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

1 謝弼

(? ~ 16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보선(輔宣).

동군 무양 사람으로 169년에 조정에서 유도지사를 천거하게 하자 사필은 공손도, 진돈 등을 천거해 그들이 낭중에 임명되었으며, 여름 4월에 푸른 뱀이 황제의 자리 위에 나타나자 사필은 글을 올렸다.

두무의 실패에 두태후를 연좌시키지 말아야 하며, 황제(영제)의 유모인 조요가 사사로이 총애룰 받고 진번 등 청류들을 금지하는 법망을 해제해야 한다. 사공 유총을 제외한 나머지는 봉록만 축내고 도적을 끌어들이는 자이고 왕창, 이응 등을 불러 정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올렸다.

환관들은 사필을 싫어해 내쳐서 광릉부승에 임명되었으며, 사필은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조절의 조카 조소가 동군태수에 임명되자 사필은 조소가 다른 죄목으로 붙잡았으며, 사필은 옥 중에서 매질을 당해 죽었다.

191년에 조겸이 사필의 충절에 보답한다고 해서 사필을 죽인 조소를 죽였다.

2 史弼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공겸(公謙). 사창[1]의 아들.

진류 고성 사람으로 혼자서 학문을 익혀 수백 명이 모였으며, 주, 군에서 부름을 받았고 삼공부에 벽소되어 북군중후가 되었다. 환제의 동생 유회가 불법을 많이 저지르자 사필은 유회가 난을 일으키지 않도록 편지를 밀봉해서 환제에게 상주했는데, 환제는 유회를 아꼈기에 사필의 말을 듣지 않고 처벌하지 않았다.

165년에 유회가 모반을 일으키려다가 발각되어 발해왕에서 영도왕으로 좌천되었으며, 사필은 상서, 평원상을 지내고 환제가 당인들을 알리라고 하자 주, 군 등에서 수백 명을 올렸다. 사필만큼은 알리지 않았고 환제는 주, 군을 단속하고 속관들의 머리를 깎거나 매로 때리는 형벌을 내렸으며, 종사에서는 청주 여섯 군 중에 평원 한 개의 군만 당인을 주지 않았다면서 사필을 비난했다.

사필은 평원에서 착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든다면 평원의 모든 집에서 죄인이 나와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며, 종사에서 분노해 사필을 가둬 감옥에 가뒀다. 우연히 당고가 풀려나고 사필은 돈을 내고 풀려났으며, 사필은 1천여 명을 도와줬다.

사필은 백성에게 죄가 있어도 용서했으며, 하동태수에 임명되었고 환제가 부임한 지 1년도 안된 사람에게 효렴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사필은 권세있는 사람이 집안에 효렴에 임명하려는 것을 알았고 중상시 후람이 문생을 보내 효렴에 임명하라고 청탁하자 사필은 이를 거절했다.

또 하동의 소금세를 달라고 하자 이를 거절했으며, 사필은 후람이 보낸 자가 자꾸 후람의 요청을 알리자 채찍으로 수백 번을 쳐서 그 사람을 죽였다. 후람이 분노해 사례교위를 움직였고 사필은 체포되어 정위에게 보내졌고 평원의 관리들이 그를 변호했으며, 군 사람들이 돈을 내 사필은 풀려나 장각감에 보내져 노역을 했다.

어떤 사람은 사필이 뇌물로 용서받아 수치가 되지 않겠냐고 하자 도구홍은 주문왕 조차 돈으로 풀려났다면서 사필은 수치가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형이 끝나자 고향에 돌아가서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공경들에게 권유받았다. 의랑 하휴가 사필을 삼공이나 재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자 사필은 의랑이 되었으며, 후람은 사필의 복귀를 좋아하지 않았고 광화 연간에 팽성상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망했다.
  1. 史敞, 순제 때 아첨으로 상서, 군수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