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영국의 지역

연합왕국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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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비공식기)
북아일랜드
해외 영토
몬트세랫버뮤다지브롤터케이맨 제도
아크로티리, 데켈리아앵귈라영국령 버진아일랜드차고스 제도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터크스 케이커스 제도포클랜드 제도
핏케언 제도영국령 남극지역
왕실 직할령
맨 섬채널 제도 (건지, 저지)
취소선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영토임을 의미함


Scotland (영어/스코트어)
Alba (스코틀랜드 게일어)
국기125px-Flag_of_Scotland.svg.png
왕기125px-Lionrampant.svg.png
200px-Map_of_Scotland_within_the_United_Kingdom.svg.png
면적78,387km²
인구5,222,100명(2010)
수도에든버러
최대 도시글래스고
정부 형태입헌군주국·단일국가 산하의
자치정부(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1]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정부수반니콜라 스터전[2] 총리[3]
정부 부수반존 스위니[4] 부총리[5]
공용어영어
공인된
지역 언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스코트어
민족 구성89% 스코틀랜드인, 7% 기타 영국인
1인당 GDP26,766£(2010)
최상위 도메인.scot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찾아온 사람은 저쪽으로

1 개요

스코틀랜드의 실질적 국가 중 하나로 쓰이는 'Flower of Scotland'의 영어판.[6] 공식적으로 국가로 지정된 적은 없고 이 곡 외에도 다른 곡을 쓰기도 한다.
갓-삐!

영국을 이루는 네 구성국 중 하나.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도는 에든버러(Edinburgh).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는 알라퍼(Alba [ˈal̪ˠapə])라고 한다. 라틴어로는 스코티아(Scotia),[7] 프랑스어로는 '에코스(Écosse).[8] 켈트어 계통을 제외하고는 Scotii라는 민족 이름에서 나라 이름의 표기가 나왔는데, 본래는 아일랜드에 있던 켈트족 전체 또는 일부 집단을 가리켰던 명칭이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라틴어 Scotia도 본래는 아일랜드(다른 명칭: Hibernia)의 다른 이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북아일랜드 지역에 기반했던 달 리아다(Dal Riata 또는 Dal Riada 등) 왕국이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지역에 진출했고, 훗날 이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일함으로써 Scotia는 현재의 스코틀랜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4년에 .scot이라는 자체 인터넷 최상위 도메인(TLD)이 가동에 들어갔다. 2010년대에 인터넷 주소 정책이 바뀌어서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언어권·민족 집단도 요건만 갖추면 인터넷 관리 기구인 ICANN에 자체 최상위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을 GeoTLD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민간 기업이 ICANN에 .scot GeoTLD를 신청, 2014년부터 공식 출범했다.[#] 본래 스코틀랜드에서는 2005년부터 .sco나 .scot 같은 자체 도메인을 등록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져 왔는데 9년 만에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한자로는 소격란(蘇格蘭)이라 한다. 소격란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2 역사

1706년 12월 31일까지는 스코틀랜드 왕국(Rìoghachd na h-Alba)이었으나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 왕국과 연합왕국을 이루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다. 한 나라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300년이나 됐는데?![9] 남쪽 잉글랜드와 사이는 좀 소원한 편.


2.1 연합 이전

사실상 역사의 분열은 고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하드리아누스 성벽으로, 성벽 이하는 브리타니아로서 이후 잉글랜드로 발전했고, 그 북쪽은 켈트계열이 계속 남아 이후 스코틀랜드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 시기 스코틀랜드 지역은 칼레도니아라고 불렸다. 로마 제국이 철수한 이후에는 스코트족과 픽트족이라는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초반에는 픽트족이 주도권을 잡았으나 점차적으로 스코트족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스코트족 위주로 통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칠왕국 시기에 스코틀랜드는 픽트족의 주도 하에 통합되지 않은 부족 국가 중심의 여러 국가들이 뒤섞인 지역이었다. 이들은 남쪽의 후대에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되는 칠왕국들보다 떨어지는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일찌감치 남쪽의 노섬브리아 왕국이 로우랜드 지역을 점령하고 픽트족 일부를 복속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북쪽의 스코틀랜드 왕국, 남쪽의 잉글랜드 왕국이라는 우리가 아는 형태의 세력이 형성되었음에도 스코틀랜드의 상당부분은 잉글랜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코트족 주도 하에 통일된 스코틀랜드는 데인 족의 침략과 내부 분열로 혼란스러운 잉글랜드의 상황을 이용해 차츰 남하하여, 13세기 경에는 로우랜드 지역을 모두 차지함으로서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스코틀랜드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크게 문화, 인류학적 구분으로 늦어도 14세기부터 영어를 받아들이고 종교개혁개신교, 그것도 장 칼뱅의 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며, 일찍부터 에딘버러, 글래스고 같은 대도시를 필두로 한 도시 문화 중심의 로우랜드, 즉 저지대 지방과 늦어도 19세기 중후반 까지 게일어를 유지하며, 반유목, 수렵 중심의 클랜 씨족 사회가 중심이었고, 아일랜드와 깊은 관계를 가지며 비교적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까지 가톨릭이나 자코바이트 중심의 성공회가 강했던 하이랜드 지방으로 구분 된 역사를 보내왔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문화적, 사회적 차이는 뚜렷할지언정 중세 초기 부터 하이랜더 클랜의 차기 지도자들은 대부분 세인트 앤드류 대학을 비롯한 로우랜드에서 교육 받고, 에딘버러 같은 로우랜드의 정계, 사회에도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두 지방의 관계는 유기적으로 상호 교류하며 섞여 발전하면서 현대 스코틀랜드란 민족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이를 대입하자면 에딘버러, 글래스고 등 스코틀랜드의 대도시는 게일어를 안 쓴지는 적어도 700년, 좀 멀리 잡으면 1,000년의 세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잘라 켈트족이 아닌 것도 아니다. 로우랜드를 필두로 한 현대 스코틀랜드인들 다수는[10] 이렇게 켈트계 민족 국가 중 하나이긴 하지만 영어라는 언어적 동질성을 통해 잉글랜드와 함께 영국이란 나라를 형성한 민족 공동체로 보아야 한다.

이후 노르만족의 전래 이후 잉글랜드의 침공을 받았지만 웨일스와 달리 완전히 정복 당하지는 않았으나, 이 때문에 계속하여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중간에 던켈트 왕조의 알렉산더 3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그의 외손녀 마가렛마저 요절하면서 왕통이 끊어졌다. 이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일어났고, 이를 틈타 에드워드 1세가 나타나 스코틀랜드를 제압하고 잉글랜드의 영토로 편입하는 등 모욕을 당했다.

