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람

侯覽
(? ~ 172)

후한 말의 인물.

산양 방동 사람으로 진식이 군의 공조가 되었을 때 후람이 영천태수 고륜에게 어떤 사람을 관리로 삼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으며, 159년에 양기를 죽이는 것에 참여했고 환제에게 비단 5천 필을 바치면서 관내후에 봉해졌다.

단규와 함께 농토가 제북의 경계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 노복과 빈객들은 나그네들을 협박하고 노략질했으며, 등연이 이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수십 명을 죽이고 시체를 거리에 늘어놓자 단규와 함께 환제에게 이 일을 호소해 등연을 면직되게 했다.

166년에 장범이 환관에게 뇌물을 바쳐 관직을 얻고 권세를 이용해 방자하게 굴자 성진이 잠질, 장목 등에게 체포하게 했다가 죽였으며, 소황문 조진이 탐욕스럽고 포학하면서 방자해 현 전체의 큰 걱정거리가 되자 유질이 왕윤에게 그를 체포하게 한 뒤에 죽였다. 이로 인해 후람이 장범의 처에게 편지를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게 해서 성진, 유질 등을 체포하게 했다가 죽게 했다.

또한 장검이 후람의 죄상을 열거한 상주문을 올리고 후람의 집안의 무덤과 집을 파괴하고 물자, 재산을 몰수해 진상을 구체적으로 갖추어 상주문을 올렸는데, 이로 인해 장검에게 원한을 품었다. 169년에 장검 등이 사사로이 당을 조직한다고 무고해 제2차 당고의 옥을 일으켰으며, 172년에 장락궁의 태복으로 있으면서 전권을 잡다가 교만하고 사치를 부렸다는 죄로 인해 인수가 회수되자 자살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189년까지 살아있다가 십상시의 난 때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