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검

1 개요

四寅劍

한국에서 주술적 의미를 띤 도검. 사인검 혹은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이라고도 한다.
조선 땅에서 도검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검이다.
김유신 탄생 설화에서 처음 등장하며 김유신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에도 왕실 종친이나 충성스런 신하만이 하사받을 수 있던 일종의 성검.

2 해설

"인(寅)"이라는 글자는 십이지호랑이를 가리키는 글씨이다. 사인검이란 천시를 따져 인, 즉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만든 검으로, 장인이 최소 반년 이상 삿된 것을 멀리하며 몸을 정갈히 한 다음,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들어 낸 칼이 곧 사인검이 된다. 윤달에는 월건을 배정하지 않으며 12지지와 음력의 12달이 서로 대응되기 때문에 인월은 음력 1월로 고정된다.

장인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한 자루밖에 만들지 않는 칼이다. 같은 날 칼을 두어 자루 더 만드는데, 이것은 인시에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삼인검(三寅劍)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인년이 12년마다 한 번 돌아오고 매달마다 2~3일 정도는 인일이 있기 때문에 저 검을 만드는 날은 12년에 단 2~3일 밖에 되지 않는다. 삼인검도 이런데 사인검은 단 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도 있어서, 실질적으로 사인검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한 장인의 평생에서 반 나절도 되지 않는다.

사인검이 만들어진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투용 이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상 때문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체제가 정비되면서, 대다수의 칼이 관제도검으로 제조되었다. 조선은 이러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초창기부터 핸드캐논, 천자총통, 국궁처럼 사격을 통제하는 기술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칼은 일종의 호신용 무기로서 쇠퇴해버렸고, 칼을 제조하는 기술은 발전할지언정, 크기를 줄이고 경량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1]

결국, 조선시대의 도검은 소형화 기술, 국가의 권위, 왕의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왕이 신하와 인척들에게 국가를 다스라는 사람으로서의 정신을 일깨우고, 상무정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발달한 예식용 도검 문화가 사인검이었던 것이다.

3 구조

호랑이(寅)의 기운을 네 겹으로 받아서, 특정한 시기에만 최고의 장인이 만들 수 있었던 검이다. 덕분에 벽사파마의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한다. 제조 방법이 보통 주조거나 단조였지만, 형태를 보면 살상적인 무기로서의 의미는 높지 않다.

연철이라서 무기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단순히 칼날을 세우지 않아서 살상력이 없는 뿐이지, 칼에 들어가는 기술을 보면 내구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인터넷에서는 조선시대의 제철기술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환도에 들어가는 기술이나 재료에는 흠이 없었다. 수천번 두들기고 여러가지 전통 방식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본도의 여러번 접어서 만드는 방식인 접쇠 방식과 별다른 정성의 차이가 없었다. 왕의 통제하에 있는 관청에서 제작되는 도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칼몸 전체에 새겨진 별자리 문양, 주문, 최고의 장인이 평생 단 하나, 특정한 시기에만 만들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서 주술적인 의미가 깊다.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단순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금속에서 재현했다는 점에서도 예술적으로도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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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에는 기본적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하는 28수의 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여기에 신령한 기운을 불어 넣기 위해서 한문으로 주문이 새겨넣는데, 검의 명칭을 제외하고, 총 24자의 한자가 전서체로 입사(入絲)되어 있다.

四寅 斬邪劍
사인 참사검

乾降精 坤援靈 日月象 岡澶形 撝雷電
건강정 곤원령 일월상 강단형 휘뢰전
하늘은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형태 이루며 번개가 몰아치는도다.

運玄坐 推山惡 玄斬貞
운현좌 추산악 현참정
현좌(玄坐)를 움직여 산천(山川)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玄妙)한 도리로서 베어 바르게 하라.

