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루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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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도 그렇고 천재들은 다 이런 모양이다. 그런 사진들을 가져오니 그렇지. 근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표지 사진이긴 하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 1887년 1월 28일~1982년 12월 20일) 폴란드에서 태어난 미국의 피아니스트

네임벨류로 따지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와 함께 최고로 꼽힌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폭넓은 레퍼토리, 화려한 테크닉, 곡에 대한 깊은 이해 모두 갖췄다고 평가된다.

연주영상: 거의 환갑 때의 연주이다.

당시 러시아 치하에 있던[1] 폴란드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독일로 유학하여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빌헬름 켐프, 겐리히 네이가우스 등을 가르친 하인리히 바르트에게 요제프 요아힘의 도움을 받아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2] 그러나 바르트와 루빈스타인은 기질 자체가 달랐고 바르트가 좋은 뜻으로 유태인인 루빈스타인을 입양하여 자기가 가르치는 베를린의 학교의 교수직을 주겠다고 제의하자 바르트와 대단히 좋지 않게 결별하고 어찌어찌 돈을 모아 파리로 맨땅에 헤딩을 하러 간다. 거기서 좌충우돌에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쳐 가며 성장, 젊은 시절부터 비르투오소로 이름을 높였다. 폴란드 출신 답게 평생에 걸쳐 쇼팽 을 연주 하였으며 연주의 수준 역시 매우 높다. 쇼팽 외에 고전파에서 부터 근대 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했으며 대부분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또한 루빈스타인 기준으로 '현대' 음악가의 발굴, 홍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브라질의 빌라로보스가 대표적인 예. 그 외에도 시마노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등의 피아노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일단 당시에 활동하던 모든 음악가는 루빈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보통 만년의 연주가들은 테크닉의 감소를 보이는데, 루빈스타인의 경우 애초에 괴물같은 신체 능력으로 밀어 붙이는 타입은 아니었고, 자신의 기술에 맞지 않는 곡들은 뜯어 고치거나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모음곡이 대표적) 아예 연주하지 않았기에[3] 나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테크닉의 감소는 그다지 보이지 않고 음악적 깊이만 더해져 만년의 연주도 좋다. 다만 만년의 스튜디오 녹음들은 라이브나 젊은 시절의 녹음들과 비교해 보면 좀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후세에 길이 남을 녹음에서 틀린 음을 치는 것을 만년에는 극도로 두려워 했다고. 편집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걱정하게 되면 연주할 때 약간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19세기말에 태어난 덕택인지 20세기 출생 피아니스트에 비해 낭만적인 경향의 해석을 보이지만 과하지 않아, 안티가 거의 없다. 파데레프스키, 코르토 등의 연주를 듣다가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꽤나 모던하게 느껴질 정도. 사실 루빈스타인이 젊을 때는 너무 건조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본인의 말로는 쇼팽이 가장 큰 비난을 받았는데 꿋꿋이 연주했다고.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야샤 하이페츠 와 더불어 백만불 트리오를 결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트리오는 오래 가지 못했고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의 음악적, 개인적 불화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그 외에 다른 연주자, 그룹과 많은 실내악 녹음을 남겼는데 퀄리티가 꽤 좋다.

어릴때부터 여자 후리기에 도가 텄다고 알려졌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다가, 1932년에 22세 연하의 아니엘라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4]도둑놈 그 중 아들 존은 배우로 나름 커리어를 쌓았는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미드 프렌즈 마지막 시즌 마지막 화에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 궁금하면 찾아 보자. 아버지와 붕어빵이니 찾기 쉽다.

자서전을 두 권 남겼다.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를 다룬 My Young Years, 그 후를 다룬 My Many Years.[5] 전자는 일부 주변 인물을 가명으로 표기하긴 했지만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냈다는 평이 대부분인 반면 후자는 좀 엉성하고 장황하다. 젊은 시절을 다룬 책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사망한 상태라(...)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고, 후자는 루빈스타인의 삶이 안정된 뒤의 이야기이기도 한데다 집필할 때 건강이 악화되고[6] 누가 봐도 임박한 그의 죽음보다 전에 출판하기 위해 제대로 편집을 거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반전은 그의 죽음을 지킨 여성은 아내인 아니엘라가 아니라 수십년 젊은 다른 여성이었다는 점(...) 결혼 후에도 주구장창 바람을 피워 댔는데, 정작 아내만 몰랐다고 한다. 안습.
  1. 당시 폴란드는 무자비하게 찢겨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에게 분할 지배당하고 있었다
  2. 루빈스타인 본인은 꽤나 부정적으로 회고하지만 바르트에게 배운 켐프의 증언에 따르면 루빈스타인의 연주 자세, 음악적 태도 등이 완전히 바르트가 가르치는 그대로였다고.
  3. 그래도 레퍼토리는 미친듯이 방대했다. 뭐, 이 레벨끼리 따지는 거지 루빈스타인도 충분히 괴물이니 그가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은 기량 문제라기보다 취향 문제인 것도 있고.
  4. 아니엘라는 폴란드의 유명 지휘자 에밀 무이나르스키의 딸
  5. 한국어 번역이 존재하는지 추가바람
  6. 시력을 거의 잃어서 많은 부분을 구술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