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C 아약스

2016-17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 G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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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Aj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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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주
(Liè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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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타 비고
(Celta V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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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티나이코스
(Panathinaikos)
AFC 아약스
AFC Ajax
정식 명칭Amsterdamsche Football Club Ajax NV
창단1900년 3월 18일[1]
소속 리그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연고지암스테르담 (Amsterdam)
홈 구장암스테르담 아레나 (Amsterdam Arena)
(52,342명 수용)
구단주헤니 헨리흐스 (Hennie Henrichs)
감독피터 보스(Peter Bosz)
주장데이비 클라센 (Davy Klaassen)
애칭de Godenzonen(신의 아들들)
Ajacieden
de Joden(유대인들)
de Amsterdammers(the Amsterdammers)
공식 홈 페이지[1]
우승 기록
에레디비지
(33회/최다우승)
(★★★ )
1917-18, 1918-19, 1930-31, 1931-32, 1933-34, 1936-37, 1938-39, 1946-47, 1956-57, 1959-60,
1965-66, 1966-67, 1967-68, 1969-70, 1971-72, 1972-73,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1984-85, 1989-90, 1993-94, 1994-95, 1995-96, 1997-98, 2001-02, 2003-04, 2010-11,
2011-12, 2012-13, 2013-14
KNVB 베이커
(18회, 최다우승)
1916-17, 1942-43, 1960-61, 1966-67, 1969-70, 1970-71, 1971-72, 1978-79, 1982-83, 1985-86,
1986-87, 1992-93, 1997-98, 1998-99, 2001-02, 2005-06, 2006-07, 2009-10
요한 크루이프 실드[2]
(8회)
1993, 1994, 1995, 2002, 2005, 2006, 2007, 2013
인터컨티넨탈컵
(2회)
1972, 1995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1971, 1972, 1973, 1995
UEFA 컵위너스컵
(1회)
1987
UEFA컵
(1회)
1992
UEFA 슈퍼컵
(2회)
1972, 1995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미랄렘 술레이마니 (Miralem Sulejmani)
(2008년, From SC 헤이렌베인, 1625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클라스 얀 훈텔라르(Klaas-Jan Huntelaar)
(2008년, To 레알 마드리드, 2700만 유로)
최다 출장스야크 스바르트 (Sjaak Swart) - 463경기(1956–1973)
최다 득점피어트 판 레넌 (Piet van Reenen) - 273골(1929-1942)[3]
영구결번14

Ajax_puchar.JPG

TOTAALVOETBAL[4]


모든 UEFA 주관 대회[5] 우승, 트레블,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전부 달성한 양대 클럽 중 하나[6]

유럽에 붐비는 강호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챔스와 리그에서 무패 더블을 해낸 클럽이렇게 화려했어도 지금은...

1 개요

네덜란드어로는 '아에프세이 아약스'로 읽는다. 좋은 유스 시스템과 유럽 무대에서 손꼽혔던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유럽 축구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일곱 팀 중 하나이자[7]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속 우승을 이룬 클럽으로 UEFA 영예의 뱃지를 부착할 수 있는 여섯 팀 중 하나이다.[8]

2 역사

2.1 아약스의 탄생과 성장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1900년에 탄생했다. 팀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일리아드의 주연급 인물인 아이아스에서 따온 것이다.
창단 후 초창기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아마추어 실업 축구팀에 더 가까운 형태였는데, 어쨌든 1910년대부터 네덜란드 전국 축구 대회에 참가했고, 이미 지역 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아약스는 전국 대회에서도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당시 아약스의 감독이 잉글랜드에서 온 잭 레이놀즈(Jack Reynolds)라는 인물인데, 레이놀즈는 토탈 풋볼의 형태를 최초로 구상한 감독이었다. 그는 아약스에서만 25년의 감독 생활을 했으며, 레이놀즈의 지도 하에 아약스는 에레디비지 출범 전까지 총 8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누린다. 이미 아약스는 네덜란드의 강호였고, 항구 도시 로테르담의 챔피언격인 페예노르트와는 이 때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1955년 에레디비지가 정식으로 출범하자, 기존의 아마추어 실업 팀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프로 클럽으로 출범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기존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나가 1957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네덜란드 무대에서 여전히 강호로서 명성을 이어 나갔다. 이런 강호로서의 면모는 196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는 형태가 아닌, 더 혁신적이고 무서운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나타난다. 바로 토탈풋볼이라는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감독 리누스 미헬스와 그의 사고를 현실에서 구현시킬 천재 요한 크루이프였다.