당연하게도 이에 반발하는 스코트인들이 많았는데,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라는 사람이 반란군을 일으켜 잉글랜드군을 몇 차례 격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기에 결국 패퇴하였다. 윌리엄 월레스와 그 부하들은 이후로 지속적인 게릴라전으로 잉글랜드를 압박하는 작전을 세웠으나 결국 사로잡혀 죽었다.[11]

그러나, 이후에 스코틀랜드 귀족 브루스 가문의 로버트 1세가 윌리엄 월레스의 뒤를 이어 독립전쟁을 지속하였다. 로버트 1세는 한때 패배하여 국외로 망명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베넉번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의 대군을 격파하였고, 마침내 에드워드 3세 때에는 잉글랜드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받아 스코틀랜드 왕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추운 기후와 산이 많은 지형 탓에 농업 생산력이 잉글랜드보다 달려 인구는 항상 적었다.[12] 이러다보니 국력에서 상대가 안되어 상대적으로 더 강한 잉글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고, 양국의 결혼동맹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메리 스튜어트이다. 특히 현대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국경을 형성하는 베릭-어폰-트위드는 당시 한창 잘나가던 한자동맹의 주교역도시[13]이기도 했고, 천부적인 자연요새이기도 해서 양쪽에서 먹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14] 주로 일단 인구와 조직력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며, 나머지 유럽의 군사적, 정치적 기술 발전에도 더 발을 맞추었던 잉글랜드가 우세였지만 일단 스코틀랜드 측이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 험한 산악지방이 많은 스코틀랜드 내륙으로 끌어들이며 청야전술을 벌이다가 지친 잉글랜드 상대로 중세 스코틀랜드군의 주특기인 갑작스러운 보병 돌격으로 쌈싸먹은 적도 종종 있으며,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가 남하하는 건 저지해도 본격적으로 복속 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브루스 가문의 지도 아래 잉글랜드에게서 독립을 확보 한 이후 다시 400년 뒤 정복이 아닌 합의를 통해 연합왕국을 형성하기 전에 스코틀랜드 역사를 요약하자면 중세와 근세 왕권의 무덤 정도로 요약 할 수 있다(...).

중세 후기부터 17세기의 동군연합과 국가 통합까지 스코틀랜드 조정의 지상 과제는 둘, 하나는 너무도 당연한 천하의 원쑤 잉글랜드에 대한 방어였고, 다른 하나는 왕실의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않고, 맥도널드, 더글라스, 맥코넬, 켐벨, 카메론 등 강력한 하이랜드의 클랜들이 서로 끊임없이 이권 다툼을 하며 실질적인 무정부 상태였던 잉글랜드와의 국경지대, 서부 해안과 섬들, 그리고 하이랜드의 평정과 복속이었다. 특히 중앙 집권이란 측면에서 정복왕 윌리엄 이후 둠스데이북이 상징하는 런던에 기반한 강력한 왕권과 체계적인 지방 행정을 꾸준히 정착시킨 잉글랜드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기본적으로 켈트계 사회가 더 수평적인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스코틀랜드 왕국 성립과 독립 과정에서 하이랜드 클랜 대귀족들의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에 중앙 권력의 정착에 크디큰 난항을 겪었다. 특히 현대 내외 헤브리디스 제도(Outer/Inner Hebrides)를 기반으로 '섬들의 군주' (Lordship of the Isles)라는 직함을 가지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를 겔리선으로 오가면서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 간의 중개 무역과 용병업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도널드 가문은 한 때 스코틀랜드 왕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위세를 자랑했고, 르네상스 시대 들어서는 왕실의 충견을 자처하며 주로 국왕의 이름으로 다른 클랜을 두들겨 줘 패고 그 땅과 전리품은 자기들이 쏙쏙 챙겨먹으며 결국 하이랜드 최대 클랜이자 스코틀랜드 전국 내에서 왕실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자랑했던 캠밸 가문 같은 거대 클랜들의 존재는 스코틀랜드 왕실에게 영원한 골치거리였다.

오래된 관습과 법제화 된 봉신의 권리로 인해 함부로 봉건 신하의 자치권과 자체적인 권력을 뺏을 수 없었던 중세 유럽의 정치판에서 이 와중에 봉건 귀족들의 최고 우두머리로서 왕실의 권위를 한방에 키울 수 있는 건 곧 전쟁. 스튜어트 왕가의 군주들 또한 이 점을 파악하고 왕권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한 정치적 전쟁을 스코틀랜드 내 클랜들 상대로든, 잉글랜드 상대로든 종종 걸곤 했다. 이게 전쟁이 잘 풀려서 실제로 부하들도 찍소리 못하게 되고, 왕실의 권위도 커지며 이를 명분으로 봉건 귀족, 도시민, 교회의 자체적인 영향력을 하나 하나 복속 시키면 참 좋은데, 인생만사가 어디 뜻대로 되던가. 게다가 여기는 왠만한 남자들은 전부 다 칼에다 활, 나중에는 권총 하나쯤은 차고 다니고, 대충 현대 글래스고-에딘버러 벨트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항시 무장한 클랜의 장정들이 서로의 양, 소, 목축지, 노예 등을 빼앗기 위해 사시사철 전쟁에 대비하며 살던 초군사화 사회 중세/근세 스코틀랜드이다. 전쟁을 통해 군왕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면 당연히 싸움도 중세 기사도적 마인드/켈트 전사 집단의 마인드 그대로 최전선에 앞장서서 싸우는 게 당연시 되었고, 이런 관습에 충실히 따르다가 자고로 적의 모가지를 눈 앞에서 클레이모어로 따버리는게 미덕인 스코틀랜드의 무사 치고 드물게 화력덕후였던 제임스 2세[15] 플랑드르에서 새로 사온 최신 공성포를 시험한답시고 독립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점령하고 있었던 록스버러 성 공성 중 야포 근처에서 알짱대다가 대포 폭발로 폭사, 그 다음 제임스 3세는 아들내미가 필두로 자신의 실정에 반발한 대귀족 연합 상대로 1488년 스털링 근처 Sauchieburn 전투[16]에서 죽고, 저 애비 패죽이고 왕위 먹은 효자 제임스 4세는 그 유명한 플로든 전투에서 무쌍 찍다가 잉글랜드 잡졸의 빌#s-2에 처맞고 끔살, 또 그 아들이자 독립 스코틀랜드를 단독으로 정상적으로 다스린 마지막 군주였던[17] 제임스 5세는 역시 영불전쟁 중 동맹을 위해 짤짤이 넣어준다고 쳐들어간 1542년 솔웨이 모스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이 개박살나자 빡쳐서 열병으로 급사(...).

약한 왕권과 이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전쟁이 아주 최악의 방향으로만 연달아 시너지를 내어 후계도 똑바로 준비 안 된 군주들이 연달아 전사해버려 스코틀랜드의 국내 정세는 개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결국 국가의 통치는 캠밸 가문을 필두로 한, 연고지는 비록 하이랜드 클랜 출신이지만 로우랜드에서 교육 받고 나머지 유럽식 왕실 행정에 익숙했던 대귀족들과 이와 연계했던 도시민, 성직자들 중심으로 돌아갔다.[18]

이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터지면서 스코틀랜드에도 예전부터 강력한 정치적 국제 후원자였으며, 문화적으로 나머지 유럽의 선진 문물의 창구였고, 경제적으로도 교역 파트너로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지방을 통해 개신교의 바람이 불었다. 결국 16세기 중후반, 공식적인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는 너무 어리거나 주변 세력에게 휘둘러 왕권과 이와 결합한 가톨릭 교회의 세력이 정신을 못 차릴 사이 잉글랜드에서 유학하고, 프랑스에서 옥생활도 했던 존 녹스를 필두로 한 로우랜드의 개신교 도시민들과 이와 동맹한 캠밸 가문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로 개종했던 클랜들이 힘을 합쳐 1559년 퍼스의 도미니코회 수도원(Blackfriars)을 와장창하는 걸 시작으로 왕권과 가톨릭 교회에게 정면 도전을 하고, 짦은 내전 끝에 승리함으로서 개신교, 그것도 반왕실, 반가톨릭 내전[19]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로우랜드 도시들의 평신도 유지들의 모임, 즉 장로회를 근간으로 하는 칼뱅교 국가가 되었다.


2.2 연합 이후

잉글랜드와 통일된 계기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자, 스코틀랜드의 젊은 왕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 왕세자로 삼은 것. 제임스 왕의 할머니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였다[20]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한 나라는 아니고 별개의 두 나라가 같은 임금을 모시는 동군연합 단계였다. 완전히 한 나라로 통일된 것은 여왕 때.

