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의 역대 황제 | ||||
초대 태조 고황제 소도성 | ← | 2대 세조 무황제 소색 | → | 3대 폐제 울림왕 소소업 |
묘호 | 세조(世祖) |
시호 | 무황제(武皇帝) |
연호 | 영명(永明, 483년 ~ 493년) |
성 | 소(蕭) |
휘 | 색(賾) |
자 | 선원(宣遠) |
생몰기간 | 440년 ~ 493년 8월 27일 |
재위기간 | 482년 4월 11일 ~ 493년 8월 27일 |
소색(蕭賾, 440년 ~ 493년, 재위 482~493)
재위 동안 영명(永明)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
소색은 소도성과 유지용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원가 17년(440년) 6월에 건강 청계궁에서 태어났다. 소도성이 13살에 본 아들로 자는 선원, 아명은 용아다. 소색은 초기에 송나라 감령에 임명되었고 영광 원년(465년) 강주자사 진안왕 유자훈의 난이 일어나자 소색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 결국 남강상 심숙지에게 구금되었다가 친척 소흔조, 문객 환강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1백명을 이끌고 난을 평정하는게 공을 세웠다. 아버지 소도성이 순제 유준을 옹립하자 그는 좌위장군에 임명되어 진희왕 유섭을 보좌했다. 심유지의 난이 일어나자 모두가 건강으로 돌아갈 것을 제의했으나, 소색은 과감하게 분구를 수비하기로 결정했고 소도성은 건강에서 오오, 넌 내 진짜 아들임ㅋ라고 칭찬했다. 승명 3년(479년) 정월에 소색은 상서복야, 중군대장군, 개부의동삼사가 되었고 3월에는 남예주 자사가 되었으며 소도성이 즉위하고 난 6월에는 황태자가 되었다. 그렇게 건원 4년(482년) 3월에 소도성이 죽자 43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즉위 후에는 건평왕 유경소, 중서감 원찬, 상서 유병, 형주 자사 심유지를 신원하고 예로서 그들을 다시 안장했다. 소색은 지속적으로 호적을 정리하고 엄명하고 과단성이 있었다. 영명 4년(486년) 관군이 당우지의 난을 평정한 틈을 타서 백성들을 약탈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알게된 소색은 자신이 신임하던 장군 진천복이 당시 책임자였다는 이유로 기시형에 처하고 이를 조정 내외에 알려 위엄을 떨쳤다. 소색은 송나라 유씨들이 골육상잔을 일으킨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형제들이나 종실을 죽이지 않고 큰 전쟁이 없어서 치세가 안정되었다. 이에 국내는 비교적 안정되었고 생산이 발전했다. 그러나 소색은 보복심이 강해서 태자로 있을때 사공자의 순백옥이 소색의 잘못을 소도성에게 밀고하여 질책을 받고 하마터면 폐위될 뻔 했던 일로 원한을 품고 즉위 후에 난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순백옥을 죽였다. 소색은 영명 11년(493년) 7월에 재위 12년만에 54세의 나이로 건강에서 죽었다. 9월에 경안릉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장손 소소업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