2.2 리누스 미헬스요한 크루이프와 토털 풋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평가되는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토털 풋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당대 최고로 혁신적인 전략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생겨난 전술은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잭 레이놀즈 감독이 아약스를 이끌면서 선보인 바가 있었기 때문, 토탈 풋볼 또한 미헬스가 어렸을적 잭 레이놀즈의 아약스를 보면서 자랐기에 영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이놀즈의 아약스는 네덜란드 안에서만 활약하였기에 유럽 전역에 알릴 기회가 없었고 덕분에 아약스는 자기들만의 축구를 더욱 발전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미헬스가 아약스를 이끌던 때에 생겨난게 바로 유로피언 컵. 별들의 축제라는 무대가 있었기에 유럽과 세계를 상대로 토탈 풋볼을 널리 알릴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토탈 풋볼은 현대 축구의 시발점이 되는 계기가 된다. 토탈 풋볼의 선구자인 레이놀즈를 보며 자라난 소년 미헬스는 아약스의 감독이 되어 토탈 풋볼을 완벽히 구현하였고 이에 가장 성공한 혁명가가 되었으며, 이 전략을 일선에서 선두지휘하고 실행할 천재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결국 이 둘은 아약스를 네덜란드의 그냥 강호에서 축구 역사를 뒤흔드는 절대 강자로 탈바꿈시키게 된다. 1960년대 이러한 아약스의 전략은 네덜란드 무대에서 리그를 씹어 먹는 수준으로 변했고, 크루이프와 그의 조력자인 요한 네스켄스, 아리에 한, 피트 카이저 같은 선수들이 지배한 아약스는 급기야 네덜란드 무대를 넘어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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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69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의 크루이프

특히 1968-69 시즌은 아약스로선 찬란한 시작이었다. 물론 이전에 출전한 두번의 유로피언컵은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유로피언컵 32강 1차전 뉘른베르크 원정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80분을 기점으로 아약스는 바뀌기 시작했다. 크루이프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기세를 역전시켰고 이어진 2차전에서 4-0으로 종합 5-1 대승을 거두고 16강에서 페네르바흐체를 종합 4-0으로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8강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에게 홈에서 1-3으로 패하면서 탈락의 위기가 있었지만 벤피카 원정에서 크루이프가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뜨리며 3-1승리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이어진 재경기에서 연장전승부 끝에 크루이프가 결승골 다니엘손이 쐐기골을 연달아 두번 박으면서[9] 준결승에 안착한다. 그리고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강호인 스파르타크 트르나바를 3-2 혈투끝에 간신히 꺾고 결승까지 진출한다. 다만 결승에서 밀란에게 1-4로 완패하며 첫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크루이프가 대회내내 뛰어난 활약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미헬스의 토탈풋볼 또한 주목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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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들
(좌측부터 코바슈(감독), 카이저, 블랑켄부르크, 크루이프, 수르비어, 쉴러, 게하르트 뮈런, 아르놀트 뮈런, 네스켄스, 훌스호프/스바르트, 렙, , 웨버, 스투이, 크롤, 클랜턴, 뮐더)

1970-71 유로피언 컵에서 파나티나이코스를 꺾고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더니, 급기야 3년 내내 아약스가 빅 이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와중에 71-72 시즌에는 트레블까지 달성한 것은 덤. 특히 71-72 시즌은 미헬스가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는데, 48전 42승 5무 1패, 135득점 27실점, 승률 87.5%라는 기록을 세웠다. 87.5%의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역대 최고 승률이기도 하다.

이 시기 동안 아약스가 무찌른 클럽들은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인테르, 유벤투스, 벤피카, 마르세유, 파나시나이코스, 밀란[10] 당대 유럽에서 최정상을 다투던 클럽들이었다. 그것도 신승이 아니라 완벽한 압승으로 우승을 거두었으니, 아약스가 던져 준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73년에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떠나면서 구심점을 잃은 아약스는 유럽대항전에서의 첫번째 황금기를 너무 이른 시기에 마무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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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그 자체이자 전설

2.3 다시 찾아온 아약스의 르네상스

크루이프가 떠난 아약스의 화려한 유로피언 컵 전성기는 당분간 지속되지 못했다. 세번째 빅 이어를 획득한 아약스는 이후 10년동안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이 기간동안에 유럽 대항전에서 준결승 1회, 8강 1회를 제외하면 조기탈락이 많았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리그는 6번 우승하며 적어도 국내에서 만큼은 아직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1985년, 크루이프가 감독으로서 아약스에 복귀하게 된다. 크루이프는 3년 동안 아약스 지휘를 했는데 정작 리그 우승에는 연달아 실패하고 말았다. 대신에 컵 위너스 컵 우승에 성공하여 염원하던 유럽 대항전 챔피언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크루이프가 떠난 이후 아약스는 마르코 판 바스텐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밀란 이적, 70년대 크루이프 아약스의 막내였던 정신적 지주 아르놀트 뮈런이 은퇴를 하면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뜬금없이 1989-90시즌에 에레디비지에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고 만다. 그러나 UEFA컵 1라운드에서 아우스트리아 빈과 경기를 치뤘는데, 아약스 서포터가 빈의 골키퍼였던 프란츠 볼파르트를 부상시키면서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 출전을 금지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이였지만 판을 다시 뒤집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1991년, 당시만 해도 초짜 감독인 루이스 반 갈이 아약스에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경험이 없는 반 갈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반 갈이 선수단을 패기있게 휘어 잡으면서 다시 분위기를 역전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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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바로 부임 첫 시즌에 UEFA컵이라는 대어를 낚게 된 것이다.