잉글랜드로 내려간 제임스는 기본적으로 떠나온 고향 스코틀랜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하였으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 옛날 신하들과 다시 대립각을 띄우기 시작했다. 어렷을 때는 존 녹스의 직계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라틴 문필가이며, 철학자, 정치학자이기도 했던 조지 뷰캐넌의 영향을 받아 본인도 강성 장로회파에 속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보다 왕권을 행사하려고 하자 장로회와 이와 동맹한 귀족, 그리고 에딘버러 시의회가 사사건건 왕권에 제한을 두려고 하고[21], 무엇보다 이제 새로운 조국인 잉글랜드의 성공회는 익히 알다시피 개신교임에도 가톨릭의 전례, 교계제도 등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이렇게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왕실의 영향력이 교회에 미치는 감독제를 설치하고, 주교제를 부활시키려고 하면서 왕실과 스코틀랜드 지방 권력의 대립은 다시 서로 대립하기 시작한다. 1618년 글래스고에 있었던 장로 총회에서[22] 가톨릭식 무릎 꿂은 성찬을 부활시키고, 이에 반발하는 장로 총회의 문을 때려 닫아 버리고 20년간 다시 열지 못하게 만드는 걸 시작으로 스코틀랜드는 종교 문제로 다시 들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세월이 흘러 아버지 만큼의 정치적 센스도 없었고, 융화력도 없으며, 무엇보다 내전기에 자라 하이랜드의 강력한 귀족들과 개인적 연줄이 다았던 아버지와 달리[23] 스코틀랜드에는 제대로 와 보지도 않았고, 그 사정에도 전무하면서도 안 좋은 의미로 비전과 추진력만은 강했던[24] 찰스 1세가 왕이 되면서 정국은 더욱 더 악화된다. 아무리 대립하던 관계였다 한들 기본적으로 스코틀랜드에 본인 또한 애향심을 가지며 멀리서도 적극적으로 다스리며, 이런 저런 국정 프로젝트를 추진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현지 파워 엘리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던 아버지와 달리 찰스는 윌리엄 로드 추기경을 필두로 한 성공회식 전례와 주교제를 스코틀랜드에 강제하려고 들면서 결국 열받은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유력 목사들, 에딘버러와 다른 로우랜드의 시민들, 그리고 이들과 동맹했던 개신교계 클랜들은 1638년, 에딘버러의 그레이프라이어[25] 교회에 모여 국민 언약이라는 종교적, 정치적 동맹을 선포하고 봉기를 일으켜 스코틀랜드 정부를 장악하면서 찰스의 왕권에 정면 도전했다.

이 와중 찰스가 있었던 잉글랜드의 상황은 익히 알려진 의회와 국왕이 대립하던 끝에 찰스가 빡쳐서 의회 문 닫고 혼자서 직접 나라를 다스리던, 소위 11년 폭정이라 불리던 시절. 스코틀랜드의 언약파 반란군이 정부를 장악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 시키기 위해 다시한번 잉글랜드로 남진하며 영국 내전의 발단이 된 주교 전쟁이라는 전쟁이 터진다. 언약파 반란군이 국경 지대인 뉴번에서 잉글랜드 국왕군을 박살내고 거의 무혈로 잉글랜드에 입성하자, 찰스는 어쩔 수 없이 의회를 다시 열게 된다. 그러나 내심 스코틀랜드의 언약파가 국왕군을 박살내며 왕권을 더 약화 시킬걸 기대했던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가 요구한 예산 조달과 군대 소집을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왕이 요구한 반란 진압 예산 책정은 무시하고 각각 찰스의 종교적, 정치적 면에서 오른팔 왼팔 역할을 했던 로드 추기경과 스트래포드 공작을 기소, 사형시켜버린다. 빡친 찰스는 존 핌을 비롯한 당시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한테 가장 심하게 개기는 의원 다섯명을 체포하려고 쳐들어가나 이들은 도망치고, 찰스를 본격적으로 못 믿게 된 잉글랜드 의회는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왕의 동의 없이 혼자서 민병대 소집법 (The Militia Ordinance)을 통과시켜버리고, 이에 찰스는 맞불을 놓기 위해 의회의 비준 없이 혼자서 군열 위임령 (Commissions of Arrays)을 선포하면서 양측은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이 와중 신정부를 구성한 스코틀랜드 언약파는 반란을 멈추면 장로회를 공식 국교회로 인정하고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찰스 측과, 우리랑 편 먹으면 장로회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에도 장로회를 도입하겠다고 승부수를 띄운 의회 측 사이 고민하다 역사에는 그냥 '사건' (The Incident)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는(...) 1641년 10월 반언약파, 근왕파 귀족들의 쿠데타 시도를 분쇄한 이후[26] 결국 1643년 근엄 동맹 밑 언약 (Solemn League and Covenant)라는 조약을 통해 의회파와 동맹을 맺으며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 내전에 뛰어든다. 언약파는 전쟁기 내내 스코틀랜드의 정부 역할을 하며, 남쪽으로는 국왕군, 그리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로우랜드 개신교도들의 통치와 무엇보다 캠밸 가문의 영향력의 확대를 질시한 하이랜드와 아일랜드의 클랜들이 소집한 근왕군을 상대로 전쟁을 치루며, 동시에 안쪽으로는 내분하면서도 올리버 크롬웰에게 정복 당할 때 까지 독자적인 전시 정부를 꾸린다.

언약파 정부 자체는 올리버 크롬웰이 장악한 잉글랜드 의회파 세력이 너무 커지는 걸 질시하다 결국 찰스 2세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 의회 뒷통수 치려는게 3차 내전과 던바, 우스터 전투에서 대파 당하고 크롬웰에게 스코틀랜드가 정복 당한 후[27], 이 후 왕정복고 시절 아버지 목이 날아간 전쟁이 터진 계기 자체를 마련한 놈들이 언약파였다는 걸 잊지 않았던 찰스 2세에게 아가일 공작 아치볼드 캠밸, 장로 총회 집사였던 워리스톤의 아치볼드 존스턴 경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그 자리 그레이프라이어 교회에서 처형, 옥사 당하는 걸로 분쇄 되었다. 그러나 언약파가 이루어 놓은 새로운 혁명 정부의 행정적 기틀, 전시 경제로 구축한 통제력 등은 이후 스코틀랜드 정부가 물려 받고, 장로회 급진파도 스코틀랜드 사회 지배 계급으로 떠 오르며 17세기 말에 다시 한번 왕실과 충돌하게 된다. 이 와중 명예 혁명이 터지자 한 세대 전 언약파의 이데올로기를 계승한 로우랜드의 장로회측은 새로운 왕실을 받아 들이고, 역시 한 세대 전 구도 그대로(...) 가톨릭/성공회 주류의 하이랜드의 클랜들은 자코바이트 세력에 가담하면서 다시 한번 내전이 발생, 이를 진압하고 아래 하술한 다리엔 계획의 실패로 엉망이 된 스코틀랜드의 부채를 잉글랜드 측이 떠맏는 과정에서 1707년, 드디어 양국을 단순한 동군연합이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 한 나라로 통합한 통합법 (Act of Union)이 통과되면서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로서 역사를 끝내고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파트너 민족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스코틀랜드도 17세기 후반 식민지를 건설할 다리엔 계획(Darién scheme)이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서 남미대륙의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이 다리엔(Darién)이라는 지방에 스코트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 거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였는데 파나마의 스페인인의 공격과 전염병이 돌아서 완전히 망하고 스코틀랜드의 재정상태는 최악이 되었다. 사실 항목을 보면 나와 있지만 이 다리엔 지역은 현대에 와서도 지구상 극한 오지 중 하나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잇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끊어진 유일한 구간이다. 게다가 이곳을 탐험할 때는 여행자보험도 적용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당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도 적대적인 가톨릭 세력의 수장인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 안마당에 가까운 중앙 아메리카 복판, 그리고 여길 개쳑하려는 스코틀랜드는 좋게 말해도 유럽 국가 중에서도 약소국 규모의 비교적 가난하고 물자가 부족한 나라. 후대의 관점으로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개척하겠다고 나섰는지 모를 동네이지만, 하여튼 이런 식민지 계획에서 국밥 말아 드시고, 또 1690년대 전반적으로 "불운한 칠년" (Seven ill years)라고 불리는 엄청난 가뭄과 경제난이 겹치며, 이 와중에 자코바이트와의 내전도 잘 안 풀리면서 스코틀랜드의 유력 귀족 가문과 도시 자치회들은 대부분이 파산, 혹은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된다. 잉글랜드와의 정치적 통합은 결국 이런 총체적 난국에 대한 궁극적인 타계법으로 떠오른 셈.