3.1 사인도가

선조시기의 신흠은 사인검을 선물받자 기쁨에 넘쳐서 '사인도가'라는 시를 지었다. 요약하면, "아 사인검 너무 좋아!". (...).
사인검이 웬만한 세력가들조차도 구경하기 힘든 성검 취급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인도가 (四寅刀歌)

林有魈兮山有夔  숲에는 이매(魑魅)가 있고 산에는 귀신이 있고

陸有虎兮水有螭  땅에는 호랑이가 있고 물에는 이무기가 있어

夜而行兮晝而伏  밤이면 돌아다니고 낮이면 숨어버리며

攬余裾兮嚙余足  나의 옷깃을 끌어당기고 내 발을 깨무네.

橫中途兮不可制  길에서 횡행하니 제어할 길이 없고

爲民害兮勢漸猘  백성에게 해가되니 그 기세가 점점 더 거칠어진다.

我有刀兮名四寅  나에게 칼이 있으니 그 이름을 사인(四寅)이라 하네.

讋地祇兮通天神  지신(地神)을 두렵게 만들고 천신(天神)과 통한다.

白銀粧兮沈香飾  백은(白銀)으로 단장하고 침향(沈香)으로 꾸몄으며

光潑潑兮霜花色  빛이 번쩍이며 뿜어지니 마치 서릿꽃과 같다.

防余身兮奚所懼  내 몸을 보호하니 어찌 두려워할 바가 있으리

邪自辟兮罔余迕  삿된 것은 저절로 피하니 나를 얽어매지 못하리.

精爲龍兮氣爲虹  정(精)은 용(龍)이 되고 기(氣)는 무지개가 되어

橫北斗兮亘紫宮  북두성(北斗星)을 가로질러 자미원(紫微垣)까지 퍼지네.

行與藏兮惟余同  길을 다닐 때 몸에 감추어 함께하니 내 몸과 한 가지로 생각하네.

歲將暮兮倚空同  장차 늙어지면 함께 공동(空同)으로 돌아가리라.


왕족들이 사용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서, 사진검(四辰劍)이 있다. 이것은 용의 해, 용의 월, 용의 날, 용의 시간에 만들어진다. 최고의 장인이 평생에 딱 한자루 사진검을 만들고, 연달아서 만들어낸 칼들은 삼진검이 되어서 일부의 왕족들에게 수여된다. 정식명칭은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우왕의 사진검이 이성계의 혈통에게 내린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서, 호랑이의 기운을 담은 사인검을 즐겨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사진검을 많이 만들지 않았던 것은, 사인검보다도 격조가 매우매우 높아서 함부로 만들어봐야 기념할만한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주류에 가깝다. 제조 시기도 12년마다 한번씩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정치적으로 양산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2008년의 전설의 고향의 한 에피소드인 사진검의 저주편에도 우왕의 저주 운운하는 얘기가 나온다. 조선이 두 번이나 전란을 겪은 것도 사진검의 저주탓이라나. 이 이야기에선 사진검을 만드는 데 순결한 처녀가 제물로 쓰인다는 충격적인 설정이 등장한다. 참고로 최수종 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에피소드. 박하선도 나온다.

2012년에는 고려도검 연구소에서 용의 해를 맞아서 사진검 60자루를 복원했는데, 진짜 조선시대의 양식인지는 애매하지만 정통성을 이어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국내에서 환도를 제작하는 개인 메이커들 중에는 단순히 사진검이라는 '컨셉'을 따와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구체적인 유물이 많은 사인검에 비해서 사진검은 보존되는 유물이 없기 때문에 제작자의 마음대로 화려하게 꾸미는 경우가 많다. (...).

3.2 유사품: 칠성검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사였던 이억기 장군이 하사받은 칠성검.출처:육군박물관

칠성검은 본래 중국 도교에서 사용하던 의례용 칼로, 실제로 생물을 베는 용도가 아니라 악귀를 베어 죽이는 의미로 불교의 금강저처럼 사용하던 의례용 칼이나, 도교 문화가 동북아로 전래되면서 중국 외 다른 나라들도 칠성검을 만들기도 하고 토착신앙의 무당들이 같은 용도로 사용하던 신칼을 칠성검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 삼국지의 칠성보도처럼 호신용 칼에 칠성검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칠성검은 이름답게 칼날에 북두칠성과 보성 2개와 용이 새겨져 있으며, 종종 다른 건 빠져도 북두칠성은 반드시 새겨진다. 도교에서는 보검(寶劍) 이나 법검(法劍)이라고도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악귀를 죽이는 도교의 신인 현천상제(현무)가 차고 다닌다고 전해진다.