이 우승에는 오랫동안 같이 플레이를 했었던 다니 블린트, 프랑크 더 부르, 데니스 베르캄프, 아론 빈터르 등 선수들의 뛰어난 조직력에 대한 공헌이 컸었다. 그러나 이후 베르캄프를 필두로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떠났고, 남은 베테랑이라고는 다니 블린트, 프랑크 더 부르, 소니 실로이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에드빈 반 데 사르,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마르크 오베르마스, 은완코 카누, 마이컬 레이지허르같은 풋내기들 뿐 이었다. [11]

그렇지만 밀란에서 황금기를 보낸 베테랑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핀란드에서온 폭격기 야리 리트마넨이 합류 하면서 아약스는 강팀으로 변모하게 된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적절한 조화는 곧 팀 케미의 폭발로 이어졌으며, 특히 1994-95시즌에 정점을 찍었는데 리그에서 27승 7무, 챔스에서 7승 4무를 기록하며 무패 더블을 달성한 것이다. 리그에서는 아예 무적, 챔스에서는 조별리그에서 4승 2무, 8강에서 다크호스인 하이두크 스플리트를 3-0으로 대파하고,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5-2로 대파 하면서 후덜덜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승에서 클루이베르트의 결승골로 AC 밀란을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 사건은 전무후무하며 앞으로도 나오기가 매우 힘들 것이기에, 사실상 아약스만이 가진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챔스에서의 3승이 모두 밀란을 상대로 얻은 것이며, 조별리그에서 홈,원정 모두 2-0 승, 그리고 결승에서 1-0 승을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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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제너레이션이 긴 전성기로 인한 임팩트였다면 아약스 제너레이션은 젊은 패기로 단기간에 역대급 포스를 뽐냈던 시대로 본다.

1995-96시즌엔 레이카르트의 은퇴와 세도르프의 세리에 진출로 전력손실을 입었음에도 더욱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3연패와 챔스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그것도 그냥 올라온 것이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같은 강호들을 때려 잡으면서 올라왔다. 8승 1무 1패라는[12] 압도적인 전적으로 결승에 진출, 그렇게 해서 만난 상대가 마르첼로 리피가 이끄는 유벤투스였다. 아약스는 챔스 2연패를 노렸지만 유베 역시 만만치 않았고, 승부차기에서 다비즈와 실로이의 실축으로 4-2 패배를 하며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4위, 더치 컵 탈락, 챔스 준결승에서 유벤투스에게 2-6 대패를 당하게 된다. 결국 루이스 반 갈이 FC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베테랑들의 은퇴와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인해 르네상스도 마감하게 된다.

2.4 2000년대

2000년대에는 여전히 리그 강호로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리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새롭게 떠오른 라이벌 PSV 아인트호벤에게 번번이 밀린 탓이 크다. 그리고 아인트호벤이 어느 정도 쇠락한 후에는 신흥 강호로 떠오른 AZ 알크마르라든가, FC 트벤테에게 밀리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아약스는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내고 있다. 베슬러이 스네이더르나, 클라스 얀 훈텔라르, 루이스 수아레스 같은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UEFA 영예의 뱃지를 달 수 있는 팀들과는 대조적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초라하다. 2000년대 와서 챔피언스 리그도 32강에서 고전하고 있으며 우승 후보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2008년에는 체코 슬라비아 프라하에게 원정과 안방 경기 모두 지면서 32강조차 못 가고 탈락했으며 그 뒤로 줄곧 유로파 리그에서도 32강 가기도 벅찬 부진을 보여줬다.

이렇게 몰락해버린 원인은 바로 재정문제에 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아약스는 유러피언컵 대회에서 최강의 팀 중 하나였으나, 2000년대초 레알의 갈락티코 정책을 기점으로 빅 클럽들의 과도한 영입경쟁이 시작되었고, 상대적으로 재정이 매우 열악한 아약스에겐 경쟁력에서 밀려 몰락하게 된 것 이다.
그리고 아약스가 소속한 에레디비지에 또한 이미 리그 경쟁력을 잃어 소속클럽들이 유럽대항전에 나가기만 하면 승점셔틀당하기 일쑤며, 그나마 선수수급 및 유망주 수출로 먹고살던 것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에 밀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리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아약스를 비롯한 상위권팀들은 그동안 다져온 유스 시스템 덕분에 버티고 있다지만, 옛날만 해도 유럽의 상위리그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꿀리지않던 때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상당히 굴욕적인 신세이다.

요즘 프로세계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게 부를 거머진 구단들은 대부분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맨시티만수르가 인수하기전만 해도 그저그런 중하위권팀이었지만 인수되고나선 4년만에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했고 이젠 4강권에서 우승후보급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이다.또한 파리 생제르맹같은 경우도 구단주이자 카타르 국왕인 알 사니의 강력한 부를 바탕으로 막강한 지름신과 함께 곧바로 강팀으로 급부상하는등 현대 축구에서는 돈이란 곧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그에 반면, 아약스는 이적자금에 쓸 예산은 커녕 선수들의 주급 감당조차도 힘들게 되어 결국 셀링클럽으로 전락하였고, 아약스가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유스 시스템마저 이 시스템으로 키운 유망주들을 붙잡을 돈이 없어서 기껏 발굴한 대형 유망주들을 속속히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에는 모처럼 최고이적료 갱신 영입을 했다지만 이때 쓴 이적료가 17m도 안된다는것이 매우 안습한 아약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3 현재

3.1 2009-2010 시즌

리그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성적을 거두면서 2위에 그친다. 어떠한 성적인가 하니 27승 4무 3패, 승점 85점에 골 득실 +86흠좀무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1위인 트벤테가 골득실은 +40에 불과하면서 86점의 승점을 쌓는 바람에 30번째 우승을 놓쳤다.