상술한 기나긴 상호 대립, 내전, 동맹, 통수의 역사 끝에 스코틀랜드는 무력으로 정복, 복속한 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자치도와 이권을 유지하되, 독자적인 주권 자체는 분명히 런던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영국에 통합되었고, 이런 역사적 유산 때문에 꾸준히 분리독립 운동이 있어왔다. 1990년대 이후 타협책으로 영국 중앙 정부는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확대해왔다. 현재는 독자적인 의회와 정부가 외교/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를 통치하고 있다. 2007년 처음 집권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2011년 총선에서 단독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공식적인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준비했고, 투표일시는 2014년 9월 중순으로 공시되었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연합왕국의 4백년 왕관이 자기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며 내심 우려하고 있다.

대대로 프랑스와는 동맹국인 성격이 강했다(프랑스+스코틀랜드 vs 영국+플랑드르). 왕비들도 프랑스 출신이 많다.

켈트계인 스코트인의 지방이라 내심 잉글랜드를 굉장히 싫어하고, 죽어도 잉글랜드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는 지역성이 있다. 본격적인 무장독립운동은 아니지만, 영국에서 독립하자는 움직임도 상당히 많은데 그런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인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 밴드 프로클레이머스가 있다. 2002 월드컵 때 스코틀랜드 출신 국회의원이 "잉글랜드를 응원하자"고 했다가 폭풍같이 까이기도 했다.

3 분리 독립 무산

역사가 이렇다보니,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 움직임에 관해서는 스코틀랜드 독립운동문서를, 2014년에 실시되는 독립투표에 관해서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항목을 참고.

투표 결과, 55%의 반대로 분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제2의 분리 독립 투표를 준비한다고 한다!] 숀 코너리 옹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28] 단 영국이 EU를 탈퇴한다면 스코틀랜드의 EU 잔류를 조건으로 분리독립투표를 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현실화 됨에 따라 독립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리 독립에 민감한 스페인 등 EU 회원국의 승낙 문제는 EU의 반응 등 전체적인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셰틀랜드와 오크니의 독립 및 영연합 왕국 재편입에 대해선 스코틀랜드가 싫다기 보다는 북해의 석유를 빌미로 협상 과정에서 스코틀랜드에게 좀 더 뜯어먹으려는 명분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이것도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다만 잉글랜드에 대한 높은 시장 의존도와 재정 의존도, 그리고 영국계 석유 메이저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EU를 대신해 영연방 국가들이 몇몇 스코틀랜드 상품의 최대 소비자이자 대스코틀랜드 최대 투자자로 떠오르는 등 영연합왕국 탈퇴를 재고하게 되는 사안들도 남아있다. 결국 EU 탈퇴와 영연합왕국 탈퇴가 가지는 무게가 다르다는 점이 크다.

[브렉시트 직후 최고점을 찍었던 독립 여론이 한 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4 문화

4.1 킬트

스코틀랜드의 상징하면 역시 킬트로, 남자가 입는 치마로 속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이 옷은 적과 싸울 때 자신의 거기를 꺼내보여 적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 혹은 용변시 빠르고 무리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현재 우리가 아는 킬트라는 것은 근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립된 물건으로 정작 중세 때는 아예 다른 물건이었고[29], 이후 각 가문별 킬트와 타탄 체크문양이 생겨나면서 마치 중세부터 전통있는 문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30] 근데 이게 자리 잡은게 이상한 이유인데 영국이 바지가 있는데 남자가 치마(?)라니 금지 시켰고 이에 자극받은 스코틀랜드인들이 반항심에 이걸 계속 착용하다보니 이렇게 된거라는 말도 있다.

킬트의 섹시코만도식 사용법. 하카? 풋!

킬트와 함께 타탄 체크도 유명하지만, 이 역시 킬트의 유행과함께 퍼진 것으로 이전에도 이런 체크무늬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가문이나 클랜에 따라서 특유의 타탄을 사용하는 것은 킬트 유행에 맞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직물 상인들이 퍼트린 것이라고 한다.

씨족의 모임인 클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주로 고지대 주민들이 부족단위로 생활하던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스코틀랜드 귀족들 중에서는 모모 부족장(chieftain)이라고 불리는 작위들이 남아 있다.

그 외 해기스, 백파이프로도 유명하며, 빵모자+백파이프+킬트 조합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심볼이 되었다. 그리고 대표할 만한 스코틀랜드의 명물로는 그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가 있다.

근대 이전만 해도 스코틀랜드 사회는 군사문화가 강한 지역이었다. 게일어가 통용되었던 하이랜드 지방은 근본적으로 반유목, 목축 생활 중심의 군소 클랜들이 끊임없이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 목초지, 왕실의 특혜 등을 두고 서로 반목하며 싸우던 곳이었고, 그나마 농사가 어느정도 된다는 로우랜드 지방도 약한 중앙 권력과 이에 따른 귀족, 종교 중심의 파벌 문화가 강했으며, 두 지방 모두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유럽 대륙이나 아일랜드, 잉글랜드에서 용병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30년 전쟁 당시 구스타프 아돌프 휘하 스웨덴의 개신교 용병으로 온 스코틀랜드인들을 묘사한 판화들을 보면 어디 문명의 오지에서 온 치마 입은 미개인들이 악마 같은 소리를 지르며 돌격하곤 한다라는 식으로 묘사하곤 했다. 이에 따라 성인 남성이라면 발칸 반도, 우크라이나 카자크 지방 같은 변경 지방의 군사문화가 발달한 다른 유럽 처럼 당연히 평소에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게 상식이자 남자의 품격으로 대우 받기도 했고, 잉글랜드와 통합 이후 신생 영국 육군의 군사 문화와 편제 창설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이랜드 클리어런스 와중에 고향을 잃고 캐나다, 미국 등지로 건너간 이들도 이런 변경 지대의 무장 문화를 가지고 주로 애팔래치아 산맥 지방으로 이주하여 그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주도, 현대 미국의 수정헌법 2조를 비롯한 총기 문화 형성에도 상당히 기여한 바가 있다.


4.2 음식

느끼한 맛이 강하다. 특유의 기후로 인해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육식을 주로 하는 편인데 때문에 대장암 발병률이 굉장히 높다. 튀김을 좋아하는데 딥 프라이드 피자라는 음식이 있다.[31] 캐러멜을 튀겨서 초콜렛에 찍어 먹거나, 아예 시판되는 초콜렛 바를 튀겨 먹기도 한다.[32] 인생에 한 번쯤 도전해볼 가치는 있으나 후환은 책임 못 지는 괴식이라고...

