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銀行. 두 은행 모두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1 대한민국에 있었던 한미은행
韓美銀行
KorAm Bank
은행코드 | 027 |
SWIFT 코드 | KOAMKRSE |
알차고 튼튼한 한미은행[1]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은행. 위의 은행 로고는 199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며, 한국 전통의 격자무늬와 색동저고리의 색상을 바탕으로 해서 몬드리안 식 추상 구성을 접목시킨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그 때문인지 1999년에는 공평동 본점에서 몬드리안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름을 보고 설마했겠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의 대한상공회의소[2]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공동 투자로 합작해 1981년 9월 17일에 설립한 회사로, 본래 사명은 "한미금융"이었다. 영문명도 KorAm Bank. 사실 한미금융은 본격적인 금융회사라기보다, 대한민국과 미국 자본이 합작한 은행을 세우기 위해 파트너를 맺으려고 세운 회사였다. 1982년 7월 22일 합작 은행 설립을 위한 주주 간 합의서를 조인하였고, 동년 9월 2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아 1983년 3월 5일에 한미은행이 출범했다. 이는 신한은행에 이어 대한민국의 7번째 시중은행으로 출범한 것. 본점은 설립 초기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에 임시로 입주한 후, 1983년 3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1번지(인사동5길 41)[3]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1997년 9월 1일에 본점을 중구 다동의 청계천변으로 이전하여 현재도 한국씨티은행의 본점으로 이용 중이다.
초기에는 미국계 은행이라는 이유로 반미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되어, 은행 점포에 시위대가 난입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쪽이 50.1%, 미국 쪽이 49.9%로 대한민국 쪽 지분율이 아주 살짝 높았다.
저런 이유도 좀 영향을 끼쳤겠지만, 무엇보다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그랬는지 미국 쪽 주주는 차츰 한미은행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된다. 1980년대 후반에 경영권이 완전히 대한민국 쪽으로 넘어왔고, 이 무렵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그 후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보유 지분을 모두 대한민국 쪽에 넘기면서 사실상 완전한 대한민국 은행이 되었다. 하지만 1999년 당기순손실이 3,960억 원에 이르는 바람에 외자 유치에 나섰고, 줄다리기 끝에 2000년 9월 4일 미국의 사모 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이 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무렵에 규모를 키우려던 하나은행과 합병 논의도 있었지만, 칼라일이 시너지를 낮게 평가해 2001년 1월에 백지화됐다.
일단 서울특별시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었는데, 수도권 외 지역에는 점포망을 크게 확장하지 못한 채 이름이 사라진 은행이다. 지점망은 주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지역에 몰려 있었고, 후발주자라 지방에는 많이 진출하지 못해 보통 광역시나 도에 1~2개가 고작이었기에 지방 광역시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이 은행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 은행권의 교외선 평화은행과 자웅을 겨뤄도 될 듯 하지만 서울특별시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100개 가까운 지점을 운영하고, 광고도 제법 하여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시중은행으로 성장하였다.
1998년 3월 9일에는 우체국과 업무 제휴를 맺어 우체국의 금융창구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한국씨티은행으로 바뀐 후 2011년 7월 1일에 ATM까지 공동망을 전면 개방했다.
그러다가 1998년 6월에 퇴출은행으로 지정된 지방은행인 경기은행을 인수하면서 인천광역시 관내 점포망이 확대됐다.[4] 1999년 6월 18일에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3동의 경기은행 본점 건물을 360억 원에 사들여 한미은행 인천영업부로 변경하고, 전산센터도 인천영업부에 설치했다.[5]
구월3동 인천영업부 전경. 바로 뒤의 까르푸는 현재의 홈플러스 구월점이다.
