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품

石品

1 개요

생몰년도 미상

신라 진평왕 때 인물.

관등은 아찬(阿飡)으로 630년에 서라벌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궁궐의 땅이 갈라졌는데 이 사건을 빌미로 631년 5월에 이찬 칠숙과 함께 반란을 계획하였다가(칠숙·석품의 난) 사전에 발각되었다. 백제 국경까지 도망을 갔다가 부인과 자식을 보러 집에 들렸다가 잡혀 죽었다고 한다.

2 창작물에서

2.1 선덕여왕(드라마)

'남자셋 여자셋' 이후 하향 추세로 가다, 연예병사 시절 윤계상, 지성에게 밀려 공기화가 가속화되던 홍경인이 연기했으며, 아역은 노영학.

한마디로 시종일관 변함없이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캐릭터다. 덕충, 박의와 더불어 '화랑 싸가지 삼총사'의 리더격이며, 용화향도가 서라벌에 올 때부터 거의 주도적으로 용화향도를 괴롭히는 데 선두주자였다. 이런 것은 백제와의 싸움에서도 그대로 이어가는데, 덕만 덕택에 부상병들도 살아남아 훌륭히 백제군을 관광 보냈음에도 덕만이 대들었다는 이유로 지휘권을 잡자마자 덕만을 죽여 버리려는 행동도 보였다. 결국 용화향도는 이 인간 때문에 최후의 방패망이 돼서 죽다 살아났다...

미실 말만 들으면 자기의 신변과 출세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미실측에서 명하는 온갖 나쁜 짓은 죄다 실행했다. 미실의 명에 의해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덕만을 악착같이 찾아 다닌 것도 이 사람이었고, 일식계책 때 비담의 화형을 집행하려 했던 사람도 이 인간[1]이었다. 풍월주 비재 때는 비담이 옆에서 도발하자 바로 넘어가서 노발대발하다 비담에게 1차 예선 탈락했는데, 바로 보종에게 비담 다리 다쳤다고 꼰지르는 치사함도 보였다.

결국 미실의 군사 정변 때 맹활약(?)을 하는데, 상대등 세종을 안 죽을 만큼 찌른 다음 세종이 시해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그 후 군사 정변 동안 두문불출하며 덕만을 찾거나 반대파를 죽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단, 이런 조작 장면을 바로 옆에 있던 덕충에게 걸리는 바람에 미실파의 신의를 잃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한 축을 차지하게 하였다.

미실 덕분에 호의호식하기 때문에, 그 은혜로움은 잊지 않은 듯 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그간 한 못된 짓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있다. 그런데, 다른 화랑들은 자신과 같은 개인적인 안위가 아닌 화랑 대의적인 관점으로 미실을 섬겼기 때문에 결국 이 사건을 곱게 보지 않는 여타 화랑들에게 왕따가 되었다.[2] 그리고 주진공 시해 미션도 실패하면서 미실과 함께 대야성으로 피신하는데, 이 때 칠숙과 대화하던 도중 "대의보다는 새주란 말이냐?"라는 칠숙의 질문에 "전 그 정도 그릇밖에 되지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다.[3] (이 때 칠숙은 "나도 그렇다"라고 대답. 미실은 이렇게 충성스런 부하를 두고 있는것이다...)

결국 미실 사후 칠숙의 투항 거부에 동참하고 대야성에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버려도 되냐?"는 알천의 말에 "자네 또한 자네가 믿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가?!"로 대응하며 굿포스를 보여 줬다. 결국 칠숙의 부재를 알아채고 알천이 낚였음을 눈치챈 순간, 알천의 칼에 스스로 자기의 목을 그어 자결했다.

여담으로 서라벌 10화랑 중에서도 의외로 굴욕이 많은 화랑중 하나이다. 삽질대마왕 대남보 는 예외로 치자. 작중 덕만파 화랑 세명에게 유일하게(...) 패배한 경험이 있다. 김유신은 서라벌 입성시 제대로 패줬으나 이석원에서는 그 기억만 가지고 싸우다가 제대로 털렸고 병부령 설원, 그때 가장 강했다는 보종과 청룡익도와 일월성도 사람들을 데리고도 덕만을 못잡은건 덤, 비담에게는 비재에서 하필 첫 라운드에서 만나 털리면서 가장 빨리 탈락한 화랑(...)중 하나였고, 마지막으로 고문 부상에서 회복이 덜 되었을 알천에게도 역시 패배한다. 이렇게 굴욕 자체는 많기는 하지만 서라벌 10화랑중에서 가장 자신의 의지가 잘 표현되고 멋지게 죽음으로 그간의 굴욕을 만회했다.

  1. 그리고 제일 먼저 일식을 알아챘다.
  2. 그런데 살펴보면 다른 10화랑과는 달리 집안의 재력이 그닥인듯 하다. 토호귀족 출신은 알천은 그렇다 치고 다른 화랑들은 자신들의 부친들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대부분 대등이나 중소귀족 이상이다.) 석품은 그런게 없다. 미실 덕에 컸다는 것을 보면 가난한 집안 출신에서 미실의 도움을 크게 얻은듯 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미실을 따르는것이 마치 어머니를 따르는듯 하고 보종을 큰 형을 따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3. 이 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던 석품이 멋있었다는 평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