아이언 브루(Irn-bru)라는 스코틀랜드에서만 시판되는 음료수가 인기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를 일종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코카콜라가 판매량 1위가 아닌 나라가 3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라고...[33] 잉글랜드에서도 큰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스코틀랜드의 상징. 맛은...핫식스와 비슷한 느낌이다. 핫식스를 안 마셔봤다면 라무네 오리지널 소다맛이나 우유 맛이 빠진 뽕따 혹은 밀키스 맛을 생각하면 된다. 일종의 자부심으로 여기긴 하지만 현지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료. 일반 페트병보다 작은 용량으로도 판매되니 시도해 보고 싶다면 참고해둘 것.

주류 중에서 너무도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는 말 할 것도 없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스코틀랜드 맥주도 아는 사람들은 양질의 맥주라 칭송하며 고대부터 만들어 온 사랑 받는 음료이다. 도수 높고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인 Dark Island를 비롯한 양질의 중소규모 지역 양조장들이 많이 있고, 테넌트나 이니스&건, 벨헤븐 같은 대표 브랜드 맥주 또한 잘 팔린다. 그리고 Buckfast라고 불리는 저렴한 카페인을 집어 넣은 강화 포도주도 싼값에 세게 취할 수 있다고 많이 마시는데, 맛과 후폭풍은 책임 못진다(...).[34] 이렇게 여러모로 주류와 음주 문화가 발달해서인지 몰라도, 영국의 다른 지방에 비해 일인당 주류 섭취량과 알콜 중독율이 훨씬 높다.[35]

기본적으로 개신교, 그 중에서도 장로교회처럼 칼뱅주의 교회가 주류인 나라들은 육신의 향략을 배격하고, 특히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음주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강한데[36], 날씨 탓도 있고, 문화적 요소도 있어서 스코틀랜드는 청교도적 가치관이 굉장히 강한 장로교의 총본산이면서도 음주에 대해서 유독 관대한 경향이 있다. 법적 음주 연령이 만 21세인 미국은 말 할 것도 없고, 바로 아래 잉글랜드에서도 대낮부터 술 마시고 취해 있는 건 하류층이나 하는거라며 경멸하는데, 에딘버러글래스고에서는 부자던 가난뱅이던 남녀노소 대낮부터 주점에서 한잔씩 들이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유학생이나 출장으로 방문한 위키러들의 말에 따르면 이상한 면에서 동아시아 어디 반도 나라랑 비슷하게 수업 끝나고 교수랑 학생들끼리 한잔, 사업 관련해서 얘기 한 후 접대로 한잔, 새로 만나서 이것도 인연이니 한잔(...) 하는 식으로 기본적인 사교 생활이 알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한 모양이다. 역사적으로도 주로 꼬장꼬장한 근본주의로 유명한 조지 뷰캐넌 같은 종교개혁자 본인들부터 알콜 중독자였고, 음주에 대해서 딱히 뭐라 한 적도 없다.[37]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서도 이런 비만과 알콜 문제를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름진 패스트푸드에 대량 음주를 즐기는 스코트인들의 패기 앞에서는(...). 고대 켈트 문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문화적으로도 엄숙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북유럽 개신교 문화권 치고 여전히 "남자는 자고로 기름진 고기에 술을 즐겨야지!"라는 식의 마초적 분위기가 강해서 스코틀랜드의 음주, 음식 문화의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4.3 언어

한국어영어
스코틀랜드 표준 영어Standard Scottish English
스코트어(Lowland) Scots
스코틀랜드 게일어Scottish Gaelic 혹은 Highland Scots

이렇게 세 가지 지역 언어가 존재한다. 이 언어들, 그리고 소멸된 언어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언어 항목을 참고할 것.

4.4 종교

존 녹스(John Knox)에 의해 종교개혁이 주도되어 네덜란드와 함께 칼뱅주의를 국교로 정했던 유일한 동네이며, 한국인들이 흔히 아는 장로회(Presbyterianism)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선사해준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현재도 Church of Scotland는 '국민 종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38]. 그리고 조심해야 할게, 잉글랜드나 아일랜드에서 Church of England, Church of Ireland라 하면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가입해 있으며, 가톨릭처럼 주교과 교구 체계를 갖춘 성공회 교단이지만, Church of Scotland는 이들과 전혀 상관 없고, 주교도 없고, 교구도 없는 완전한 개혁 교회이다[39]. 스코틀랜드 내에서 활동하는 성공회는 스코틀랜드 성공회 (Scottish Episcopal Church)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영국 왕실을 단순히 평신도 중 귀빈으로 취급하는 국민 교회 장로회와 달리 이쪽은 정식으로 왕실의 수위권을 인정한다. 장로교회 측에서 국제 장로회의 고향으로서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성공회를 '잉글랜드 교회 (English kirk)'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당연히 성공회 측에서는 근거 없는 음해라며 발끈하고, 실제로도 스코틀랜드 장로회 전통만 강조하고 다른 기독교 종파는 스코틀랜드도 아니라고 무시하는 터무니 없는 음해 공작이 맞다.

그래도 스코틀랜드에서 국민장로회는 여타 장로교 분파들에 비하면 상당히 타 교파에 너그러운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통적으로는 하술한 이유로 근본주의적인 성격이 강했고, 약간 치부를 들추어 보자면 로디지아, 북아일랜드, 미국 동남부의 레드넥 지역 같은 곳의 스코틀랜드계 공동체의 후손들은 아직도 전근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이중예정설에 기반한 선민의식을 정착한 현지의 인종 문제와 결부되어 아직도 강하게 표방하고, 이에 따른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독교라 부를만한 병크도 종종 보이지만, 스코틀랜드 본토는 19세기, 20세기에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되면서 근대화, 세속화도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게다가 장로교회의 근본주의적인 파벌 뿐만 아니라 지성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신학자, 신자들도 많이 배출되어 근본주의적인 공격성이 많이 순화된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통합성 자체도 19세기 중반에 장로교회 내에서 터진 자유 교회파 논쟁 같은 이런 저런 이단 논쟁에 내부 갈등이 터지면서 상당히 분열을 겪었고, 스코틀랜드 사회 자체는 현재 세속주의와 자유주의가 깊게 뿌리 박힌 곳이라 안 그래도 세력이 많이 약해진 개신교가 함부로 근본주의적 꼴통짓을 할 만할 여건이 못 된다. 현대 스코틀랜드의 세속화는 나머지 북/서유럽과 비슷하게 상당히 급격해서, 한때 왕권에게 정면 도전하고, 주된 전쟁은 잉글랜드에서 치루었다 한들 왕의 모가지가 날아가게 된 계기가 된 반란을 주도했던 과거사를 생각하면 눈에 습기가 스코틀랜드 날씨마냥 가득 찰 만큼 현대 국민교회 장로회는 신자 감소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랜드쪽으로 가면 국민교회가 아닌 자유교회와 자유장로회에 속한 교회들이 아직 좀 남아있는 편이고, 3대가 같이 예배드리는 교회를 좀 볼 수 있긴 하다.

