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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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의 국가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제6공화국 헌법이 효력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정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시기이다. 88년생은 6공과 동갑내기 4월 치러진 총선으로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유신 이후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의 실체와 제5공화국 비리를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가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관련 정계, 재계, 언론계 등 유명 인사들이 출석하여 TV로 생중계되는 등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 국민적 화제를 낳았으며, 국회의원 중에서는 훗날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께서 청문회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 강원도 설악산백담사유배(?)를 가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이른바 '북방정책(중국, 소련 등 북방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를 맺는 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학생회담 투쟁과 '7.7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퍼져갔다.

1996년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로 바뀌면서, 1995년에 입학한 1988년생들은 '마지막 국민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1988년생까지 "국초딩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88 올림픽 때문에 "쌍용 세대", "올림픽 세대", "호돌이 세대". "쌍팔년도 세대."라고도 불리며,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면 땡칠 07학번이 되었다.

1988년 출생자들은 중학교 등록금과 수업료를 내고 다닌 것으로 유명한데 1988년 3월~1989년 2월 출생자(현재의 07학번에 해당되는 세대이다.)까지는 수업료와 운영지원비를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다. 게다가 올컬러판으로 나왔던 7차 교육과정 교과서의 첫 세대였기 때문에 앞의 선배들보다도 교과서값이 장난아니게 비쌌다. 그걸 다 내고 다녔다. 2008학번부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남의 일이니까 관심도 없을 듯 [1] 중학교 3년동안 운영지원비와 수업료를 모두 본인 부담으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2] 또한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매긴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한편 이 세대는 중학교를 제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 최초의 세대이다. 그리고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처음으로 교과목으로서 배웠다. 또, 이 해를 기점으로 교육, 학사 혹은 경제면에서 2002년생까지 하나씩은 고통받는 세대가 된다.(...)

이 해 이후에 태어난 한국 남자들은 나라사랑카드를 신검 때 발급받게 된다.

88년생의 인생사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서울랜드가 개장하였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COEX에 무역센터(트레이드 타워)가 완공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루는 가장 먼 시대이기도 하다.[3]

대학교나 군대, 회사에서 뭔 일만 있으면 거론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작 88년도에 머리 굵은 적이나 태어난 적도 없을지라도 선배가 마음에 안드는 후배에게 "88년도 식으로 해볼까?" 라고 꺼내는 게 주된 방식. 88년도를 거론하려면 40대는 되야되지 않을까?[4]

쌍팔년도라고 자주 지칭되는 해이다. 하지만 쌍팔년도라는 단어는 원래 서기 1988년이 아닌 단기 4288년인 1955년을 뜻하는 단어로, 1988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어휘였다. 50년대를 쌍팔년도로 표현했던 70년대 신문기사

