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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조선미술대관에 실려있는 쌍룡검의 사진[1]
鑄得雙龍劍 千秋氣尙雄 盟山誓海意 忠憤古今同쌍룡검을 만드니 천추에 기상이 웅장하도다. 산과 바다에 맹세한 뜻이 있으니 충성스런 의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도다.
쌍룡검에 새겨진 글귀.
1 소개
雙龍劍
충무공 이순신의 칼로, 이순신이 실전에서 쓴 실전용 환도. 실전에 쓰인 이순신의 검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당연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됨이 아깝지 않은 보물이나 안타깝게도 100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충무공과 관련된 검은
현충사에서 보관중인 거환도 2자루[2][3] |
충렬사에 소장된 4자루[4]. 왼쪽은 참도, 오른쪽은 귀도다. |
그리고 충무공이 항상 가지고 있던 실전용 환도인 쌍룡검 2자루
이렇게 총 8자루다.
2 쌍룡검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이미 18세기에 한 차례 실종됐다가 1810년경 훈련대장 박종경에게 발견[5][6]되어 조선 전체를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적이 있다. 다만 이것이 실린 《돈암집》권6 <원융검기>에는 "쌍룡검은 궁내부[7]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라는 기록만 남아있을뿐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나와있지 않아 있다. 1909년 대한민보에서 "충무공의 군도는 동궐내 박람회에 출품되었다."라고 했으며 1910년 사진집인 《조선미술대관》에 사진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행방이 묘연했으나 주간경향이 1912년 5월 26일자 권업신문에 "동관대궐에 이순신의 원융검(元戎劍) 및 조선 유물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다 치우고 그림이나 글씨같은 것들만 전시해놨다."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 기록으로 궁내부박물관 측에서 소유하고 있다가 어느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후 일제시대 초기에 행적이 점점 묘연해지기 시작해서, 현재는 193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몇 장만 남아있다고 하나 그나마 그 사진들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순신이 실전에서 사용. 이순신 사망후 행방이 묘연. 2. 한자루는 병조판서 심상규, 한자루는 아산에 사는 어떤 이가 가지고 있었음. 3. 1811년 박종경이 두자루의 쌍룡검을 얻음. 4. 이후 친위부가 소유하게 되었다가 궁내부 박물관 소유로 이동. 5. 1912년 이후 행적이 묘연. |
- ↑ 이 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 ↑ 의장용 검이다. 태구련 등을 생포한 뒤에 이들이 대장장이라는 증언을 확인할 겸해서 만든 물건. 길이 때문에 쌍수도라 칭하는 경우가 꽤 있으나, 그와는 전혀 다른 규격의 물건이다.
- ↑ 참고로 저 사진에서 보여지는 붉은 선은 이후 누군가가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며 문화재청에서 난리가 났다. 2015년 지금은 벗겨낸 상태.
- ↑ 충무공 사후에 명나라에서 보낸것
- ↑ 그의 돈암집에서 존재가 확인 되었다. 본인이 병조판서 심상규에게서 한자루, 아산에서 올라온 어떤 이에게 한자루를 구매했고, 이후 검이 궁내부 박물관이 소유하게 되었다고 기록해 놨다.
- ↑ 조선후기 무기개설서 융원필비의 저자이기도 하다.
- ↑ 조선 말기, 왕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