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han Bank
민단 측의 자본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자본 설립 은행. 은행 코드는 26번이었다. 당시 재일동포들이 수트케이스에 엔화 지폐를 꽉꽉 채워서 반입한 것을 자본금으로 썼다고 하는 전설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물론 당시 출자한 재일동포들은 이후 신한금융지주가 상장되고 주식 가치가 상승하면서 떼부자가 되었다고들 카더라.
1977년 제일투자금융이라는 단기금융회사로 시작해 1982년 7월 7일 신한은행을 세웠다.그런데 여기는 단자회사라고 안 까인다 하나은행과 다른 점은 단자회사에서 은행으로 전환된 게 아니라 신한은행이라는 회사가 별도로 생겼다는 점. 제일투자금융은 종합금융회사로 전환되었다 외환위기 때 퇴출되었다.
은행원들이 동전과 소액권 지폐가 한거득 담긴 돈통을 실은 손수레, 심지어는 삼륜 개조 오토바이(!)까지 몰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상인들을 일일이 만나 잔돈을 바꿔 주고 계좌 개설을 유도하는 마케팅으로 은행을 키웠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물론 이것은 전설이 아닌 레전드 역사로, 당시의 세태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혁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은행원=갑 오브 갑'이라는 마인드와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에 시장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느라 은행 갈 시간도 없는 상인 분들을 위해 은행원들이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을 기반으로 한 출발 과정이 과정이었던지라 규모는 작았지만, 재정 상태가 양호했던 터라[1] 외환위기 때 동화은행을 합병하고 이어서 2006년에는 조흥은행과 합병해서 현재의 통합 신한은행이 발족되었다. 대한민국에서 100% 지점장 재량이었던 대출을 최초로 중앙 전산망에 의한 평점에 따른 대출(CSS)로 바꾼 것도 이 곳이라고 한다. 하나은행, 한미은행과 함께 비교적 늦게 생긴 신한은행이 최고(最古)의 조흥은행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일 듯. 신한-조흥 통합 이후에는 구 신한이라고 불린다.
여담으로 비록 관리는 손을 놓았지만, 국내 최초의 맥뱅킹을 지원한 곳이 구 신한은행이다.
2005년 신한은행 영등포지점에서 직원이 고객의 뺨을 때린 (...) 적이 있다. 관련 기사 법원 판결 기사- ↑ 다만 신한은행 계열 금융회사들에 전혀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라서 제일종합금융이 퇴출당하고 신은상호신용금고가 매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