. 보통은 당한 것보다 몇 배 내지 몇십 배로 갚아주는 경우가 흔하고, 결국 애먼 사람들에게 다시 재보복의 원한을 심게 되기도 한다. 여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런 사례가 민족주의와 결부되면 더 처절해진다. 세르비아등 발칸 지역 국가들의 인종청소나 아프리카의 르완다 내전 등이 그런 케이스.

2 학살 목록

테러사건이나 제노사이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3 실제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

3.1 영화

3.2 만화

4 학살자[30] 목록

4.1 동양권

4.2 서양권

4.3 제 3 세계

5 가상매체의 학살자

6 관련 문서

  1. 일부 학살행위는 내란죄로 분류되기도 한다.
  2. 대표적으로 fate stay night. 서번트로 소환되는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학살자가 영웅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한다.
  3. 한국에서는 독일 팝 칭기즈칸을 금지곡으로 지정한 적도 있다
  4. 국내 수입되어 제목이 바뀐 경우. 원 제목은 프랑스어로 무슈 베르두. 베르두씨란 별 뜻 없는 인명이다.
  5. 좌파적 성향의 채플린은 보수우파 세력의 역사관과 영웅주의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으며, 누가 봐도 전후에 살인광으로 비난받게 된 히틀러 뿐만 아니라 주류세력 역시 살인광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꼰 것이었기에 반대파들에게 많은 반발을 샀다.
  6. 스탈린이 고의로 일으킨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크다.
  7. 다른 이름으로는 간도 참변이며, 강조하여 경신 대참변이라고도 한다. 1920년 일제가 마적 토벌이라는 명분 하에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간도 지역의 조선인들을 대거 학살한 사건. 봉오동 전투에서 일제가 패배하자 일제는 이를 만회위해 훈춘 사건(중국 마적단과 내통하여 훈춘시에 있는 일본 영사관를 고의로 습격한 사건)을 조작하여 이를 빌미로 만주에 군대를 출동시켜 간도에 있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
  8. 1909년 일제가 의병 진압을 목적으로 한 양민학살 작전.
  9. 대전 말기 미군이 다하우 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와 수용소 직원을 살해한 사건. 홀로코스트와는 별개의 사건이다.
  10. 학살이 맞다. 왜인지는 동시대의 흐루쇼프의 정책실패와 비교해보면 답이 나올것이다.
  11. 양주에서만 80만 이상, 광주에서 70만 이상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과장일 가능성도 있고, 상당수의 희생자는 명말-청초 사이의 혼란기에 발생된 희생자 전체를 포함한 것이다. 이 혼란기에 지역을 떠난 유민들의 많은 수가 명이 멸망한 뒤 청이 제대로 안정된 뒤에야 나타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 시기 많은 명나라 유민이 조선과 일본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12. 1929년 2월 14일, 경찰관으로 위장한 알 카포네 파 조직원들이 라이벌인 조지 모런 파 조직원들을 살해한 사건
  13.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일으킨 학살인것이 확인된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 사건 이외에 한국군이 저질렀다는 다른 학살들은 선전을 목적으로 한 조작이거나 증거는 없고 주장만이 존재하는 의혹수준이다. 덧붙여 사건을 주도한 김종수 소위는 군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후에 15년 형으로 감형)
  14.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시기, 대통령 임기 시작일을 1일 앞두고 대통령 당선인이자 팔랑헤당이라고도 부르는 친미·친서방·친이스라엘 기독교 민병대 카타엡(Kataeb)당의 대표인 바시르 게마옐(بشير الجميّل, Bachir Gemayel)이 시리아 정보원에 의해 암살당하자 제대로 빡친 팔랑헤가 레바논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봉쇄 후 학살한 사건. 목표는 테러리스트 제압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이 사건은 작전 수일 전에 노출되어서 남자들은 모두 탈출한 뒤였고, 부녀자와 아이들만이 남아있었음에도 3일간에 걸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이 학살을 이스라엘군은 묵인하다 못해서 조명탄까지 쏴주면서 부추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다시 국제적 비난이 쇄도하였다. 학살의 원인인 바시르의 암살을 일으킨 시리아는 아에 모른척 무시했다. 틈바구니에 끼인 나라의 비극이 어떤 건지 잘 알려주는 사건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15. 공산주의 테러집단인 일본 연합적군이 자신들의 멤버들 중 12명에 린치를 가해 살해한 사건
  16. 벨기에 슈노뉴 마을 근처에서 미군이 독일군 포로를 학살한 사건
  17. 단, 이 경우는 당시의 전쟁법을 기준으로는 전쟁범죄가 아니다.
  18. 당시 독도 폭격은 김태우 박사의 "폭격" 뿐만 아니라 정병준 박사의 "독도 1947 (전후 독도문제와 한.미.일 관계)"도 자세히 다뤘다.
  19. 제노사이드 항목에 보다 자세히 언급된다.
  20. 1960년대 수하르토의 쿠데타 이후 공산당 토벌을 빌미로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
  21. 6.25 때 전주를 점령했던 북한군이 1950년 9월 26일~27일 사이 퇴각하며 전주형무소(구 전주교화소)에 수감돼 있던 500여명의 인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
  22.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벌어진 학살.
  23. 2차대전 때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학살. 우스타샤 항목도 참조.
  24. 1943년 이탈리아 카니카티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살해당한 사건.