4 일화

위의 '사인도가'를 지었던 조선 선조대의 문신 신흠은 어느 날 집안에 귀신의 소행임에 분명한 변괴가 일어나자, 아들인 동양위 신익성이 장인인 선조에게 청원해 사인검을 하사받아 아버지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 후 신흠이 자신을 찾아온 아들을 마중 나가다가 갑자기 칼이 어디론가 날아가 부자가 쫒아가보니 집 기둥에 박혀들었고 거기서 피가 흘러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사악한 것을 찾아내서 스스로 날아가서 베었다.

우왕과 사진검에 관련된 전설도 있다. 이성계가 우왕을 칠때 우왕이 의 피를 타고나서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이성계가 지니고 있던 전어도라면 우왕을 벨 수 있을 것이라 하였고, 전어도로 우왕을 죽인다. 그때 우왕이 가지고 있던 사진검이 이성계의 혈통에 저주를 걸었고, 무학대사는 호랑이의 기운을 가진 사인검이라면 저주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조언했다. 이후 조선왕조에서는 그 저주를 막기 위해서 신하들의 지속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인검 제작을 장려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건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야사이니 재미로만 보는 것이 좋다.

남아있는 유물은 대개 국립박물관 등 국가의 관리하에 있으며 고려대 박물관에도 한 자루가 있다. 가끔 국내외 경매에 올라오기도 한다. 인사동 나이프 갤러리에 한 자루가 있었다.

나머지 유물들은 조선이 혼란에 빠진 19세기 말부터 외국인들에게 주술적인 의미로서 인기를 끌었던 탓에 유출되거나 상실되었다고 한다. 풍문에 의하면, 외국정부 고위층이라던가, 돈 많은 갑부들이 좋아했다고... 일단 사인검은 실존하는 성검이었으며, 생각보다 유물이 많이 있었다고는 해도 하나하나가 수백년은 초과한 가치가 있었기에 세계적으로 따져도 주술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1993년 10월 권영해 당시 국방 장관은 45주년 국군의 날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만들어 바쳤다가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2010년 즈음 고려왕검연구소의 이상선 소장이 45자루를 제조했다. 불량품이 생길 것을 감안해 많이 제조했다고. 이후 같은 분이 2007년 노동부로부터 야철도검부문 기능전승자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에는 사진참사검을 제작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대통령에게 사인검을 모델로 하여 만든 삼정검(三精劍)을 수여받는다. 국방일보 기사 원래는 외날인 삼정도(三精刀)를 수여했는데 참여정부 당시 환도를 모델로한 삼정도를 서양검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사인검을 바탕으로 한 양날검인 삼정검으로 교체했고 2007년 이후 진급자부터는 삼정도가 아닌 삼정검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저 검을 만드는 인물은 다름아닌 걸그룹 카라 멤버인 한승연의 아버지 되시는 한종칠씨.

그 외에 실전용 도검임에도 하사받은 보검을 삼인보검이라 부르기도 한다.

5 대중매체 속의 사인검

주술적인 면모 때문에 각종 매체에서도 등장한다.

다만, 용의 힘이 깃든 사진검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유물이 적어서 덜 알려진 감도 있고, 왕을 상징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의미가 왜곡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아무나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이라는 약점도 있다. 네마리의 용을 칼에 담은 먼치킨 아이템을 요괴나 시정잡배가 쓰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주술적인 의미를 보면 사인검도 충분한 성검이라서, 사진검을 굳이 등장시킬만한 이유가 없기도 하다. 최고의 장인이 평생에 단 한번 특정한 시간에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수백년 동안은 묵힌 것이니...

