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Stephanus III
이탈리아어: Stefano III
영어: Pope Stephen III
역대 교황 | ||||
93대 성 바오로 1세 | ← | 94대 스테파노 3세 | → | 95대 하드리아노 1세 |
- 생몰년: 720년 ~ 772년 2월 1일
- 재위기간: 768년 8월 7일 ~ 772년 2월 1일
시칠리아 태생인 '스테파노 3세'는 오랫동안 성직에 종사했으며 두루 요직을 거쳤다. 772년 교황 바오로 1세가 선종하자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로마 귀족들의 대표였던 '토토'공작이 자신의 동생 '콘스탄티노'를 교황에 착좌 시키고자 공작을 벌였다. 이에 로마 교회의 공증인이었던 '크리스토포로와 그의 아들 세르지오는 롬바르드 왕국의 데시데리우스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데시데리우스는 세르지오에게 군대를 내주었고, 세르지오는 '토토'공작을 살해하고 '콘스탄티노'를 축출했다. 이후 롬바르드 왕국은 새로운 교황 후보로 수사 '필립보'를 내세웠으나 '크리스토포로'는 이를 무효화 하고, 다시금 선거를 통해 '스테파노 3세'를 정통성 있는 교황으로 내세웠다. '스테파노 3세'는 768년 8월 7일 교황위(位)에 공식 착좌한다. 이후 알라트리에서 '콘스탄티노'를 지지자들이 일으킨 반란이 있었으나 이내 진압 되었다.
어렵게 교황이 된 '스테파노 3세'였지만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768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사망하자 그의 두 아들 카를루스와 '카를로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다. 결국 프랑크 왕국은 둘로 쪼개졌고, 롬바르드 왕국과 동로마로 부터 로마를 지켜주던 프랑크 왕국이 분열하자 교황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처음에는 두 형제를 어떻게든 중재해보고자 노력했으나 가볍게 무시당했고, 이에 롬바르드족의 데시데리우스 왕에게 중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중재는 '스테파노 3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롬바르득족과 프랑크 왕국이 혼인을 통해 동맹이 되어 버린것이다. 가뜩이나 전임 교황 때 부터 동로마와 롬바르드 왕국의 간섭에 신경 끌 날이 없던 로마는 믿었던 프랑크 왕국마저 롬바르드 족과 붙어먹게 되자 패닉에 빠지게 된다. '스테파노 3세'는 피핀 3세의 맹세를 상기시켜 '카를루스'와 '카를로망'을 회유해 봤지만 가볍게 씹혀버렸다.
이런 대외적 여견 속에서 동로마에 대한 강경 자세는 이어 질 수 없어서 '성상 숭배'에 대한 문제를 어느정도 인정해야 했으며 무기력한 교황은 자신을 교황이 되도록 만들어준 '크리스토포로'와 그의 아들 '세르지오'에게 더욱 의지 하게 된다. 하지만 롬바르드족의 왕 데시데리우스는 과거 자신의 도움으로 권력을 얻었고도 자신이 내세운 교황 후보 '필리보'를 축출한 '크리스토포로'와 '세르지오' 부자에게 앙금이 있었고, 로마를 자신의 세력하에 두기 원했기에 '파울루스 아피아르타'를 비롯한 로마교회 전반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두고, 공작을 펼친다. 마침내 771년 데시데리우스는 로마를 침공하였고, '크리스토포로'와 '세르지오'[1]를 축출하고, 심복이었던 '파울루스 아피아르타'를 로마 교회에 요직에 앉힌다.
이후 교황은 데시데리우스의 간섭에 저항을 해보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다. 오히려 '파울루스 아피아르타'의 로마교회에 대한 영향력만 커질 뿐이었다. 이듬해인 772년 초 '스테파노 3세'가 중병에 걸리자 '파울루스 아피아르타'는 로마 교회의 권력을 장악해 유력한 귀족과 성직자들을 내 쫓고, 1월 24일에는 장님이 되어 라테라노 궁전의 독방에 수감되어 있던 '세르지오'를 목졸라 살해하도록해 후한을 없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롬바르드 왕국과 프랑크 왕국간의 동맹이 깨져서 롬바르드 족을 다시금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카를로망'이 사망하자 그의 미망인이 데시데리우스에게 자신을 도와서 '카를로망'의 유산을 유지하도록 해주길 부탁했고, 이에 격분한 카를루스가 프랑크 왕국 전체를 장악하고 롬바르드 왕국과 대립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제위 내내 외환에 시달리던 스테파노 3세는 772년 2월 1일에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바티칸에 안장되었다.- ↑ 이 때 '크리스토포로'와 '세르지오'의 안구를 적출한다. 결국 '크리스토포로'는 후유증으로 3일만에 사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