  25.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의 칼라공에서 벌인 학살.
  26. 특히 방데전쟁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은 근대적 학살, 제노사이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로 잔혹했다. 해당 항목 참조.
  27. 1932년 일본군이 게릴라 토벌을 벌인다며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
  28. 위에 있는 킬링필드을 소재로 한 영화
  29.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애도기간 동안 TV 시청 황금시간대에 이 영화를 집중 방영하였다.
  30. 이걸로 검색할 시 여기로 넘어오게 된다.
  31. 이 사람은 준가르 민족 자체를 멸종시켰다.
  32. 방화범 김대한 맞다. 불을 이용해서 수백명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33. 김정은이 아무리 악독한 독재자이긴 해도 학살을 했냐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 있지만, 집권 이후 자기 반대파들을 비롯해 친척이자 고모부인 장성택까지 대량 학살을 능가할 정도로 사형에 쳐했다.
  34.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비롯해 한국전쟁 시기 양민학살의 가장 주동자이다.
  35. 역시 민간인 학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천하의 개X놈.
  36. 이 쪽은 다소 논란이 있다. 신하들과 양민들을 학살한 폭군이라는 인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세운 왕건에 의해 폭군,학살자로 격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고.
  37. 후삼국시대 당시 신라를 침공한 뒤 신라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38.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참조
  39. 여당전쟁때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군 15만명을 패배시키고 고구려군과 함께 참전한 흑수말갈병 5천여명을 고구려를 돕지 말라는 경고의 차원에서 일부를 생매장 시켜버렸다.
  40. 1989.6.4 천안문 학살의 주범이다。
  41.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의 주모자
  42. 일본 적군파의 간부. 과격한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하다가 산악 베이스 사건 등을 일으켜 적잖은 인명을 희생시켰다
  43. 대통령 집권 후 인민혁명당 사건 등의 사법살인을 저질렀으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44. 4.3 사건을 비롯, 남로당 관련 각종 사건들. 물론 6/25 남침에도 관여했다.
  45. 장평대전에서 40만의 군 병사들을 땅속으로 매장했다. 다만 다른 학살자와 달리 백기는 유언을 통해 학살에 대한 책임을 뒤늦게나마 참회했다.
  46. 제갈탄의 반란 진압후에 남아있던 제갈탄의 병사 200명를(본인들이 스스로 죽기로 마음를 먹어지만.) 그대로 죽였다.
  47. 공손연의 난을 진압한 후 15세 이상 남자는 모조리 죽여 해골탑을 세워 훗날 동진의 명제가 승상 왕도에게 이야기를 듣자 이러니 진나라(서진)이 오래 못갔고, 지금 진나라(동진)도 오래 갈 수 없을 거라며 한탄했다.
  48. 이궁의 변 참조.
  49. 공포 정치로 적을 많이 만들어 결국 요절해 이후 오나라의 세력 봉합이 제대로 안 된다.
  50. 일본 적군파의 간부이자 국제 테러리스트. 벤구리온 공항 습격을 비롯하여 숱한 테러를 저질렀다
  51. 양민들을 모아서 군대를 편성했는데 먹을걸 안주고 굶겨죽였다는 희대의 엽기학살 '국민방위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 본인은 어떻게 살아나갔지만 당시 명령을 받아 실행했던 고위 장교들은 전원 총살형에 처해졌다. 총살형을 언도 받은 사위를 살리려고 했는지 신성모가 사위를 빼돌릴려고 한다는 루머가 돌자 아예 공개총살을 강행했다. 정작 신성모 본인은 이승만 하야 이후 뇌출혈로 사망해 사살상 직접적인 처벌은 받지 않았다.
  52. 유명한 옴진리교의 교주. 사린가스 테러 사건 이외에도 최소한 수십여명의 살인에 관여했다
  53.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할수도 있겠지만 왕건 역시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고려에 항복하러 온 후백제 병사들과 장수들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잔혹하게 죽이기도 했었다.
  54. 십상시의 난 당시 맹진 지역에서 정원으로 하여금 주변 민가들을 태우고, 백성들을 죽였다. 그외 군웅할거 당시에 양민들을 약탈했다고 공손찬에게 비판당하기도 한다.
  55. 4.19 혁명때 명언(?), "총은 쏘라고 준게 아니냐!"
  56. 조선 건국 후 왕씨 가문과 고려 충신들을 향한 대규모 살상 및 탄압 행위를 감행했다.
  57. 이성계와 함께 조선 건국 이후 왕씨 가문과 고려 충신들에게 대규모 살상 행위를 감행했다.(다만 ,이부분은 이성계가 강제로 시켜서 어쩔수 없이 살상을 감행 했다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왕자의 난 당시 자신의 형제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학살했다.
  58. 피끝마을 항목 참조.
  59. 4.12 사건 당시 '좌파 숙청'을 명분으로 상하이에서 엄청난 학살을 자행. 뒷날 1949년 타이완에서도 계엄령을 선포해 타이완 원주민들을 향해 발포하기도 했다.(2.28 사건)
  60. 단,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덧씌워진 학살자의 이미지는 청나라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61. 백백교의 교주. 그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들이 밝혀진 것만 300명을 훨씬 넘는다
  62. 4.3 사건 관련
  63. 버지니아 학살의 주범.
  64. 서주 대학살의 주범. 이것만 아니라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후에도 항복한 원소군 병사 수만명을 생매장했다. 마오쩌둥이 참고로 조조를 재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추켜세웠는데 둘 다 학살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65. 여순사건의 주범