내부적 신앙적 열망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종교 개혁에 가담했고, 전례나 교회 구조도 가톨릭의 그것을 상당수 유지한 잉글랜드 국교회와는 달리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은 실제로 장 칼뱅 본인이나 그 제자들에게 교육 받은 신학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가톨릭에 반발했던 이들이 아예 나라를 뒤집으면서 이룩한 결과이니 그만큼 종교적 열성도 뜨거웠고, 민족 정체성에도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당장 영국 내전 시기 스코틀랜드 언약파와 잉글랜드의 의회 사이 교섭한 내용이나, 이와 관련 된 스코틀랜드 측의 알렉산더 헨더슨, 데이비드 켈더우드, 아치볼드 존스턴 등의 유력한 목사 겸 외교관, 정치인들이 집필한 1차 사료에 보면 "잉글랜드 성공회는 신자들의 열망이 아니라 국왕의 변덕으로 이루어진 개혁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니 우덜식 장로회를 강요해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이 많았고, 이런 종교적 대립은 결국 언약파와 잉글랜드 의회의 동맹이 파탄나고 올리버 크롬웰의 정복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다 보니 근본주의에 비롯한 흑역사도 만만치 않은 편. 현재의 북아일랜드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이쪽 출신들이었고, 현재도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가톨릭을 공격할 때 쓰는 체계적(?) 레퍼런스를 제공해 준 곳도 바로 이쪽에서 나온 자료들이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40]이란 먹사목사가 1853년에 내놓은 소책자 '두 개의 바빌론'(The Two Babylons)을 들 수 있는데, 요즘 기준으로는 그냥 불쏘시개지만 당시만 해도 파급력이 엄청나서 장로교 뿐 아니라 다른 근본주의 교파들까지 이 소책자의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한때는 북아일랜드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가톨릭-장로교간의 갈등이 심했고 알렉스 퍼거슨처럼 가톨릭교도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치를 보는 경우도 꽤 있었다. 유럽 축구판의 훌리건 문화와 더불어 이런 뿌리 깊은 종파, 민족 갈등은 한때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글래스고를 칼빵맞기 딱 좋은 곳으로 만들었던 전적도 있다. 다행히 세속화 바람을 타고 이러한 경향은 약해졌다.

4.5 음악

잉글랜드에 지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다른 영국 지역과 달리 미국 문화에 관대한 편이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출신 뮤지션들은 음악적 실험을 해도 선율이 강조되는 특징을 자주 보인다. 상큼한 챔버 팝 역시 상당히 발달한 편. 특히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한 C-86 씬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C-86 씬에서 국제적인 스타 밴드라면 벨 앤드 세바스찬틴에이지 팬클럽이 있다. C-86 씬 외의 스코틀랜드 뮤지션이라면 프로클레이머스, 트래비스, 모과이 , 프란츠 퍼디난드가 유명하다.

아래 영상은 강한 스코티시 액센트를 사용하는 프로클레이머스I'm gonna be (500 miles)[41]를 live8 공연에서 부르는 모습.

아일랜드 포크 음악 만큼은 아니지만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도 나름대로 대중음악 장르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 분야의 독보적이고 압도적인 최종보스는 바로 코리스이다. 아니 스코틀랜드 대중음악 전체에 걸쳐 압도적인 최종보스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코리스의 노래 <Flower of Scotland>가 현재 스코틀랜드 국가로 불리고 있기 때문. 지금까지 세계 그 어떤 나라도 대중가요를 국가로 부른 나라는 없다. 2014년 분리독립 찬반투표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이 확정되고 <Flower of Scotland>가 독립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가로 결정되면 스코틀랜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중가요를 국가로 채택한 나라가 될 것...이었으나 투표 결과 분리독립은 하지 않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코리스 항목 참조. 그리고 투표 쪽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쪽을 참고.

스코틀랜드의 민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누가 뭐래도 단연 Auld lang syne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애국가의 곡조로 사용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4.6 인종차별 문제

켈트계임을 중요시하는 자존심 강한 곳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인종차별 문제는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그냥 시민권만 있으면 "너도 우리 스코틀랜드의 후손이야" 이런 식... 이런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킨건 아일랜드와 대립의 영향이 있다. 19세기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현지 노동자들과 대립하고 있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반감이 크며, 얼마 없지만 혹시라도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 모두 자각하고 고치려고 하는 실정이다. 스코틀랜드계 황인, 흑인도 많으며이런 더러운 개캐도 있잖아? 1.5세나 2세 스코틀랜드인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역시 잉글랜드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파키스탄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반감이 있으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들도 그렇지만 정부에서 손발 걷고 고치려고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바시르 아마드 같은 유명한 파키스탄계 정치인들도 있었다.[42]

역사적으로나 사회 깊숙하게 보면 스코틀랜드에도 분명히 뿌리 깊은 차별의 그늘이 있었다. 일단 산업혁명과 더불어 글래스고 중심으로 대규모 이민을 온 가톨릭 아일랜드인들은 오랜 세월 언어적, 문화적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람 대접 받지 못하고 2등 국민 취급 당했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잉글랜드는 사회적으로 세속화가 비교적 일찍 이루어져 19세기 중후반 쯤이면 가톨릭교도도 어느 정도 사회적 입지와 동등한 권리를 제대로 인정 받은 반면,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는 일단 교리적, 신학적 개혁의 정도 자체가 훨씬 더 화끈하고 과격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20세기 중후반 까지 오랜 세월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반대로 골수 가톨릭인 아이리쉬들을 스코틀랜드 사회가 포용하는 걸 더디게 했다. 이보다 아예 한발짝 더 나가 실제로 최근까지 총폭탄이 휘날렸던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뒷배경에 있는 북대서양 게일 문화권 전체의 종교적 갈등의 역사가 강도는 더 약할지언정 어느 정도 스코틀랜드의 역사에도 영향을 발휘 했던 셈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도 그 강도는 눈에 잘 안 띄고 낮은 편이지만 특히 독립 문제가 고조될 수록 잉글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은연 중의 차별을 호소하곤 한다. 정도가 지나친 농담이라던가, 운동 경기 중에 표출 하는 적개심, 등으로. [43] 약간 뒤틀어 말하자면 스코틀랜드도 인종적인 사회 갈등이 없는건 아닌데, 왠지 한중일 처럼 같은 인종의 이웃 민족들과 투닥거리느라 바빠서 유색인종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덜 가는 편이다(...).

4.7 스포츠

축구가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대표팀은 월드컵/유로컵 등의 메이저 대회에서 구경하기 어렵다. (...) 하지만 친선 경기에서는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데 어째 유럽팀에 대비하기 위한 모의고사용(...)으로 자주 불려다니는 듯. 대표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프로축구리그로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이 있다. 여기 구단인 셀틱 FC가 1967년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트레블 우승을 이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무척 리그 분위기가 안 좋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그 외에 유명 스포츠인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남자 테니스계의 Big 4로 불리는 앤디 머레이가 있다.[44] 특히 2013년도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영국인으론 몇십년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스코틀랜드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앤디 머레이는 잘하면 영국인 못하면 스코틀랜드 촌뜨기

골프컬링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4.8 기타

구두쇠가 많다는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만화 욕심쟁이 오리아저씨스크루지 맥덕도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설정되었다. 구두쇠 스코트인을 소재로 한 농담도 많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때문인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도 많다. 국부론애덤 스미스를 비롯하여 세계최초의 은행 Bank of England 를 설립한 윌리엄 패터슨, 기펜의 역설로버트 기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데이비트 흄, 제임스 밀, 프랑스 루이 15세의 재상 존 로 등이 있다.

그곳의 유명한 일화중에 전쟁터에 있는 남편에게 밭을 갈 일꾼을 살 돈은 어디서 마련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밭에 화약이랑 무기를 묻었으니 그거 팔아서 일꾼을 사라' 라는 답장을 보냈고 검열 과정에서 그 편지를 읽은 군인들이 밭을 다 헤집었지만 알고보니 공짜로 밭을 갈려고 한 남자의 함정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21세기 뉴저지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

레밍스 시리즈와 맨헌트, GTA 시리즈로 유명한 락스타 노스(舊 DMA Design)의 본사도 스코틀랜드에 위치해있다.


