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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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awney-fortean.jpg
그림 출처
Alexander "Sawney" Bean(e).
보통은 Sawney Bean으로 불린다.
15세기나 16세기에 살았던 스코틀랜드 최악의 식인괴물로, 그와 그의 가족은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실존 여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그의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필수 관광코스로 재조명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소니 빈의 동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2 전설의 살인마

2.1 악마들이 태어나다

그의 생몰년도는 전해지지 않으나, 15세기나 16세기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하수구 청소를 하는 사람이었다. 소니 빈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고 여자 하나를 데리고 갤로웨이 해변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가 집으로 선택한 곳은 해변가의 동굴로, 이 동굴은 너무 깊고 긴데다가 조수의 흐름에 따라 이틀에 한 번 꼴로 입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이 동굴에서 그는 살림을 차렸고, 강도질을 생업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그에게 걸린 희생자는 반드시 죽었고, 그는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식량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다. 재물을 내다팔 경우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

그때 그는 희생자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그 후 20년간 그와 그의 아내는 사람의 시체를 소금에 절여서 먹었다. 그의 아내는 무려 14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들은 근친상간을 통해 더 많은 아이를 낳았다. 이들 역시 강도살인과 식인의 전문가가 되었으며, 자기들끼리는 결코 잡아먹지 않았다.

2.2 악마는 어디에 있는가

희생자가 속출하자 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서지만, 소니 빈의 동굴은 절대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곳에 사람이 살 수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간혹 동굴에 접근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할 기회도 없이 모두 먹혔다.

당국은 계속 이어지는 살인사건을 수사하였지만 소니 빈의 범행이라는 걸 알아낼 수 없었고, 그들의 수사는 무고한 사람들을 형장으로 보내는 결과만 낳았다.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만났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것.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자는 소니 빈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니 빈 일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2.3 실패와 체포

sawneybean2.jpg
소니 빈의 가족을 묘사한 그림. 그림 출처

근친상간을 거듭한 결과, 소니 빈 가족은 남자 27명, 여자 21명이라는 대가족을 이루었다. 그들은 군대처럼 잘 조직되었으며, 희생자 무리를 앞뒤로 포위한 후 모조리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부부를 습격한 날, 그들은 큰 실수를 했다. 그들이 부인을 죽이고, 남편까지 죽이려던 중 무장용병들을 호위로 동행한 상단이 나타난 것. 용병이 포함된 20명이 넘는 적을 만난 소니 빈 일당은 맞서 싸웠으나 패배했고, 여자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달아났다.

살아남은 남편은 글래스고로 갔고, 거기서 소니 빈 일당의 존재를 증언했다. 여성의 시체를 본 관리들은 경악, 곧바로 400명의 군대와 여러 마리의 개를 파견하여 그들을 쫓게 된다. 하지만 소니 빈의 거처는 워낙 은밀했기에, 군대와 개들과 지역주민들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문제의 동굴을 지나던 중, 개들이 시체 냄새를 맡음으로서 거처는 발각되게 된다. 개들을 따라 들어간 군인들은 거기서 시체와 백골, 약탈물의 산을 보았고 소니 빈 일당 48명은 모조리 붙잡히게 된다.

2.4 최후

에딘버러로 끌려온 소니 빈 일당은 너무나 잔혹하고 악랄한 행각으로 별도의 법제를 적용하여 당연히 전원 사형에 처해졌다.

전설과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1696년에 출판된 Nathaniel Crouch의 책에 따르면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1]가 죽기 1년 전인 1459년에 붙잡혀 남자들은 능지형에 처해지고[2],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1살 난 여자아이를 제외한 어린아이들도 모두 동일한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고 이 한 살 난 여자아이조차도 나중에 나이가 든 이후에 자신의 출신을 알려준 후 다시 교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얘는 좀 불쌍하다. 차라리 그 때 같이 죽이던가. [3]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악행을 후회하지 않았다.[4]

전설에 따르면 빈의 거처와 가까운 지역에 기번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소니 빈의 장녀가 가족을 떠나 그 마을에 정착해 Hairy tree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중에 식인 가족이 체포되자 그녀의 정체도 발각되었는데, 화난 군중들이 그녀를 붙잡아 Hairy tree의 가지에 교수했다고 한다. 이후 그 나무 아래 서있으면 시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나 뭐라나... 다만 이 부분은 전설이므로 Hairy tree의 존재여부와 위치는 불명이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이(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 나무를 찾기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 관련 링크

  1. 잉글랜드왕 제임스 2세랑 관계없다.
  2. 자세하게는 성기와 발, 손을 절단하고 과다출혈로 죽게 만들었다.
  3.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가족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괴물이 될까봐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4. 이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볼 수 있다. 소니 빈과 그의 부인은 그렇다치고, 자식들은 태어난 그 시점부터 살인과 식인, 근친상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만을 배워왔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