2 사건

2.1 실제

  • 1월 1일 -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이 개혁,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다.
  • 1월 13일 - 중화민국에서 부총통 리덩후이가 총통직을 승계했다.
  • 1월 18일 - 시마 현상으로 일본 거품경제의 상징이 된 닛산자동차의 고급 승용차 닛산 시마(CIMA)가 출시되었다.
  • 2월 24일 - 서울시내 대학생 5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경찰에 의해 1시간만에 연행되었다. 이날 밤에 당시 연세대 신학대 학생인 안내상도 추가 검거되자 안내상은 광주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사실을 진술했다.
  • 2월 25일 - 노태우가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시행일이기도 하다.
  • 2월 26일 - 광주 미국문화원 1층 도서관 진열장에서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 2월 27일 - 일본에서 초수전대 라이브맨 방영 개시,
  • 3월 12일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첫 오리지널 극장판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가 개봉되었다.
  • 3월 25일 -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비산종합상가 3층에 소재한 봉제공장 '그린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 내 기숙사에서 잠자던 여성 노동자 20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5]. 사건의 원인은 사측이 재료 도난을 염려해서 사원 관리 차원에서 셔터를 내리고 문을 잠근 게 참사의 화근이 되었고, 더구나 당시 쌓아두었던 캐시미어 원단 더미가 더 큰 화재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1980년대 최대의 산업재해 참사로 손꼽힌다.
  • 3월 29일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김중기 후보는 ‘김일성종합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남북한 국토 종단 순례 대행진과 민족 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체육대회를 제안하였다.
    • 맥도날드 대한민국 1호점 (압구정동) 개점.
  • 4월 26일 - 대한민국에서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은 제1당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해 1950년 총선 이후 38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 5월 11일 -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자리에 서울랜드가 개장하였다.
  • 5월 15일
  • 5월 28일 - 기존의 정법회와 당시 결성준비 상태인 '청년변호사회(이하 청변)'와 통합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결성되었다.
  • 5월 29일 - 전국의 각계각층 67개 운동단체가 조국통일운동의 성공적 전개를 위해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기로 하고 남북 공동 올림픽과 6·10 남북학생회담의 성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6월 9일 - 이날 오후 10시에 연세대학교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6·10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백만학도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6월 10일 - 연세대학교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전국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6·10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을 열어 판문점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150여명이 부상당하고 1천여명이 연행되었다.
  • 6월 15일 - 청문회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 6월 27일 - 여야가 합의해서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6월 30일 - 이라크 공군기들이 이란 칸간의 가스 플랜드 건설 현장을 공습, 현지에서 작업 중인 대림산업 소속 한국인 근로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7월 7일 -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교류 제안과 북미관계 개선 협조를 담은 7.7선언을 발표했다.
  • 7월 15일 -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지붕 위의 1000대의 비행기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서 세계 초연됐다.
  • 7월 25일 - 버마(현 미얀마)의 집권당이자 유일 정당인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의 우 네 윈 의장이 집권 26년만에 사퇴하고 군부 강경파인 세인 르 윈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네 윈과 동반 퇴진한 우 산 유로부터 대통령직까지 승계받은 르윈 정권은 8월 3일 계엄령을 선포하여 날로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섰으나 결국 8월 12일 집권 17일만에 하야하고 만다.
  • 8월 1일 - 문익환 등 남한의 각계 인사 1,014명의 발기인이 모여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발기취지문’을 발표했다.
  • 8월 4일 - 대한민국MBC에서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이 발생했다.
  • 8월 6일 - 대한민국정보사령부가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칼럼을 기재한 중앙일보 오홍근 기자를 습격하는 오홍근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8월 9일
    • NHL 역사상 최대 파장을 불러온 트레이드웨인 그레츠키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웨인은 이 트레이드를 통해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LA 킹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 전대협은 8.15 남북학생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토순례대행진 출정식'을 열고자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성사되지 못했다.
  • 8월 11일 - 전국의 22개 대학가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이 열렸다.
  • 8월 12일 - 전국의 22개 대학가에서 6천여명의 대학생들은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과 '국토순례대행진 저지 규탄대회'를 열어 가두시위를 진행했으나 1,780명이 경찰에 연행되였다.
  • 8월 15일 - 전대협은 연세대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을 열어 1백여 명이 피로 쓴 ‘조국통일 만세’ 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몸을 서로 엮은 채 판문점을 향하고자 교문을 나섰으나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5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 8월 16일 - 전대협은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학생회담이 성사되지 못하자 연세대학교에서 ‘8·15 남북학생회담 원천봉쇄 규탄대회 및 통일염원제’를 개최하여 다섯 달간에 걸친 통일운동을 일단락했다.
  • 8월 17일 - 김기종이 이끄는 진보계열 문화모임 '우리마당'이 4명의 괴한에 의해 피습을 당했다. 이른바 '우리마당 피습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다.
  • 8월 20일 - 8년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 8월 21일 - 민가협은 1987년 6.29 선언 이후에도 양심수들이 전부 석방되지 못하자 대학로에서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시민가요제>를 열어 양심수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 8월 25일 - 메탈리카가 네 번째 정규 앨범 ...And Justice For All을 발매했다.
  • 8월 28일 - 문익환, 계훈제, 박형규 등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본부(이하 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발족했다.
  • 9월 10일 - 공해추방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이것이 현재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이다.
  • 9월 11일 - 소련 산하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30만 명이 모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9월 17일 - 대한민국에서 19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 10월 5일 - 칠레의 대통령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국민투표에서 패배, 임기 연장에 실패했다.
  • 10월 8일 - 대한민국에서 지강헌 탈주사건이 발생했다.
  • 10월 15일
    • 대한민국에서 1988 서울 장애인 올림픽이 개막했다.
    • 21시 40분경.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 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 10월 16일 -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이 종료되었다.
  • 10월 25일 - 안산선 금정역 ~ 안산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서울 지하철 1호선열차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 10월 29일 - 일본에서 세가의 게임기 메가드라이브가 발매되었다.
  • 11월 3일 -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5공화국 관련 청문회가 진행되었다.
  • 11월 8일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조지 부시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11월 15일 - 팔레스타인독립을 선언했다.[6]
  • 11월 23일 -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대국민 사과 발표 후 백담사로 낙향하였다.
  • 11월 25일 - 일본에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오! 나의 여신님의 첫연재가 시작되었다
  • 11월 26일 - 대한민국에서 원달러 환율이 1달러 : 600원 대에 진입했다. 3저호황의 정점이었다.
  • 12월 7일 - 소련 산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그동안 사용금지된 에스토니아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일자 불명 - 게임 개발자 회의가 만들어졌다.
  • 일자 불명 - 아타리 테트리스가 출시, 오락실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2.2 가상

