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 社說

신문에서 각종 사건에 대한 회사의 공식 입장을 게재하는 란.

보통 신문의 맨 뒤에서 2번째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특이한 예로 아예 신문 1면에 사설을 게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통사설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통사설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보통 신문 기사는 아무리 극단적인 이념을 지향하더라도 특정 편을 드는 편파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만 언론플레이를 한다면 해당 신문에 불리한 기사는 내보내지 않거나 축소 보도할 수는 있겠지만) 사설만은 각종 사건에 대하여 신문의 직접적인 입장을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에 사설은 신문이 어느 이념을 지향하는지 가장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만 봐도 조중동이나 한경오의 사설을 보면 신문이 어떠한 이념을 지향할 수 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신문사 내에는 편집국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논설위원실이란 게 있는데, 논설위원실장은 편집국장과 비슷한 경력, 비슷한 위상을 가진다.[1] 물론 이들은 실제 현장 취재와 편집을 담당하는 게 아니고 '논설', 즉 사설을 담당하는 이들이다.[2] 일간지에는 매호 3~4 꼭지의 사설이 실리는데, 이 사설을 쓰는 것이 논설위원실의 존재 이유. 논설위원이 기명칼럼을 쓰는 경우도 많이 있다. 보통은 논설위원 수가 4~5명 정도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많은 직급이 필요치 않은 관계로, 논설위원실장과 일반 논설위원만 있는 경우가 많지만, 종종 논설차장이나 수석논설위원[3] 같은 직급을 따로 두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논설위원실장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주필이며, 보통 논설위원실장 출신 중에서 주필이 되는데, 주필이 되었다고 하면 사실상 언론인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간주되며 언론인으로써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이는 언론인 '출신'으로 성공한 거지 언론인으로의 직업은 아니다.

물론 주필은 편집국장보다도 높기 때문에 사설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 전체의 편집 방향에 다 관여한다. 말하자면 논설의 정점이면서, 언론에서 말하는 '데스크'의 정점이기도 한 것이 주필이다. 주필이 쓰는 사설은 영향력이 크며, 보통 그 신문사 전체의 의견으로 간주된다. 물론 실제로는 그 위에 언론사 사주(사장)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썰이 정설이지만, 원칙적으로 사장은 언론의 방향에 직접 관여하면 안 된다. 기자들이 가져 온 여러 기사 중 신문에 올릴 기사 선택을 부장, 국장, 실장, 주필같은 인간들이 논의하는 거라고

보통 해당 언론사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명', 즉 이름을 남기는 기사[4]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용이 어처구니 없거나 짜증이 나도, 혹은 극히 동의하더라도 그 사설을 쓴 사람이 공개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술된 대로 이름을 공개하고 쓰는 경우도 꽤 있고, 각 논설위원마다 그 전에 썼던 글들의 필체가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아서 누가 썼는지 유추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주필이 이름을 내걸고(혹은 자신의 글임이 확 티나도록) 쓰는 글이라면 대체로 시사에 대한 그 언론사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려는 고의적 태도로 간주된다. 물론 이를 기명이라는 속성때문에 사설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논설(칼럼)이라고 분류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사설 항목에 해당하냐 안 하냐는 언론계 내에서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기사는 아니니까

간혹 입시, 논술 대비를 한다면서 사설을 꼭 읽어보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면이 있는데 물론 신문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도움이 되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도움되지는 않는다. 특히 사설의 문체를 답습하면 논술에서 매우 안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설은 논리구조보다는 주장을 드러내는 데에 훨씬 치중하는 글이기 때문. 그러다보니 논리적 비약이나 사실관계의 오류, 상당히 주관적인 서술, 자잘한 맞춤법 오류 등이 의외로 많다. 애초에 몇 안 되는 논설위원들이 길어봐야 1주일에 1회 한번 쓰는 글이 교수들이 몇 달 동안 고심해서 내는 논술문제의 퀄리티에 맞먹을 리가 없다. 사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어야지 그 자체를 체화시키는 태도는 적어도 수험생으로서는 좋지 않은 태도다.

2 私說

개인의 의견이나 설.

3 私設

어떤 것을 개인이 사사로이 설치하거나 설치한 것. 반댓말은 공설이다.

4 辭說

판소리에서 노래를 붙이지 않고 말하듯이 하는 부분. 노래를 붙이지 않는다고 해도 운율이 느껴지는 등 기본적인 음악적 요소는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입시위주 교육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판소리 사설체'로 익숙한 단어이다.
  1. 그러나 보통 논설실장이 편집국장보다 더 선배이고 언론계 위상이 높은 대신, 정치-경제-사회면 쪽 핵심적인 사안 이외의 편집 방향 관여는 적어 실질적 영향력은 적은 경우가 많다. 보통 논설위원은 원칙적으로 기자 신분인 부장이었다가 논설위원이 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진급시간차가 있고, 또 편집국장을 하고 논설위원이 되고 논설실장이 되는 경우도 나름 있기 때문이다.
  2. 물론 어차피 거의 기자 출신들이 논설위원들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취재 경험 문외한 같은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직 기자들의 선배이며, 수십년간의 기자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자리잡혀 있다고 언론사 내에서 인정되어야 논설위원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소수지만 기자가 아닌 출신으로 논설위원이 되는 경우도 예를 들자면, 언론학 관련 박사, 교수 출신으로 (언론사 직원 신분이 아니었더라도) 칼럼을 쓴 경험이 많다거나 하는 등 언론과 많이 관계된 사회적인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쓰기 때문에 글만 쓸 줄 안다고 논설위원이 되지는 않는다.
  3. 사실상 두 직급은 명칭만 언론사별로 다를 뿐이고, 실질적으로 같다. 논설위원실장 바로 다음 위치를 차지한다. 편집국으로 치면 편집국장에 이은 부국장급. 예를 들어 'XX일보 논설(수석)위원 이OO 수석'이라고 하면 '아 그 신문사 논설위원 넘버2'(주필 제외)라고 생각하면 된다.
  4. 그러나 사설도 기사의 속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혹은 기자)의 주관적인 시선을 담은 편집물(에디토리얼)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 원래 기사라는 것 자체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쓰려고 해도 특정부분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다는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주관성이 반영되기 때문.실제로는 객관적으로만 하려는 기사도 애초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