경기은행의 인수로 몸집을 불리고 점포망을 확대한 한미은행은 국내 6~7위권의 은행으로 발돋움하며 1980년대에 설립된 은행으로는 성공적으로 성장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사모 펀드답게 칼라일은 2003년 말 한미은행 지분을 매각한다고 선언한다. 국내의 타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기 위해 한미은행에 눈독을 들여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여기에는 SC 등의 외국계 은행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인수에 반대하는 한미은행 직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4년 2월에 미국의 세계적인 금융 그룹인 씨티그룹이 3조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한미은행 직원의 고용 승계 문제, 전산 통합 문제 등으로 노조가 2004년 6월 25일부터 7월 12일까지 무려 18일 동안의 장기 파업[6]을 하는 등의 진통이 있었으나 씨티그룹 측이 대폭 양보하면서 마침내 2004년 11월 1일에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한미은행의 덩치가 씨티은행 국내 지점보다 당연하게도 컸기에, 명목상으로는 한미은행을 존속 법인으로 하여 씨티은행 국내지점을 통합하는 형태로 법인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씨티은행의 설립일은 한미은행의 설립일과 동일하다. 금융결제원의 앞 3자리 금융공동망 은행 코드도 한미은행의 027번을 이어받았으며, 고객분류번호 역시 한미은행의 데이터를 그대로 가져왔다.[7]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씨티그룹에 넘기면서 2배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여담으로 하나은행보다 더한 수수료 지옥[8]으로도 유명했는데, 오죽하면 수수료의 10%를 환급해 주는 한미 OK캐쉬백 통장이 거의 주력 상품이었을 정도. 씨티은행과 합병한 이후에도 씨티 OK캐쉬백 통장으로 살아남았었으나, 씨티원 통장 등이 런칭되면서 없어졌다.
또한 인터넷뱅킹의 편리함을 강조하는 광고를 많이 냈었는데, 사이트 주소가 www.goodbank.com였다. 수수료 혜택을 보면 좋은 은행은 개뿔 하지만 현재는 수수료 혜택이 정말 좋은 은행으로 리다이렉트되니 맞는 말일 지도? 지금은 아니올시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반칙왕에서 주인공 임대호(맨날 송영창에게 헤드락 걸리는 송강호)가 다니는 은행이 바로 한미은행. 그렇다고 한미은행에 헤드락 잘 거는 직원이 많은 건 아니었다.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게시물이 인터넷에 꾸준히 돌고 있다.
2 미국에 있는 한인 교포 대상 은행
韓美銀行
Hanmi Bank 홈페이지
위 씨티그룹에 인수된 한미은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은행이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 한국인이 동포를 상대로 영업하는 은행으로 설립한 것이다. 미국 내 한인 은행 중 최대 자산 규모로 성장하였고, 나스닥에도 상장하였다. 미국 최대의 한인 은행에 대한민국의 금융 회사들이 눈독을 들였고, 우리금융지주에서 인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나 미국 금융당국이 정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승인을 얻지 못하여 결국 인수가 무산되었다.
# 우리은행은 한미은행 인수를 통해 성공적으로 미국에 진출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추신수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광고 전속계약을 맺었다.- ↑ 실제로 후발은행 치고는 독보적인 수준으로 재무 상태가 건전했다. 몇 년 뒤 설립된 동남은행과 대동은행이 10년도 안 되어 쓰러진 것과 대비되는 대목.
- ↑ 주로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이 참여했다.
- ↑ 태화빌딩 옆에 있는 현재의 하나투어빌딩이며, 당시에는 한미빌딩으로 불렸다. 중구 다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한미은행 별관으로 이용하다가 한국씨티은행 종로지점으로 계속 있었지만, 2014년 5월에 폐쇄됐다.
- ↑ 경기은행은 원래 인천의 지방은행이었다가 1972년에 경기도 전 지역으로 영업구역을 확대했었다.
- ↑ 당시 한미은행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수도권에서도 서울특별시에만 그나마 점포가 많았지 인천과 경기 지역에는 지점망이 매우 취약했다. 그래서 김진만 당시 한미은행장은 퇴출은행과 관련해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 근교의 은행, 즉 경기은행의 인수를 원한다고 말했고 이헌재 위원장 역시 뜻을 같이 하여 경기은행이 한미은행으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익성이 딸린다 싶은 지역의 경기은행 점포를 죄다 폐쇄해 버려서 딱히 점포수가 많이 커진 건 아니었다. 그나마 대한민국 3위권 대도시인 인천 지역 점포가 대부분 살아서 망정이지..... 자세한 건 경기은행 항목 참고.
- ↑ 2011년 SC제일은행 파업 전까지만 해도 역대 은행권 파업 중 최장기 기록이었다.
- ↑ 통장 바로 안쪽면을 보면 8자리 고객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게 바로 구 한미은행에서 쓰던 방식이다.
- ↑ 그런데 2000년에 한미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만약 합병했다면 수수료 지옥이 커졌을 듯이후 하나은행은 제일은행도 노렸으나 또 실패했고, 해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가 매각이 지지부진했던 서울은행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후 인수하여 몸집을 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