웹툰 신과함께 에서는 저승차사들이 쓰는 무기로 등장한다. 다른 웹툰인 그린보이의 그림작가를 하고 있는 임진국 작가가 베스트 도전만화 코너에서 연재하였던 '설뫼뎐'에서는 구미호 사냥꾼들중 리더가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외 다른 매체에서의 활약은 추가바람.

5.1 네이버 웹툰 신과함께

주호민의 <신과함께>에서는 사인검이 번개 속성의 마법검인 것으로 해석된다. 유성연 악귀를 잡을 때 강림도령이 상술한 "(전략) 번개가 몰아친다.' 주문을 외며 번개를 날린 적이 있고, 이승편에서 동현의 집을 파괴하려는 포크레인에게 벼락을 내릴 때도 이 사인검을 사용한다. 또한 작중에서 사인검의 공격은 번개가 됐든 물리공격이 됐든 영체에게는 아주 큰 타격을 입히는 모양. 저승편에선 사인검을 제대로 쓴 해원맥에 의해 유성연 악귀의 껍질이 허무하게 벗겨졌고, 이승편에서는 홍역귀를 쫓기 위해 해원맥이 측에게 사인검을 넘겨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 측은 사인검의 손잡이를 잡는 것만으로 손에서 김을 내며 고통스러워한다. 저승차사들은 사인검을 어떻게 휴대할 수 있는지는 작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또 앞서 얘기한 포크레인 낙뢰 장면에서는 포크레인을 힘으로 막던 철융이 (이미 장독을 너무 오래 비운 탓에 약해져 있기는 했었지만) 그대로 소멸되기까지 한다.

만들 때도 골 때렸지만, 쓸 때도 골 때린 병기로 나와서, 역시 인년 인월 인일 인시 가운데서 하나라도 사용하는 시기가 들어맞지 않으면 부엌칼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에 한번씩 오는 인시가 새벽 3시에서 5시의 동트기 전이라서 일반인들은 써먹기 골룸하지만 어차피 밤에 다니는 저승 차사들입장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제약이라고 하겠다. 아니 저승사자들한테는 그 때가 밀린 일도 다 끝내고 돌아가야 할 시간일테니 저승사자들 입장에선 이게 제한 취급도 안 될지도.

5.2 네이버 웹툰 오성X한음

말단관리인 오성과 한음이 선조의 밀명을 수행하는동안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하사받았다. 밀명인만큼 숨기기좋게 단검 2자루를 받아, 각자 하나씩 소지하고 있다. 대부분 이거만 보면 저자세를 취하지만 한 사람만은 이항복이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많았던지라 "그걸 이 칼 한자루로 믿으라는 건가?"라며 오히려 옥에 가뒀다.

5.3 디아블로 3

인검
unique_sword_1h_113_x1_demonhunter_male.png1901.2-2274.3
초당 공격력
무기 공격력 (178–185)~(416–431)
초당 공격 횟수 1.40
태고에 시안사이의 왕들이 지니고 다니던 이 검은, 네 호랑이 혼령의 날래고 위험한 힘을 이용한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왕은 오직 이 검만으로, 불운한 희생자들에게서 악마를 천 마리나 "몰아냈다고" 합니다.
  • 주요 속성
    • 피해 +6–10%
  • 보조 속성
    • 정예 괴물 무리 처치 후 15초 동안 기술 재사용 대기시간 8–10초 감소
  • 3가지 마법 속성 중 1개(가변)
    • 민첩 +626–750
    • 힘 +626–750
    • 지능 +626–750
  • 무작위 속성 +3가지
'인검'이란 이름으로 2.2 패치 부터 등장. 전설 도검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정예 괴물을 처치시 일정시간 동안 쿨타임 감소 능력을 주는 독특한 고유 능력을 지니고 있다.
  1. 현대의 총에 장착하는 대검(Bayonet)을 생각해보자. 조선시대의 환도도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