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Paulino Alcantara |
생몰년 | 1896년 10월 7일 ~ 1964년 2월 13일 |
국적 | 스페인[1] |
클럽 | FC 바르셀로나(1912~1916) 보헤미안 스포르팅 클럽(1916~1918) FC 바르셀로나 (1918~1927) |
국가대표 | 카탈루냐 국가대표팀(1915~1924) 필리핀 국가대표팀(1917) 스페인 국가대표팀(1921~1923) |
득점 (클럽) | 357경기 357골[2] |
득점 (국가대표)[3] | 5경기 6골 |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 ||||||
파울리노 알칸타라 (1920~1927) | → | 조제프 사미티에르 (1927~1932) |
1 소개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선수[4]
그는 1896년 필리핀 알로알로 시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의 군인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알로알로 시티에서 살던 현지인.
2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다
필리핀에서 산 세월은 그리 길지 않으며, 그의 나이 3살 때 가족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건너갔다.# 1910년에 축구의 길로 들어가 FC 바르셀로나에 창단 멤버이자 초대 구단주인 후안 감페르가 파울리노를 유스 팀에 영입시켜 뛰었고, 1912년에 15살 나이[5]로 Catala를 상대로 성인 팀에 첫 데뷔를 치른다.
첫 데뷔 무대에서 헤트트릭을 달성하여 9 - 0 대승을 거두었다. 리그 경기 첫 출장은 1912년 8월 14일의 사바델과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은 저 삐쩍마른 선수는 누구냐며 감탄을 했다고...
이후 1915년에서 1924년까지 카탈루냐 대표팀에서 뛰었다. 이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 듯.
3 필리핀 리그 생활
리그 생활 도중에 알칸타라는 1916년부터 1918년까지는 필리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보헤미안 스포팅 클럽(Bohemian Sporting Club)이란팀에서 뛰면서 필리핀 국가 대표로도 1년 정도 활약했다. 특히 1917년 아시안 게임의 전신인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일본을 15-2로 개박살내면서 일본 국대의 최다 실점 기록을 갱신해주었다.(...) 이 기록은 필리핀 대표팀에게도 최다 점수 차 승리기록으로 남아있다.
4 바르셀로나로 복귀
스페인에게 돌아온 그에게 영국 출신 감독 그린웰은 수비수 보직을 주었으나 바르셀로나 클럽 멤버들 요구로 다시 공격수로 복귀하였다. 1920년에는 스페인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당시 그는 의학 시험을 보기 위해 팀에의 합류를 거부한다. 이후 1921년에 데뷔전을 치뤘으며,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기록은 5경기 6골.
5 은퇴 그 후
알칸타라는 1927년 7월 5일 은퇴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이 그를 위해 은퇴 경기를 마련하였고 알칸타라가 은퇴하는 걸 아쉬워했다고... 공교롭게도 그가 은퇴하고 나서인 1928~29 시즌부터 통합 프로리그인 프리메라리가가 열리게 되었다.
다섯 번의 스페인컵 우승과 10번의 카탈루냐 리그 챔피언이었다. 그는 그의 전공을 살려 의사가 되려 했지만 스페인이 놓아주질 않았다. 1931년부터 3년간 클럽 이사로서 활동했고, 1951년에는 국가 대표팀의 코칭 스태프가 된다. 그가 있는 동안 스페인 국가 대표팀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과의 3경기 에서 1승 2무를 기록했다.
그 뒤에 바르셀로나 구단 행정을 맡기도 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다가 1964년 2월 13일 바르셀로나에서 67살로 세상을 떠났다.
6 기록들
- 그는 비유럽 태생으로 스페인 국가 대표가 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 알칸타라가 바르셀로나에서 남긴 기록 최연소 출장 기록이고 또 하나는 개인 최다 골. 기록은 무려 357경기 357골
- 바르셀로나에서 개인 최다 골 기록은 2014년 리오넬 메시에게 깨졌다. 그러나 메시는 453경기에 출전하여 세운 기록이라서 경기 당 0.81골을 넣었기에 알칸타라의 평균 1골에는 미치지 못했다.
- 알칸타라는 그의 기념비적인 두 사건으로 인해 잊혀 질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하나는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5 야드 거리에서 골을 넣었는데, 네트가 찢어진 것이다. 그는 그 경기 후 네트 파괴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두번째는 같은 해 5월 20일 Les Corts stadium에서 또 네트를 찢었다는 것. 물론 옛날 네트 재질이 지금과는 달라서 쉽게 찢어진 거일 수도 있지만 찢을 정도라면 얼마나 킥력이 강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