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앳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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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8~2009
미국의 살인자. 찰스 맨슨의 추종자였으며 가정 및 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2 살인

194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샌게이브리얼에서 태어났다. 앳킨스는 가정 불화가 심각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1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자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는 그를 친척집에 갖다 버렸다. 하지만 앳킨스는 친척집에서의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했으며 가출하자마자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그 곳에서 방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앳킨스는 유흥업을 하며 전전했으며[1] 이러면서 마약에 심취하여 교도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이렇게 생활하던 앳킨스는 히피들과 어울려 지냈는데 히피족의 소개로 맨슨 패밀리에 가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찰스 맨슨의 음악이 시끄럽다고 하자 수잔은 이에 앙심을 품고 그 사람을 살해하기위해 기회를 엿보며 그 사람의 집 위치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1969년 8월 9일에 찰스 맨슨의 지시로 3명의 동료를 이끌고 그 집을 습격하게 된다.

맨슨의 음악을 저질이라고 욕했던 사람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고 난 뒤였으며 그 집에는 폴란드 출신의 영화제작자 로만 폴란스키가 이사를 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그들은 그냥 공격을 단행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폴란스키 본인은 사업상의 문제로 집을 비운 상태였다.

앳킨스는 맨슨 패밀리와 함께 LSD에 취한 채로,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처들어가 임신 8개월이던 부인 샤론 테이트와 시중드는 10대 소년인 스티븐 패런트, 그리고 상속녀 애비게일 폴저와 그녀의 애인인 영화 제작자 프라이코스키, 헤어 디자이너 제이 세브링 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스티븐은 권총 4방과 칼질 1방으로 즉사시켰다. 돈을 줄 테니 살려달라는 세브링은 1번의 총탄과 7번의 칼 난도질을 당한후 테이트와 함께 시체가 거실에 목매달렸고 애비게일은 28차례의 칼 난도질, 프라이코스키는 2번의 총탄과 13번의 칼질을 머리에 맞고 51차례의 칼질을 당해 즉사했다. 마지막 피해자였던 샤론 테이트가 "뱃속의 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에 앳킨스는 "넌 살아봐야 소용없어. 죽어서 더 쓸모가 있을 거야."라면서 16번의 칼질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더군다나 테이트의 시신도 굉장히 잔인하게 훼손했다.

더 황당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죽인 사람들이 유명인인 줄도 모르고 맨슨의 지시에 따라 평소 맨슨의 음악을 혹평하던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만 들어간 것이었고, 나중에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엉뚱한 사람. 그것도 유명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되자 더 주목받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원래 폴란스키가 범행의 대상이 아니라 그 전에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대상이였는데 이들은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사간 사실을 모르고 덮어놓고 습격한 것이었다. 폴란스키의 입장에서는 이사를 잘못 와서 풍비박산이 난 셈. 그 다음날에도 앳킨스는 인근 슈퍼마켓을 찾아가 주인 부부를 살해하기도 했다.

이후 앳킨스는 캘리포니아에서 경범죄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습격해서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것 때문에 폴란스키의 집 습격사건 용의자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사형이 확정되었다. 배후에서 이 범죄를 조종한 찰스 맨슨과 공범인 찰리 왓슨, 린다 카사비앙, 패트리샤 크렌빈켈도 모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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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왓슨(좌, 男), 패트리샤 크렌빈켈(가운데), 수전 앳킨스(우).

3 처벌

1971년에 앳킨스 일당과 살인을 배후 지시한 찰스 맨슨은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았고 검찰 증언을 조건으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은 린다 카사비앙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 모두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그 이듬해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졸지에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었다.

앳킨스는 다른 이들과 달리 징역을 사는 동안 기독교인이 되었고 봉사활동을 하며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범죄의 죄질이 너무 나쁜데다가 원래 사형이 필요한데 사형 폐지 처분에 따라 감형된 상태라서 가석방 심사는 계속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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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직후(좌), 사망 직전(우)

앳킨스는 암에 걸렸고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석방을 신청하였으나 2009년 9월 2일 수전 앳킨스의 가석방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2] 결국 앳킨스는 2009년 9월 24일 교도소 병원에서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앳킨스는 장장 38년 동안이나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 교도소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여성 장기복역수였다.[3] 더군다나 앳킨스 본인도 일생의 3분의 2에 달하는 기간동안 징역을 살았다. 죄를 뉘우치는 것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회 상식상 교도소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수형 생활 중에 자신의 범죄에 대해 용서를 빌고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서 새 사람이 되었고[4] 맨슨 패밀리에 가담하여 연쇄살인자가 되기 이전의 삶. 특히 성장 과정이 너무나 가혹했기에 동정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물론 어린 시절에 불행했다는 것이 이 인간이 자행한 끔찍한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4 기타

  • 키 160cm이다.
  • 체포 이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히히덕거리는 사진이 꽤 많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사람의 살아생전 인성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패트리샤 크렌빈켈도 마찬가지이다.
  1. 밑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젊은 시절에는 미모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유흥업에 종사해서 먹고 사는 게 가능했다.
  2. 샤론 테이트의 여동생 데브라는 "앳킨스가 마지막 숨을 거둘때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까지는 교정시설의 통제된 환경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라며 가석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3. 최장기 복역수는 같은 범죄를 저지른 패트리샤 크렌빈켈이다. 크렌빈켈은 올해로 42년째 복역중이며 앳킨스와 같은 이유로 가석방 심사에서 13번 탈락했다.
  4. 다만 이는 다른 맨슨 패밀리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찰스 맨슨은 가석방위원회 참석도 않고 휴대폰을 소지하다가 적발되는 등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없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 찰리 왓슨과 패트리샤 크렌빈켈은 종교에 귀의하는 등 나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고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등 교도소 측의 교정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