3 탄생

호돌이 세대들
일본인의 경우, 1927년부터 금년도까지 62년간 출생한 사람들은 모두 쇼와 세대 취급을 받는다.[8]

3.1 실존 인물

3.2 가상 인물

일자 불명

4 사망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1. 고등학교 등록금 네이버 지식인
  2. 이들의 경우 서울의 일반 공립 중학교는 3달에 한번씩 수업료 27만원정도+운영지원비 50000원 내외의 돈을 학교에 지불하고 중학교에 다녔는데 이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는게 3달에 32만원X4=1년에 무려 130만원정도를 학교에 갖다바치고, 3년동안 무려 390만원, 400만원에 달하는 대학교 한학기~1년치 등록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중학교에 갖다바친 셈이다. 1988년생 07학번 출생자들이 중학생시절 이것만 생각하면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다. 1989년생 현재 2008학번 세대부터는 의무교육이 적용된 첫 세대이기 때문에 3달에 5만원(1년이면 20만원정도, 중학교 3년이면 60만원 정도의 운영지원비만 지불하고, 막말로 학교에 돈 갖다바치고) 중학교에 다닌 것이다.
  3.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면서.
  4. 1969년생이 한국 나이 20살이 된게 이 1988년이고, 1969년생들은 2016년 기준 48세이다. 그나마 기억이 날만한 당시 중학교 1학년은 1975년생. 42세이다.
  5. 사건 당일 사망자는 19명이었으나 이후 1명의 사망자가 추가됨.
  6. 그로부터 23년 2개월 뒤, 팔레스타인국제연합 전체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의 회원국들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다.
  7. 같은 해 진짜 대통령이었던 국가안전기획국 국장 로이 콘도 사망했다.
  8. 정확히는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이다. 넘치는 기간이 앞뒤로 7일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1926년생은 다이쇼 세대, 1989년생은 헤이세이 세대이다.
  9. 동일인물이다(...)
  10. 애니판에서는 10월 23일생으로 되어있으나 여기서는 원작을 따른다.
  11. 일란성 쌍둥이.
  12. 4월 생이란 건 원작에서 나왔지만 몇 일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13. 연재가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고 16세의 나이를 대입하면 된다.
  14. 라이히-5의 미국 국가안전기획국장이자 진짜 38대 미국 대통령.
  15. 라이히-5의 허수아비 38대 미국 대통령.
  16. 주인공 료의 아버지. 작중 기준으로 10년 전에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