5 스코틀랜드 출신 인물

스코트인은 성 앞에 'Mac(맥)'이나 Mac을 줄인 'Mc'이 붙는다. 이를테면 맥도널드(McDonald), 매켄지(McKenzie), 매케이(McKay), 매클레인(McLean), 매클라우드(McLeod), 맥밀런(McMillan), 매킨토시(McIntosh), 매케인(McCain), 매코이(McCoy)[45], 맥겐(McGann)[46], 맥아더(McArthur)[47]맥콜(McCol) 맥북(MacBook)처럼. Mac은 스코트 게일어로 '~의 아들'이란 의미를 지닌다.[48] 지금이야 글로벌시대라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성이 맥 뭐시기면 스코트인 혹은 스코트계, 아니면 먼 조상이 스코트인이다. 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와 같은 켈트계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도 Mac Cárthaigh, Mac Dubhghaill, Mac Mathúna, Mac Piarais, Mac Réamainn, Mac Raghnaill 같이 Mac이 들어간 성씨를 쓰기도 한다. J. K. 롤링은 영국 남서부 잉글랜드 출신이지만 현재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경우.


5.1 실존인물

5.2 가상인물

6 대중매체에서의 묘사

게일어를 쓰던 하이랜드 병사들은 하이랜더라 불리며, 강병으로 유명했다. 어떤 흐긴이 개캐 소리를 듣는 것은 이것의 반영일지도.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판중 타임머신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둘리 일당이 타임슬립한 배경중에는 350여년전의 스코틀랜드 외딴 시골도 있는데 거기 사는 마녀의 음모에 휘말리기도 한다.

영화 '둠스데이'에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묘사가 심히 안습인데, 모든 사건의 근원인 '리퍼 바이러스'의 시발점 및 최대 감염 지점으로 분류되어 육지로는 무인 기관총 시스템이 거치된 거대 장벽으로, 해상으로는 해군을 동원한 24시간 철통 보안을 통해 세계로부터 격리조치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리퍼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겨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외부와 단절 되어버린 탓에 문명 수준이 중세시대 수준까지 퇴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무기고에는 현대형 무기들이 존재 가뜩이나 보급안돼서 비상시 빼고 안쓰려고 무기고에 쳐박아두었다가 일행이 탈출할때 수류탄을 까넣어서 연쇄폭발하면서 진짜 중세시대가 돼버린다. 안습. 뭐 그래도 추격대가 창고를 찾았으니 안그러려나.

브레이브 하트에서 1200년대 잉글랜드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를 다뤘다.

미니어처 게임 인피니티에서는 스코틀랜드 개척민들의 후손이 세운 국가 칼레도니아가 등장한다.

영국 드라마 닥터후 시즌5 2화 에서는 어떤 여자아이가 지구가 멸망할 때 영국 전체가 우주로 피신했지만, 스코틀랜드만 따로 피신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에이미 폰드는 그럴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54]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 배경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설정이다.]