  66. 한국 광복군 출신이자 중화민국 군대 출신이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며, 후엔 월북해버린 천하의 개쌍놈
  67.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의 헌법상 국가원수. 그러나 문제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폴포트 다음으로 권한이 무지막지했다.
  68. 신안대학살과 진나라 수도 함양을 약탈하고 불태운 것 등 기록이 많다.
  69. 몽골인민공화국의 공산 독재자. 승려를 비롯한 자국민 3만여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죽을 때 상태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스탈린이 자기 주변 의사들을 숙청하는 것에도 일조했다.죽을 때는 곱게 좀 죽을 것이지
  70. 베트남 독립 후 토지개혁에 반발하던 지주층과 농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러 반론들도 있는데 자세한건 항목 참조.
  71. 아래에 있는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친척. 이 인간이 프란시스코를 뛰어넘는 악마로 잉카의 황제인 아타우알파에게 터무니없는 양의 황금을 내놓으라 하고는 황금이 모자르다며 그를 처형해 버렸다. 그래서 잉카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페루에서는 곤살로와 프란시스코를 히틀러급의 인간쓰레기로 보고있다.
  72. 벨기에의 왕. 자신의 개인 사유지인 콩고 자유국 원주민을 최소 350만 이상을 희생시켰다. 정확히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팔다리가 잘리는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73. 아메리카 대륙의 갱단 관련 범죄의 원흉.
  74. 헤레로족 학살의 주범. 헤르만 괴링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에른스트 괴링이 헤레로 학살의 주범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진범은 이놈이다. 물론 헤레로족 반란 진압 책임자로 트로타를 임명한 빌헬름 2세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75. 피노체트 정권의 쿠데타를 지원해 수만여명의 칠레인들을 죽게 했다.
  76.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이탈리아군나치 친위대, 독일 국방군, 일본군 등의 추축국 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딱히 잔혹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솔리니도 에티오피아,유고슬라비아,그리스 등의 나라를 침공해 많은 인명피해를 줬으니 당연히 학살자로서의 책임을 져야한다.
  77. 체첸인들을 학살.
  78. 전쟁은 사실 무솔리니가 거의 다 한것이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도 무솔리니의 침략 전쟁을 묵인하고 이를 허가 했으니 일본보다 다른 나라에 끼친 폐가 상대적으로 적을뿐 히로히토처럼 학살자로서의 책임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다
  79.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원주민들과 필리핀인들을 학살하고 학살에 가담한 군인들을 치하했다.
  80.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버지.
  81. 수많은 사람들을 납치 살해하고 인육을 먹은 희대의 사이코패스. 사이코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한니발 시리즈 등등 호러계의 유명 영화들이 모두 이 자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
  82. 공산 동독의 서기장. 독일 통일 이후 자유세계로 탈출하려던 동독인 192명을 학살한 죄로 재판을 받았다.
  83. 그러나 이쪽은 참작할 여지가 있는 게 이 사람에 의해 죽음을 당한 동독인들은 모두 불법으로 국경을 넘으려다가 사살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야 자유를 찾으려고 그랬다지만, 그렇다고해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걸 용인해줄 나라가 없다는건 생각해봐야 한다. 가령 미국의 국경 수비대나, 대한민국최전방 부대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자.
  84. 현재의 북아일랜드 문제를 만든 원흉.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을 당시에 아일랜드인들을 대거 학살하고 그 자리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계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85.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했다.
  86. 베트남 전쟁 중에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천하의 개쌍놈으로, 그가 저지른 학살이 바로 미라이 학살이다.
  87. 인명학살을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건물과 시설은 닥치고 파괴했다.
  88. 수하르토 대통령의 학살극을 지원했다.
  89. 파나마를 침공하에 노리에가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와중 1만여명의 파나마인들을 학살했다.
  90.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흑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했다.
  91.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에 독재 정권을 내세워 중남미 국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92. 터키인들이 아타튀르크가 학살자 목록에 있는 걸 알면 불쾌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명백히 쿠르드족을 학살한 전적이 있다.
  93. 우간다개독기독교계 군벌인 신의 저항군의 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