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기의 미 해군 군함 | ||
구축함 | 샘슨급, 칼드웰급, 웍스급, 클렘슨급C, | |
잠수함 | 플렁거급, B급, C급, D급, E급, F급, G급, K급, L급, M-1급, AA-1급, N급, O급, R급 | |
비방호순양함 | 몽고메리급 | |
정찰순양함 | 체스터급 | |
장갑순양함 | 뉴욕, 브루클린, 펜실베니아급, 테네시급 | |
방호순양함 | 시카고, 볼티모어, 센프란시스코, 올림피아, 신시네티급, 콜롬비아급, 뉴올리언스급, 덴버급, 세인트루이스급 | |
순양전함 | ||
전함 | 전드레드노트급 | 인디아나급, 아이오와, 키어사지급, 일리노이급, 메인급, 버지니아급, 케네디킷급 |
드레드노트급 |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델라웨아급, 플로리다급, 와이오밍급, 뉴욕급, 네바다급, 펜실베이니아급, 뉴멕시코급, 테네시급C, 콜로라도급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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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성능제원
전장 | 138m |
전폭 | 24.4m |
흘수 | 7.5m |
배수량 | 16,000t(기준), 17,617t(만재) |
최대출력 | 16,500hp |
최대속력 | 18.86kt |
항속력 | 10kt로 5,000해리 |
무장 | 30.5cm 연장포 4기, 7.6cm 단장기포 22기, 4.7cm 단장기포 3기, 53cm 어뢰발사관 단장 2문 |
탑재기 수 | 없음 |
승원 | 751명 |
동형함 | 미시간 |
2 개요
미 해군의 첫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사우스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급 전함은 이후 세계표준이 되는 적층식 주포탑배치를 처음으로 선보인 함급이다. 미 의회에서 제한한 배수량의 한계로 인해 기관 출력이 낮았으며, 이는 느린 속도라는 단점을 가져오게 된다. 미국이 1차 대전에 참여하는 시점에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이미 구식으로 취급받고 있었고, 때문에 대부분의 함정이 수송선단 호위함이나 훈련함으로 활용되다 1921년 모두 퇴역하게 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미해군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동형함인 미시간의 2척이 건조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영국의 드레드노트급보다 먼저 설계되어 기본구조는 이전과 비슷했지만 건조가 늦어지는 바람에 드레드노트의 취역 후에 준공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혁신적인 설계이던 드레드노트같은 것이 아니라 이전급인 코네티컷급 전함을 발전시킨 형이었다.
때문에 당시 미국전함에 공통된 설계바탕이 본급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당시 미국전함은 긴 항속거리와 연료인 석탄의 저장고가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사우스 캐롤라이나급은 아주 강력하진 않지만 연비가 좋은 VTE 엔진을 채용하고 무장도 20.3cm 연장포 대신 30.5cm 연장포를 상부구조물에 배치하고 빈약한 7인치 포를 철거했다.
하지만 30.5cm포의 사격시 반동으로 인해 문제가 자꾸 발생하자 포탑의 개수가 이루어졌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급은 계단식의포탑을 가진 최초의 함이 되어 이 배치는 이후 함들에게도 이어졌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급은 비록 형식으론 드레드노트급전함에 비슷했지만 속력은 저속이었기에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과 함께 행동해야만 했다.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노급전함급으로 분류하지만 실제론 이전급의 확대개량형이었기에 이를 드레드노트급전함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경향도 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1906년 12월 18일에 필라델피아의 윌리엄 클램프 앤 손즈 조선소에서 기공하여 1908년 7월 1일에 진수 후1910년 3월 1일에 초대함장인 오거스터스 F. 펙텔러 대령의 지휘하에 취역하였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3월 6일에 필라델피아를 출항해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 및 쿠바를 방문한 후 4월 15일까지 체사픽 만에서 훈련에 종사했다.
6월 17일에 뉴욕을 방문하여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환영식전에 참가한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이후 노포크로 이동해 민병대의훈련 등에 참가한 후 1911년 1월 12일까지 제 2 전함전대와 함께 유럽을 방문했다. 프랑스의 쉘부르와 영국의 포틀랜드를 방문 후 노포크로 귀환한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노포크 해군공창에서 보수를 받은 뒤 뉴잉글랜드 해협에서 훈련에 종사했다.
다시 유럽으로 향한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를 방문 후 독일의 킬 군항에 들러 빌헬름 2세가 주최한기념행사에 참석했다. 1911년 7월 13일에 귀환한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이후 체사픽 만에서 훈련에 종사했다. 1913년 9월에 정치적 불안이 이어진 멕시코에서 미국의 권익보호를 위해 카리브 해에 파견되었었다.
1914년까지 중남미 수역에 머물던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노포크로 이동한 뒤 관타나모 일대에서 훈련에 종사하다가 1917년에 미국이 참전하자 1918년 9월 9일에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프랑스로 향하는 선단의 호위를 담당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1919년 7월 후반까지 프랑스를 4번 왕복하며 4천명 이상의 귀환병을 수송했다.
1921년 5월말에 해군사관생도들의 유럽항해에 이용된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12월 15일에 필라델피아에서 퇴역,
1923년 11월 10일에 제적 후 예비함대로 계류되었다. 그 후 워싱턴 해군군축조약으로 폐기가 결정되자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1924년 4월 4일에 매각되어 해체되었다.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사용하던 은제식기 한 벌이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주지사 공관에 공개전시되고 있다.
3 매체에서의 등장
미국 전함 3티어 트리로 나왔다. 미국 전함트리의 시작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