그나마 FA 컵인 더치 컵에서 2010년 라이벌 페예노르트를 4:1로 이기며 오랜만에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3.2 2010-2011 시즌

더치 컵 결승전에서 트벤테에게 3:2로 역전패했지만 리그 마지막 경기가 5월 15일 아약스 안방에서 열리는데 아약스가 상대팀인 트벤테를 이기면 승점 2점을 앞서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거두게 된다. 그야말로 리그 결승전인 셈. 그리고 이 리그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하면서 7년 만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통산 30번째 우승.

3.3 2011-2012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마지막 1경기를 남겨 두고 레알 마드리드 다음으로 조 2위에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하는가 싶더니만 약체인 디나모 자그레브가 올랭피크 리옹과의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7:1로 대패하면서 골 득실을 넘어서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나면서 극적으로 탈락, 유로파 리그로 진출하게 되었다. 32강에서 맨유와 격돌하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패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맨유 원정에선 2:1로 역전승을 거뒀지만 사실 맨유가 주전들을 쉬게 하고 유망주들을 대거 시험한 경기라서 큰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골 득실로 밀려서 결국은 32강에서 탈락했다.

리그에선 좀 부진한 편. 21 라운드까지 리그 6위로 밀려나 있다. 1위 PSV와의 승점차는 8점이라 그렇게 불안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알크마르, 트벤테, 페예노르트와 중위권 팀인 SC 헤렌벤에까지 승점에서 뒤쳐져 있으며 20 라운드 경기에선 리그 15위로 하위 팀인 위트레흐트에게 안방에서 2:0 완패를 당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4 라운드까지 4위로 일단 올라서긴 했지만 헤렌벤과 페예노르트가 1, 2점차로 바짝 추격 중이라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분위기. 그리고 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껑충 올라섰다. 27차전에선 PSV를 홈에서 2:0으로 이기면서 1위인 알크마르를 1점차로 추격 중이다. 28차전에서 드디어 리그 1위로 올라서며 부진을 털어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32차전 트벤테 원정에서 2:1로 이기면서 31번째 리그 우승을 거뒀다. 2위로 뛰어 오른 페예노르트와 골 득실차가 20 골 이상이나 나기 때문에, 남은 2경기를 져도 승점 70점 동률인 상태에서 골 득실에서 앞서는 아약스가 일찌감치 우승을 결정지었다.

3.4 2012-2013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DDeath조에 들어가서 3년 연속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아약스에겐 신도 부처도 없단 말인가하게 됐고 맨체스터 시티 FC,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한 조에 속해 있다. 1차전 도르트문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배했다. 2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 경기에서는 1:4로 패배했다. 다시 도르트문트에게 안방에서 1:4로 대패하면서 16강은 무산되었지만 맨시티를 상대로 안방에서 3:1 승, 원정에선 1:1로 비겼다. 마지막 6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이 고비. 아약스가 지고 맨시티가 도르트문트 원정을 이기면 아약스는 4위 꼴찌로 탈락하지만 둘 다 질 경우 아약스가 3위로 그나마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라도 얻게 된다. 맨시티 챔스 꼴 보니 희망이 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1:4로 털렸지만 맨시티도 져서 3위로 유로파 리그나마 진출했다. 유로파 리그 32강 상대인 루마니아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는 지금은 챔피언스 리그 나오면 동네북이 되는 팀이지만 이래봬도 과거 유러피언 컵 시절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FC 바르셀로나까지 제치고 우승한 역사가 있다.[13] 챔피언스 리그 우승 기록으로는 더 압도적인 아약스지만 2000년대 와선 챔피언스 리그에서 같이 동네북이 된 상황. 그렇기에 서로 무시할 팀은 아니었다. 1차전 안방에서 2:0으로 이겼지만 2차전 원정을 0:2로 패하는 통에 연장전까지 벌여 결국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배, 유로파 리그에서는 일찌감치 탈락했다.
리그는 13차전까지 4위. 저번 시즌처럼 중반까지 부진하다가 역전하여 우승한 경험도 있기에 아직은 불안하지 않지만 일단 1위 아인트호벤과 9점으로 벌어진 상황. 하지만 역시 추격하면서 23차전까지 47점을 기록, 승점차를 3점으로 좁혔고 역전에 성공했다. 5월 5일 빌렘 II를 상대로 5-0으로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추가한 아약스는 2위 PSV와의 승점 차이를 4점으로 유지했고, 마지막 라운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3.5 2013-20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 추첨이 환상적이다. 바르셀로나, 밀란, 셀틱. 공교롭게도 역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끼리 모였는데 아약스로선 가장 만만한 게 셀틱...벌써부터 셀틱을 잡고 유로파 리그 32강이라도 진출해야 한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크리스티안 에릭센,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등 주요 전력이 왕창 빠져 나간 아약스 입장에선 한숨만 나온다. 안방에서 밀란과 1-1로 비기는 선전을 했지만 바르셀로나 원정에선 0-4로 뭉개졌고 3차전 셀틱 원정에서 1-2로 패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5차전에서 안방 경기로 치러진 바르셀로나전을 2-1로 이기고, 셀틱은 대패하면서 3위로 역전되었다(셀틱은 최하위 확정). 마지막 6차전인 밀란 원정을 이기면 조 2위로 16강행이 확정된다...지만 어려울 듯. 패하면 유로파 리그행인 밀란도 총력을 다할 테고 일단 밀란과 안방 경기를 비기고 바르셀로나도 이긴 아약스였지만 원정은 셀틱전에서 패했듯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밀란 원정에서 무재배를 이끌었지만 밀란에게 1점차로 밀려 3위로 탈락, 유로파리그로 나가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초반부터 훌륭한 찬스를 만들어 내며 밀란을 몰아붙였고 몬톨리보의 퇴장으로 전반전부터 숫적 우위까지 점했지만, 밀란의 중동 축구를 연상케 하는 배째기식 전원 수비를 뚫지 못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유로파리그에선 오스트리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14]과 32강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축구월간지 베스트 일레븐 지에선 아약스가 유로파리그 16강에 거뜬하게 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는데 웬걸, 리그에 전념하고자 그런 건지 1차전 안방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잘츠부르크에게 0:3 참패를 거두며 2차전 원정을 힘겹게 치루게 되었다. 결국 2차전에서도 1-3으로 패하면서 1:6 이란 압도적인 참패로 탈락했다. 리그에 전념하고자 유로파리그는 포기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약스 이름값과 그다지 강호가 아닌 상대를 봐도 너무 크게 져서 아약스팬들에게 욕을 거하게 처먹었다. 하지만 그나마 아약스가 거둔 유로파리그 32강이 13-14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에레디비지 팀으로서 가장 잘한 성적이었다...[15]

