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지니오 로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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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에 주역이 되지 못한 비운의 수비수 2.

이름비르지니오 로세타
(Virginio Rosetta)
생년월일1902년 2월 25일
사망년월일1975년 3월 31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베르첼리
포지션수비수
신체조건172cm / 74kg
등번호-[1]
소속팀프로 베르첼리(1919~1923)
유벤투스 FC(1923~1936)
국가대표52경기 / 0골
감독유벤투스 FC(1935~1939)
SSD 루케제(1939~1940)
메스트리나(1946~1947)
US 팔레르모(1947~1948)

1 선수 생활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1919년에 고향팀인 프로 베르첼리에서 데뷔했다. 로세타가 데뷔하던 당시 프로 베르첼리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던 강팀이었고, 1920~21, 1921~22 시즌에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데뷔할 때 로세타는 스트라이커로 뛰었지만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이 당시에 로세타는 1920년 올림픽이탈리아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이탈리아 대표팀 초기의 전설적인 수비수 렌조 데 베키[2]의 파트너가 되어 노르웨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때 그의 나이 18세. 하지만 로세타가 잠시 부상을 입어서 대표팀에서 빠졌을 때 대표팀에 새로 들어온 움베르토 칼리가리스에게 밀려 2년간 출전을 못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유벤투스 FC로 이적하였고 1926년에는 다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1929년에는 유벤투스의 주장이 되어서 그를 중심으로 팀이 재편되었고 국가대표 골키퍼 잔피에로 콤비와 칼리가리스 등과 함께 유벤투스의 세리에 A 5연패를 차지한다. 이렇게 차지한 세리에 A 우승 횟수가 8회였으니 참으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이 아니라 할 수 없다.

2 아쉬운 월드컵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을 잘 해갔지만 말년이 오스트리아에 의해 꼬여버렸다.말년에 홈에서 깨지다니 그래도 동료 칼리가리스보다는 사정이 나아서 1934년 월드컵의 개막전인 미국전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를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로세타 스스로 출전을 거부하였고 그가 없었지만 이탈리아는 결국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3 이후

1935년부터는 유벤투스에서 주장자리를 내려놓고 선수 겸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 시즌에 선수에서는 은퇴를 하고 1939년까지 유벤투스에서 감독 생활을 한 그는 감독으로는 큰 업적을 남기진 못했고 1975년에 사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수비적인 스킬도 좋았지만 그의 최대 장점은 정확한 패스였다고 전해진다.

5 수상

5.1 클럽

세리에 A 우승 8회: 1920~21, 1921~22(이상 프로 베르첼리), 1925~26, 1930~31, 1931~32, 1932~33, 1933~34, 1934~35(이상 유벤투스)

5.2 국가대표

월드컵 우승 1회: 1934
올림픽 3위 1회: 1928

5.3 감독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37~38(유벤투스)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2. 렌조 데 베키는 1894년생이니 대략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파울리노 알칸타라등과 비슷한 나잇대의 선수이다. AC 밀란에서 데뷔했지만 제노아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고, A매치에도 43경기에나 출전한 초기 이탈리아 대표팀의 간판 수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