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또래

1988년에 나왔던 걸그룹. 남성 아이돌 그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소방차와 함께 나왔다. 아마도 본격적인 댄스 걸그룹으로서는 한국 최초인 듯하다. 그 전에 바니걸스희자매, 서울시스터즈와 같은 여성그룹이 있었으나, 이들은 성인그룹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걸그룹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후 90년대 말 핑클S.E.S가 '걸그룹의 조상'이라면 이쪽은 그야말로 걸그룹의 단군(...)

그런데 일본의 3인조 아이돌 그룹 소녀대가 한국과 대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것을 따라서 급조되었다 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소녀대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한국내에서 해적판 디스크가 난무한 것은 물론이고, 1986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일본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한국 내 공연[1][2][3]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인기의 절정이었던 곡이 소녀대 최후의 히트곡이라고 불리는 KOREA인데[4], 원곡보다 소녀대 버젼이 더 알려지면서 이 당시에 소녀대의 열풍은 엄청났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소녀대도 쟈니즈 소속의 남성 아이돌 그룹 소년대를 모티브로 등장한 그룹이라는 것[5], 그리고 1990년에는 대만에서도 이름도 똑같은 소녀대라는 이름의 3인조 그룹이 등장했다라는 것이다. 이 그룹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바로 비비안 슈.

1988년 1집, 1989년 2집을 냈다. 멤버는 이희정, 우윤아, 김정임으로 그 당시로서는 걸그룹다운 상큼한 외모를 자랑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서울시스터즈를 보면 완전히 노안들...) 그러나 당시는 댄스음악이 가요계의 주류가 아니었던데다가, 여고생 취향의 소방차와는 달리 걸그룹을 선호할 만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저 이류가수 정도의 명성 밖에 얻지 못 했다. 주로 전국 노래자랑 이나 주택복권 추첨 프로그램의 곁다리 공연으로 자주 나왔다. 그래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요톱10과 같은 쇼 프로그램에도 나오긴 나왔다. 당시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는 지금과 달리 이지연같은 신세대 가수도 많이 나왔었다. 이후 이희정과 우윤아는 1990년대 초반에 탐탐이라는 듀엣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멤버 중 한 명인 우윤아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도 했다. 그러나 우뢰매 이후에 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다. 혹 있다면 추가바람

놀랍게도 이희정은 나중에 이가이라는 예명으로 베이비복스 2집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나이를 10살이나 속여서(1968년생) 나왔다. 흠좀무 그런대로 잘 나가나 싶었는데 모 스포츠신문에 어느 독자가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되어[6] 나이를 속였음이 드러나 결국 탈퇴했고 이후 그녀의 연예계 커리어는 한순간에 끝나게 된다. 프랑스 월드컵 직후에 그녀의 과거를 기억하던 한 기자가 실제로는 연하인 모 축구선수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이니셜로 기사를 내기도 했다.

몇년 뒤 우윤아는 은퇴한 연예인들의 근황을 취재한 연예가 중계 방송을 통해 언젠가 셋이 다시 뭉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가 이희정이 상술한 일로 연예계에서 매장당한 터라 희망으로만 끝났다.

여담으로 당시 "이상한 여자"라는 개그코너의 호스트였던 박미선이 "세또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바람에, 진짜 명칭보다 이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곤 했다.
  1. 본디 '일본 뮤지션으로는 최초'라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 뮤지션으로서 최초 공연은 1979년 가을 동양방송에서 개최했던 '제1회 TBC세계가요제'에 출전했던 오오하시 준코다. 오오하시 준코는 여기서 그랑프리를 받는다.
  2. 일본 걸그룹 최초의 내한공연은 1980년 11월 동양방송에서 개최한 '제2회 TBC세계가요제에서 게스트로서 출연한 핑크레이디이다. 당시 이 공연은 생중계되었고, 짧은 치마에 어깨가 드러난 옷을 입고 춤추며 노래부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데꿀멍했다고 하는 일화가 전한다.
  3. 물론 국제가요제라는 명목도 있고, 당시에 일본어가 공중파를 탈 수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순수하게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4. 사실 이 곡은 소녀대의 대부분 곡들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 곡이었다. 세계적인 디스코그룹 징기스칸(가수)의 리더 레슬리 만도키와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혼성그룹 뉴튼 패밀리의 리드 싱어 에바 선이 서울 국제가요제 참석의 감상을 담아서 곡을 만들어서 공동 발표한 곡으로,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대표하는 곡으로 세계에 알려진 곡 중 하나였다. 여담으로 이 곡을 만든 만도키와 선은 결혼했다.
  5. 이 소년대의 직접적 영향력과 소녀대의 간접적 영향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보이밴드 취급을 받는 소방차이다.
  6. 이 때가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었음을 생각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