리그는 우승하면서 4시즌 연속 우승이자 3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FA컵인 KNVB 컵 결승에서 리그 11위를 거둔 PEC 즈볼레에게 예상을 뒤엎고 1:5 라는 환상적인 참패를 거두면서 준우승하는 통에 리그 우승하고도 유로파리그와 KNVB 컵에서 참패로 덩달아 화려한 욕도 처먹었다.

3.6 2014-2015 시즌

리그에서는 15라운드까지 아인트호벤에게 밀려 2위를 기록 중이다. 다만 1점차라서 역전 우승 가능성도 남아있었으나 점차 벌어지면서 24라운드에서는 14점까지 승점차에 아인트호벤에게 밀려 리그 우승이 어려워졌다. 결국 이 14점차를 좁히지 못하며 일찌감치 아인트호벤이 7시즌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KNVB컵에서는 8강전에서 2부리그인 비테세 아른헴에게 0-4로 참패하면서 탈락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32강 조추첨으로 FC 바르셀로나파리 생제르망,아포엘과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첫 경기인 파리와의 경기에서 예상을 뒤집고 대등한 승부를내고 바르샤도 아포엘에게 의외로 한골밖에 못넣는 경기를 해서 16강 진출도 노릴만했지만 3,4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정신없이 털리는 바람에 16강 진출은 실패했고, 남은 경기에서 아포엘과 3위 경쟁을 하게되는데 만약 3위가 된다면 5연속으로 챔스 조별리그에서 유로파행이라는 기록을 세우게된다. 결국 아포엘을 이기면서 3위를 차지해 유로파리그에 나가게 되었다. 32강전 상대는 레기아 바르샤바(폴란드). 3-0,1-0으로 거뜬하게 이기며 오랫만에 유로파리그 16강에 올랐다.풍악을 올려라, 유로파리그 16강이나 올라갔다...챔스리그 우승 4번의 명문이 이젠 유로파리그조차도 16강에 올라가면 감지덕지

32강전에서 아인트호벤이 똑같이 0-3,0-1로 제니트에게 박살나며 탈락하고 페예노르트도 AS로마에게 탈락한 터, 이번 14-15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에레디비지 팀에서 가장 성적이 좋다. 16강전 상대는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일단 상대가 쉬워보이지만 2000년대와서 아약스도 중위리그 중위팀에게 유로파리그에서 덜미를 여럿 잡혀본 터라 얕잡아 볼 상대는 아니다. 결국 드니프로에게 1승 1패(2-1,0-1)를 거뒀으나 원정 다득점 우위로 밀려 유로파리그 16강에서 만족해야 했다. 참고로 드니프로는 이번 유로파리그 준우승(우승은 세비야)까지 차지했던 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하지만 2년도 안가 드니프로는 2016년 팀이 재정난으로 해산했다!

그런데 UEFA 유스리그에선 아약스 청소년팀이 유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인 바르샤를 상대로 1승 1무를 거두고 파리와 아포엘을 관광보내는 등, 선배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아약스 유스의 위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그럼 뭐하냐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텐데

3.7 2015-2016 시즌

리그에서 초반부부터 리그 1위를 줄곧 달렸으나 후반에 점차 밀리더니만 마지막 34차전에서 강등팀인 그라프샤프 원정에서 1-1로 비겼다. 그리고 2위이던 아인트호벤이 34차전을 이기면서 2점차로 리그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2시즌 연속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오스트리아 라피드 빈에게 2-3,2-2, 이렇게 1무 1패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나마 유로파리그 48강 본선에 올라가 페네르바흐체, 셀틱 FC, 몰데 FC (노르웨이)와 경기를 벌이게 되었다. 첫경기인 셀틱과의 홈경기는 2-2, 2번째 경기인 몰데 원정은 1-1로 비겼고 3차전 페네르바흐체 원정은 0-1로 졌다. 결국 셀틱과 페네르바흐체에 밀려 조 3위로 탈락해 시즌 유러피언 대회는 일찌감치 끝낸 반면, 리그 라이벌 아인트호벤이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면서 오랫만에 네덜란드 클럽으로 좋은 성적을 냈기에 아약스의 탈락은 씁쓸한 끝을 맺었다.