  1. 영국 중앙정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내에서 국가원수와 같은 의전적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를 통과한 법안도 영국 국회의 법안과 마찬가지로 여왕이 재가하는 절차를 밟는다.
  2. Nicola Sturgeon.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당수이기도 하다.
  3. First Minister. 자치정부의 총리는 영국 중앙정부의 총리(Prime Minister)와 명칭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어 번역어는 통일돼 있지 않아서 다른 용어를 쓰기도 한다. 제1장관, 수석장관 등. 아니면 그냥 정부수반이라고 하든가....
  4. John Swinney. 과거에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당수, 부당수 등을 역임했었다.
  5. Deputy First Minister.
  6. 완전한 영어판 가사는 아니고 가사에 약간의 스코트어가 섞이긴 했다. Tae, Wee 같은 표현이 그 예.
  7. 영어식 발음은 스코샤. 여기서 유래한 캐나다노바스코샤 주의 뜻이 라틴어로 새 스코틀랜드다.
  8. 하단의 프랑스와의 관계 부분 참조.
  9. 미국독립보다 70년앞이다.
  10. 사실 저렇게 게일어를 필두로한 씨족 사회 중심의 '순수한' 켈트 문화를 유지해 온 하이랜드 지방은 영국 전체 인구의 1/10 수준인 스코틀랜드 인구의 1/10 정도 밖에 안된다...
  11. 이 이야기를 그린 유명한 영화로는 멜 깁슨이 주연, 감독을 맡은 '브레이브 하트'가 있다. 다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내용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12. 지금도 잉글랜드랑 인구 차이가 무려 10배나 된다.
  13. kontor
  14. 중세 내내 주인이 양쪽 사이에서 한 20번 쯤 바뀌었던 베릭은 결국 1482년 훗날 리처드 3세가 된 글로스터 공작이 공성 끝에 먹었다. 스코틀랜드 측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베릭은 현대까지 잉글랜드 땅으로 남았다.
  15. 해당 링크로 따라가면 나오는 제임스 2세는 머나먼 훗날 17세기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이다!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 치면 저 양반은 제임스 7세이고, 본문에서 설명한 왕은 15세기의 인물이다
  16. 스코틀랜드 지명은 주로 Glaschu, Dùn Èideann, Inbhir Nis 같이 게일어에서 기원한게 영어로 음차 된 경우가 많아 현대 영어의 관점에서도 괴악한 발음이 많다. 당장 에딘버러 시내의 큰 도로 중 하나인 Cockburn Street만 해도 철자만 보면 뭐? 고추에 불이나?지만 발음은 코번 도로로 읽히고, 고명한 귀족의 거대한 궁전으로 유명한 서부의 Culzean이란 마을은 쿨레인이라는 z는 어디 북해 바다 낚시배에서 떨어뜨린 듯한 이름으로 발음된다. 한국에 게일어와 스코트어 전문가가 누군가는 있을거라고 믿고(...)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의 기여와 수정을 요구한다.
  17. 그 딸인 메리 스튜어트는 본인이 정상적인 왕권을 휘둘렀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국제 정세와 대내외 이해 관계에 휘둘렸고, 스코틀랜드 단독의 국왕으로는 마지막이었던 제임스 6는 잉글랜드 왕 타이틀 딴 이후 제임스 1세가 되어 런던으로 내려갔다
  18. 하이랜드 클랜과 로우랜드 조정의 관계를 꼭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기 쯤 들어가면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에딘버러에서는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 처럼 활동하면서도 본거지인 고향의 하이랜드에서는 여전히 반수렵, 목축 공동체인 클랜의 사회로 돌아가는데 상당히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19. 역사학계에서는 메리 스튜어트를 둘러싸고 터진 내전이었다 하여 Marian Civil War라 주로 부른다
  20.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제임스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죽였다. 당시 제임스 6세는 일단 대사를 통하여 어머니의 구명을 청했으나, 근본적으로는 태어나서 어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한데다가 그녀가 죽으면 자신이 잉글랜드 왕위계승자가 되기에 적극적이진 않았던 듯 하다.
  21. 1596년에는 실제로 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기도 했던 측근 하이랜드 귀족 자문단을 당장 처형하라고 에딘버러 성 바로 앞에서 시위를 하던 장로회 목사 몇명이 군중들을 선동해 폭동이 벌어져 왕은 에딘버러 궁전에서 대로로 쭉 내려가면 있는 당시에는 새로 지었던 홀리루드 궁전의 사냥터로 도망치고, 성난 군중은 "왕을 찾아라!"하며 횃불 들고 궁전터에서 무슨 왕을 사슴 마냥 쳐잡으려고 밤새도록 뒤적이고 다녔던 사례도 있었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에서 왕권은 사실 바닥에 떨어졌던 상황이었다
  22. General Assembly를 딱히 번역할 단어가 없어 현 편집자가 임의로 만든 단어임을 밝혀둔다
  23. 실제로 상술 된 1596년 에딘버러 폭동만 하더라도 수도에서 도망친 왕이 어릴 때 부터 친구이자 측근으로 지냈던 유력 클랜 대귀족들을 부르면서 진압 되었다. 반면 이 문단에 서술 된 언약파 혁명 때도 이들의 쿠데타에 가까운 집권 방식과 이 중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캠밸 가문의 독주에 반발한 하이랜드 클랜들이 상당한 규모의 근왕군을 일으키고, 군사적으로도 에딘버러 문턱까지 올 정도였으나, 직접 스코틀랜드에서 나고 자라 이들과 직접 연줄이 있고, 통제 할 줄 알았던 아버지와 달리 스코틀랜드에 대해서는 그냥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방관했던 찰스 때문에 딱히 제대로 된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잉글랜드 의회파-스코틀랜드 언약파 동맹에 하나 둘 씩 각개격파 당했다.
  24. 즉, 독단적이었던
  25. Greyfriars, 즉 회색 수도자란 뜻으로 종교개혁 이전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교회라 붙여진 이름이다. 첨언으로 해리 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의 본명인 톰 리들은 이 교회 공동묘지터에 있는 Thomas Riddell 이란 사람의 비석에서 롤링 여사가 따온 것이라 한다
  26. 찰스는 본인과 전혀 무관한, 시키지도 않은 짓을 근왕파 귀족들이 저질렀던 거라 주장했고, 몬트로즈 공작을 비롯한 쿠데타를 시도했던 귀족들은 잉글랜드의 정국, 왕에 대한 입장은 전혀 별개로 하이랜드 클랜 이권 분쟁을 통해 언약파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주로 캠밸 가 계열의 귀족들과 뿌리 깊은 원한 관계였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 없는 변명은 아니다
  27. 크롬웰 본인은 당시 양국 관계에서 일반적인 태도였던 의심으로 스코틀랜드를 대했으나, 일단 사상적인 면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개신교 급진파이고, 전쟁 막판 전까지는 동맹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단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이후 딱히 정치 보복을 가하진 않았다. 당대 기술력을 생각하면 20~40만명이라는 경이로울 만큼의 희생자가 나온 피비린내나는 보복성 학살을 자행했던 아일랜드와 심각하게 대조적인 모습
  28.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이전의 분리 독립 투표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홍보에 힘썼다.
  29. 현대 킬트의 원형이 되는 '그레이트 킬트'라는 의복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위계층이 많았던 하이랜드인들이 주로 입던 옷이었고 주류계층인 로우랜드인은 미개인이나 입는 의복으로 보아 천시했다고.
  30. 에릭 홈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참조.
  31. 말 그대로 피자를 튀긴 음식이다(...).
  32. 딥 프라이드 마스 바(Deep Fried Mars Bar). '마스바'라는 굉장히 유명한 초콜릿바를 튀김옷에 입혀 튀겨 먹는데... 의외로 맛있는 건 함정. 솔직히 정말 맛있다.
  33. 당연히 아이언 브루가 판매량 1위이다.
  34. 게다가 원산지는 우습게도 이 술을 마시고 스코트인들이 안주로 씹기 좋아하는(...) 잉글랜드, 그것도 남부 지방의 데본셔의 한 수도원에서 제조하는 술이다!
  35. 참조: 20111203_BRC165.gif
  36. 루터교회 계열은 또 다르다. 이 쪽은 일단 마르틴 루터 본인부터 독일인들의 사회와 문화에 너무나도 깊숙히 자리 잡은 맥주를 찬양하며 독일인이라면 맥주나 실컷 마시고 방귀도 참지 말고 푹푹 뀌어야지! 적그리스도 교황은 이 순도 100%의 독일산 보리맛 방귀나 처먹어라!(...) 라는 식의 발언도 많이 하여 굳이 음주에 대한 터부가 없다
  37. 조지 뷰캐넌은 참고로 동시대 유럽 문필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라틴어 문장을 구사하는 걸로 명망 높았던 인문학자였고, 어린 국왕 제임스 6세의 유년기 개인 교사이기도 했는데, 제임스 본인이 성년이 되서 회고한 바를 읽어 보면 학식과 교양, 지성은 확실하게 키워 주었지만 드립따 술 마시고 사소한 걸로 아무리 어리다지만 일단 국왕을 훈계한답시고 때리는 일이 많아 "배운 건 많았지만 그 얼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인간" 정도로 기억에 남은 모양이다.
  38. 현지 스코트어로 하자면 그냥 The Kirk 더 커크, 즉 그냥 (국)교회라 부른다. 스코트어는 스칸디나비아쪽 언어들의 영향력을 짙게 받아 ch를 그냥 k로 대체하여 표기한다
  39. 엄밀하게 따지면 스코틀랜드 국교회 조직 내에 bishop, 즉 주교란 직함 자체는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교구 관리 이딴 건 전혀 상관 없고, 단순히 종교개혁 이전의 스코틀랜드 교회와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교 직함을 유지한 청년회 감독일 뿐이다!
  40. 다만 국교회 출신은 아니고 거기서 분리되어 나온 자유교단 출신 목사이다. 철저한 근본주의자로써 국교회까지 깠을 지경이면 말 다한 셈.
  41. 이 곡은 스코틀랜드 축구대표팀의 응원가 역할을 한다.
  42. 스코틀랜드 국회에서 2007년에 글래스고 대표로 당선되었다.
  43. 출처: *http://www.scotsman.com/anti-english-bullying-1-1810591
  44. 나머지 Big 4로 불리는 선수는 스페인라파엘 나달, 스위스로저 페더러, 세르비아노박 조코비치다.
  45. 다만 이쪽은 예명이다
  46. 이 성씨를 가진 폴 맥겐이라는 배우가 있지만, 정작 그 사람은 리버풀 출신이다.
  47. 스코틀랜드계 혈통이다.
  48. 다른 지역의 작명법도 이와 비슷한데 아일랜드에서는 O'(O'Neill, O'Brien, O'Sullivan 등)나 Ó,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아들을 뜻하는 son이 접미사로 붙는다.(Thompson, Johnson, Jackson 등) 또 피츠제럴드(Fitzgerald), 피츠존(Fitzjohn), 피츠클래런스(FitzClarence), 피츠로이(Fitzroy)와 같이 라틴어로 아들을 의미하는 '필리우스(Filius)'에서 유래한 '피츠(Fitz)'가 붙은 성씨도 있다.
  49. 원래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스코틀랜드 끝자락에 위치한 뮈어섬의 연구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 과학자의 관리를 받으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덧붙여 뮈어 섬은 가상의 섬이다.
  50. 태어난 곳은 인도지만 어머니쪽 혈통과 실제 국적은 스코틀랜드라서 게일어를 조금 할 줄 안다.
  51. 누군지 모르겠다고? 작중에서 목소리로만 나오신 릴리 어머님 되시겠다.
  52. 원작 소설에서는 잉글랜드 출신이었으나, 영화화 될 때 숀 코너리 가 스코틀랜드 억양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나온 후 설정이 변경되었다.
  53. 스코틀랜드 출신임을 강조하려는지, 그가 사용하는 슬레지해머와 오른쪽 종아리에 킬트 조각을 묶여놨고, 슬레지해머에는 스코틀랜드 전통인 "The Caber"라는 이름을 붙였다.
  54. 참고로 에이미 폰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나오고 실제 에이미 폰드역을 맡았던 카렌 길런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