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최근 모습)
이름 | 빌헬무스 '빔' 제라르두스 라이스베르헌 (Wilhelmus "Wim" Gerardus Rijsbergen) |
생년월일 | 1952년 1월 18일 |
국적 | 네덜란드 |
출신지 | 레이든 |
신체조건 | 181cm |
포지션 | 수비수 |
소속팀 | PEC 즈볼러 (1970~1971)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71~1978) SC 바스티아 (1978~1979) 뉴욕 코스모스 (1979~1983) 헬몬드 스포르트 (1983~1984) FC 위트레흐트 (1984~1986) |
지도자 | AFC 아약스(1986~1988)(유소년 코치) DS'79(1988~1989)(유소년 코치) VV 루덴부르그(1989~1991) DWS(1991~1993) FC 볼렌담(1993~1995) NAC 브레다(1995~1997) FC 흐로닝언(1997~1998) 우니베르시타드 카톨리카(1998~1999)(유소년 코치) 우니베르시타드 카톨리카(1999~2001) 알 이티파크(2002) 클럽 아메리카(2003~2004)(수석 코치)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국가대표팀(2005~2006)(수석코치)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국가대표팀(2006~2007) PSM 마카사르(2010~2011)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2011~2012)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2012~2013)(기술 고문) |
국가대표 | 28경기 1골 |
1 소개
70년대 네덜란드 대표팀의 수비수. 74년 월드컵, 78년 월드컵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2 클럽
1970년 2부리그 소속의 즈볼러에서 데뷔했고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팀의 1부리그 승격에 공헌했다. 이후 명문 페예노르트로 이적했고 1978년까지 1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UEFA 슈퍼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프랑스를 거쳐 미국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했고 4년간 미국에서 뛴 뒤 네덜란드로 돌아와 1986년 위트레흐트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74년부터 1978년까지 28경기 1골을 기록했다. 라이스베르헨은 원래 땜빵 선수였다. 본래 미헬스 감독의 플랜에는 라이스베르헨의 동료이자 에레디비지 최고의 센터백으로 이름을 날리던 리누스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대회 전 이스라엘이 부상을 입었고 완쾌되지 않자 라이스베르헨을 아리에 한의 파트너로 내세운 것. 이를 계기로 라이스베르헨은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이 되었고 1978년 월드컵에도 참가해 결승전까지 뛴 바 있다.
4 지도자
은퇴한 직후 아약스의 유소년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팀을 떠돌았고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1994-95 시즌 볼렌담의 감독으로 있을 때 KNVB 컵 준우승을 기록한 것이 전부이다. 2006년 월드컵 동향 출신의 레오 베인하커르 감독이 이끄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월드컵 무대를 경험했다.
이후 대표팀의 감독까지 올랐으나 제명당했고 2010년 인도네시아의 클럽인 PSM 마카사르의 감독을 맡으며 인도네시아와 연을 맺었다. 2011년 6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6개월 간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인도네시아가 워낙 약체 국가이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는 없었고 2013년까지 대표팀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