3.8 2016-17 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FC 로스토프에게 홈에서 1-1로 비겼고 원정에서는 1-4로 뭉개져서 역시 이번 시즌도 32강 본선도 못가고 탈락했다. 이렇게 하여 또 유로파리그 48강으로 나가게 되었다.

4 선수

4.1 명단

2016-2017 AFC 아약스 1군 스쿼드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영문이름
2DF30px케니 테테Kenny Tete
3DF30px조엘 벨트만(부주장)Joël Veltman
4DF30px자이로 리데발트Jaïro Riedewald
5DF30px다빈손 산체스Davinson Sánchez
7FW30px다비드 네레스David Neres
8MF30px댈리 싱크하벤Daley Sinkgraven
9FW30px베르트랑 트라오레 첼시 FC에서 임대Bertrand Traoré
10MF30px데이비 클라센(주장)Davy Klaassen
11MF30px아민 유네스Amin Younes
16DF30px하이코 베스터만Heiko Westermann
17FW30px바클라프 체르니Václav Černý
19FW30px마테오 카시에라Mateo Cassierra
20MF30px라세 쇤Lasse Schöne
21MF30px프렌키 더 용Frenkie De Jong
22MF30px하킴 지예흐Hakim Ziyech
24GK30px안드레 오나나André Onana
25FW30px카스퍼 돌베리Kasper Dolberg
26DF30px닉 비르헤버Nick Viergever
30MF30px도니 반 더 베크Donny van de Beek
33GK30px디드릭 부르Diederik Boer
34MF30px압데라크 누리Abdelhak Nouri
36DF30px마타이스 데 리트Matthijs de Ligt
45FW30px저스틴 클루이베르트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의 아들이다.Justin Kluivert
48GK30px노베르트 알블라스Norbert Alblas

4.2 유명 선수

4.2.1 네덜란드

4.2.2 UEFA

4.2.3 CONMEBOL

4.2.4 CAF

4.2.5 AFC

4.3 영구 결번

AFC 아약스 영구 결번
No.14 요한 크루이프

전설적인 축구선수 요한 크루이프의 등번호 14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5 한국과의 관계

다른 빅3팀인 허정무, 박지성, 이영표가 활약했던 PSV 아인트호벤이나 송종국, 이천수가 뛰었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비해 한국과 관계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석현준이 팀의 유스를 거친 뒤 2009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2군에서 뛰다가 방출되어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16]

6 유니폼

아약스의 유니폼은 대체로 흰색 바탕에 세로로 구성된 굵은 붉은색 띠 모양으로 매우 개성이 뚜렷하고 예쁜 유니폼으로 유명하다. 물론 초창기부터 이런 유니폼은 아니였다. 창단 직후엔 유니폼 상하의가 모두 검정색이고 허리에 붉은띠가 있던 형태였으나 얼마안가 연고지인 암스테르담의 깃발색에 맞게 빨강, 하양 줄무늬에 검은색 바지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미 스파르타 로테르담[17]이라는 당시 네덜란드의 강팀이 존재했는데 이 팀 또한 아약스처럼 빨강, 하양 줄무늬에 검은색 바지라는 유니폼 구성이었기에 당시만해도 신생 클럽이던 아약스는 축구 협회의 규정에 따라 유니폼을 바꿀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탄생한게 아약스의 현재 유니폼인 것 이다. 지금 와서 보면 매우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7 좋은 유스 시스템과 무수한 슈퍼 스타

탁월한 유스 시스템 아래 무수한 스타를 발굴했고, 이들 스타들은 그야말로 네덜란드 축구를 살찌웠다. 멀리는 요한 크루이프부터 시작해 마르코 반 바스텐, 데니스 베르캄프, 데 보어 형제, 에드가 다비즈, 마르크 오베르마스, 프랑크 레이카르트, 미카엘 라이징어, 에드윈 반 데 사르, 라파엘 반 더 바르트 등등. 그야말로 네덜란드 축구의 대들보들이 아약스에서 나왔다.
나이지리아은완코 카누는 어린 시절 아약스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명성을 얻었다. 핀란드의 외로운 에이스 야리 리트마넨도 아약스 출신이며, 무엇보다 현재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인 스웨덴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경험을 얻었던 곳, 성장했던 곳이 바로 아약스다. 그 외에도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키부가 젊은 시절을 여기서 보냈고, 최근에는 잇달아 얀 페르통언루이스 수아레스,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을 연이어 EPL로 올려 보내며 여전히 선수 길러내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어서 남아공에는 케이프 타운 아약스라는 자매팀이 있다.

8 유태인 클럽?

사실 팀의 자본이나 설립자, 초창기 운영 과정에 유태인 자본이나 인력이 들어간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유태인 자본이나 인력은 들어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아약스 하면 곧 유태인 클럽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은 그들의 초기 홈 구장이 유태인 거주 구역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아약스 팬들이 이런 유태인 클럽이라는 인식에 대해서 전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즐겼다는 점.
실제로 응원 도중에 이스라엘 국기가 올라온다던가 하는 행동으로 클럽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다만, 상대팀의 경우 이에 대항해서 "너희는 가스실로 쳐 가야 해."라고 하는 경멸적인 응원을 했다. 과거에는 나치 스바스티카, 즉 하켄크로이츠를 매달고 야유하다가[18][19] 비난을 받자 나치 깃발 대신 팔레스타인 깃발을 매달고 야유하기도 한다.[20]
축구인 서형욱이 2002년 네덜란드를 갔다가 아약스 유니폼을 입고 가는데 얻어탄 트럭 운전사인 흑인계 네덜란드인(페예노르트 팬이었다고)에게 "지드(Yid=유태인을 비하하는 말)들의 구단을 응원하러 왔냐?"라는 야유 섞인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9 기타

본래 팀 창단 당시 로고는 선수의 그림을 썼지만 1928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아약스의 머리를 로고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 약간의 변화를 줬는데, 머리를 표현한 선은 단 11개에 불과하다. 이 11개는 바로 축구에서 뛰는 11명의 선수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 팀 때문에 웹 어플리케이션 제작 기술 중 하나인 AJAX를 아약스라고 읽는 사람이 가끔 있다. 이렇게 읽는 사람이 있다면 100에 99는 축빠라고 보면 된다(...).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100%
국제무대에서는 2번째로 우승 및 2번 우승한 기록이 많다. 네덜란드 클럽중에서는 페예노르트에 이어서 두번째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인 빅이어를 들었었고, 셀틱에 이어서 두번째로 트레블을 했었고,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서 두번째로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해냈고, 유벤투스에 이어서 두번째로 UEFA 주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했다. UEFA 슈퍼컵은 두번 우승했고, 인터컨티넨탈컵도 두번 우승 했다. 끝으로 챔피언스리그에 한해서 콩라인으로도 2번 준우승했다.
바이에른 뮌헨과는 묘하게 닮은 부분이 많다. 당장 위에서 서술한것 말고도 같은 해에 창단되었다는 점과, 서로 자국리그에서 최다우승을 자랑하고있으며, 최고의 레전드로 대우받는 선수이 서로 라이벌이라는 것, 그리고 아약스가 주축이였던 네덜란드가 뮌헨이 주축인 독일한테는 국가대항전에서 최대의 라이벌이였으며, 실제 상대전적도 서로 장군과 멍군을 반복한 결과 3승 2무 3패의 동률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이 둘의 공감대를 형성 하고있다. 물론 2010년대 요즘에는 둘이 만나면 아약스가 일방적으로 털릴것이 뻔한 게 현실이고 바이에른 뮌헨은 여전히 챔피언스리그 우승후보인 강호이지만 이젠 아약스는 우승후보는 고사하고 챔피언스리그 16강만 가도 엄청나게 잘하는 신세,아니 32강에서도 줄줄이 탈락하여 유로파리그에서도 16강만 가도 잘하는 신세이긴 하지만.
유벤투스에겐 유달리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인 전적은 2승 4무 6패로 열세인데, 여기서 더 뜯어보면 좋았던적은 딱 한 번뿐이다. 첫 대결은 1973년 유로피언 컵 결승전으로 첫 승리는 아약스가 따냈었다. 덤으로 유로피언 컵 삼연패도 성공,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1974-75시즌 UEFA컵 16강에서 유벤투스와 두번째 맞대결을 펼쳤는데 1승 1패를 거뒀으나 유벤투스한테 원정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로 유베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1977-78시즌 유로피언 컵 8강에서 유베와 세번째로 격돌했을때는 2무를 거두며 무패는 했지만 승부차기에서 져서 탈락하였고, 20여년이 지난후에 겨룬 4번째 승부는 챔스 결승전이였는데 여기서도 1무를 기록했지만 승부차기를 또 져서 준우승에 그쳤다. 그 후 챔스에서 유벤투스한테 4연패를 당하였고, 가장 최근에 붙었던 2009-10시즌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유벤투스를 만나 1무 1패를 거두고 탈락, 옛날이든 지금이든 유독 유벤투스만 만나면 정신없이 털렸었다. 유베보다 더 취약한 상대라고는 바르샤나 레알이 있겠지만 바르셀로나랑은 맞대결의 역사가 2013년에 챔스 조별리그에서 시작된터라 매우 짧았고, 레알 마드리드한테는 2010년챔스에서 오랜만에 붙기전만해도 4승 1무 1패로 오히려 우세였으나 조별리그에서 번번히 만나는바람에 내리 6연패를 찍고말았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동안 시달려왔던 상대는 유벤투스가 유일.

10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Madrid.png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40px1956년11회
260px벤피카
(Benfica)
40px1961년2회
3Milan I of Serbia.png밀란
(Milan)
40px1963년7회
450px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40px1964년3회
548px셀틱
(Celtic)
40px1967년1회
650px맨유
(Manchester Utd.)
40px1968년3회
750px페예노르트
(Feyernoord)
40px1970년1회
854px아약스
(Ajax)
40px1971년4회
9Bayern.png바이에른 뮌헨
(Bayern)
40px1974년5회
10Liverpool.png리버풀
(Liverpool)
40px1977년5회
1135px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40px1979년2회
1240px애스턴 빌라
(Aston Villa)
40px1982년1회
1350px함부르크
(Hamburg)
40px1983년1회
1437px유벤투스
(Juventus)
40px1985년2회
1544px스테아우아
(Steaua)
40px1986년1회
1640px포르투
(Porto)
40px1987년2회
1750pxPSV
(Eindhoven)
40px1988년1회
1840px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40px1991년1회
19Barcelona.png바르셀로나
(Barcelona)
40px1992년5회
2050px마르세유
(Marseille)
40px1993년1회
2150px도르트문트
(Dortmund)
40px1997년1회
22Chelsea.png첼시
(Chelsea)
40px2012년1회
?width=20 ECA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50pxMadrid.png50pxLyonnais.png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레인저스
(Rangers)
리옹
(Lyon)
50pxMilan I of Serbia.pngBarcelona.pngBayern.png
맨유
(Man Utd)
밀란
(Milan)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이에른
(Bayern)
35px50pxAnderlecht.png50px
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아약스
(Ajax)
안더레흐트
(Anderlecht)
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30pxChelsea.png50px35px
유벤투스
(Juventus)
첼시
(Chelsea)
쾨벤하운
(København)
포르투
(Porto)
틀:에레디비지
  1. 발렌시아 CF와 창립일이 같다. 아약스가 만 19살일 때 발렌시아가 창단. 여담으로, 발렌시아는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삼으며 똑같이 오렌지색이 상징인 네덜란드의 대표클럽도 아약스다. 발렌시아는 오렌지 특산물로 유명한 도시이며 네덜란드는 국부인 오라녜 공의 영향으로 상징색이 아예 오렌지다(네덜란드어로는 오라녜). 이 정도면 기묘한 인연. 뿐 만 아니라 둘 다 UEFA 대회에서 2와 엮인 경우가 많았다. 발렌시아는 2연속으로 챔스 결승에 진출했으나 전부 져서 2위를 하였다. 라리가에서도 레알과 바르샤를 제외하고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순서도 두번째. 게다가 아약스와 발렌시아는 2002-03시즌 딱 한번 맞만났는데, 이때 정말 가관이였다. 16강을 조별리그로 치룬터라 두번째 조별리그 였으며 B조였기에 조 순서도 두번째였다. 발렌시아와 아약스, 아스널, 로마가 한 조 였는데 아스널은 전 시즌에 두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했고, 로마는 준우승으로 챔스 본선 티켓을 얻었다. 그리고 아약스와 발렌시아가 조별 리그를 통과하였는데 이 둘의 최종 전적이 2무에다가 스코어도 2:2(...)그리고 이 둘은 8강전에서 밀라노팀에게 패하여 사이좋게 탈락한다.
  2. 네덜란드의 슈퍼컵.
  3. 237경기를 뛰어서 273골을 넣은 괴물 같은 득점력을 지닌 선수였다.
  4. 네덜란드어토탈 풋볼을 뜻함
  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UEFA 슈퍼컵, 현재 폐지된 UEFA 컵위너스컵
  6. 다른 한 팀은 바이에른 뮌헨
  7. 다른 팀들은 셀틱, PSV,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FC 바이에른 뮌헨.
  8. 챔스 3연패 또는 5회 우승을 기록한 팀에 한해서만 주어진다. 다른 5팀은 레알 마드리드, FC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리버풀 FC, FC 바르셀로나. 이 중 저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밖에 없었으나, 2012-13 시즌에 바이에른이 5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두 번째 클럽이 됐다.
  9. 아약스는 벤피카와 3경기를 치르면서 두명의 아약스 선수만이 골을 넣었는데 다니엘손이 4골,크루이프가 3골을 넣었다.
  10. 밀란의 경우 이 때 아약스에게 당한 0-6 참패가 아직까지도 클럽의 유럽 대회 기록으로 남아 있다.
  11. 그러나 이 풋내기들은 훗날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축구선수로 성장하였다
  12. 준결승 1차전 파나티나이코스 원정에서 당한 패배
  13. 게다가 요한 크루이프의 드림 팀으로 회자되는, 전성기의 바르셀로나였다. 슈테아우아와의 결승전은 바르셀로나에게 손꼽히는 흑역사로 기억되는데 승부차기 스코어가 0-2.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국 대표 팀
  14. 그 음료 레드불을 만드는 그 곳이다.
  15. 에레디비지 항목에도 나오듯이 같은 시즌 유로파 리그에 나온 페예노르트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 아인트호벤은 48강에서 탈락했다. 32강이라도 간 아약스가 가장 잘했다.
  16. 심지어 이 당시 국내 방송사의 중계도 없었다. 참고로 석현준이 FC 흐로닝언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KBS N 스포츠에서 중계를 했다.
  17. 아약스 이전에 최초의 네덜란드 대표 클럽, 최강의 네덜란드 대표 클럽이었으나 현재는 2부리그에서 뛸 정도로 몰락한 명문이다.
  18. 유달리 로테르담 페예노르트에서 자주 했다.
  19. 로테르담이 2차대전 때 비무장에도 불구하고 나치에게 무차별 폭격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20. 알다시피 네덜란드도 나치 침략에 호되게 당하고 지배 속에서 신음했기에 유태인이 싫어도 나치는 더더욱 싫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치에 대하여 유럽에서 악의 축으로 여겨지니까 이게 문제가 컸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전혀 그런 인식도 없고 네덜란드 개별적으로 나치와 같은 감정이 없기에 이것을 뭐라고 비난할 것도 없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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