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폰소 데 알부케르케

Afonso de Albuquerque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1453~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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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군인으로 동양의 시저라 일컬어지는 인물.

리스본 근처의 알한드라에서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십 년 간 군대 경험을 쌓다가 1471년에는 알폰소 5세의 밑에서 장교를 지내면서 모로코의 탕헤르, 아씰라를 정복하였다.

1503년 4월 6일에는 사촌인 프란시스코 데 알부케르케와 함께 인도로 원정을 가서 두알테 파쉐코 페레이라와 니콜라우 코엘류 등과 함께 항해하면서 코친의 왕을 도와 캘리컷의 왕인 자모린을 공격하는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왕에게 쾰른과 함께 코친에서 포르투갈 요새를 구축하고 무역을 확립하는 권한을 받았다가 1504년 7월에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1506년 4월에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동아프리카의 소코트라를 정복하고 수크에 요새를 건설하여 인도양의 홍해에서 교역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1507년 5월에 호르무즈를 점령하고 7월에는 무스카트의 도시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중노동과 기후에 시달려 오랫동안 함대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1508년 1월에 호르무즈를 포기하고 소코트라의 정착하여 연안의 마을들을 습격하고 호르무즈에 반환하고 인도로 향하였다.

1508년 12월에 인도 총독이 되어 인도로 갔지만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에게 체포되었다가 1509년 2월 2일에 알메이다가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캘리컷, 구지라트의 연합 함대를 물리치자 감옥에서 풀려나 총독 자리를 물려받았다.

1509년에는 캘리컷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여 1510년 9월에 고아를 정복하였으며 1511년 6월에 실론, 말라카, 암보이나와 사이암, 수마트라, 자바 등 인도네시아의 많은 섬들을 조공국으로 삼았다.

1512년에 몰루카 제도를 발견하여 유럽에 향료인 정향과 육두구를 직수입하게 하였으며 중국과도 교류하였으며 1513년에 아덴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고 1514년에는 다시 인도 총독에 임명되었으며 1515년에는 홍해의 항해를 관리하기 위해 호르무즈에서 요새인 페이토리아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공국에 대한 통치는 매우 잔혹하였는데 스리랑카를 공격했을 때 부처의 이빨을 보물로 여기고 보관하던 불치사를 습격하여 많은 불교 신도들 앞에서 부처의 이빨을 부쉈으며[1] 이슬람을 정복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성지인 메카를 습격하여 무함마드의 무덤을 파헤쳐서 무슬림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대에 걸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포르투갈 왕실에서 그를 탄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호르무즈에 요새를 건설한 해에 인도 총독을 박탈당하고 고아로 돌아가던 도중 배에서 병사하였다.쌤통이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플레이어의 라이벌로 말라카 해협등의 발견을 놓고 다투게 되며, 1514년부터는 고어의 총독으로 눌러앉아 스폰서가 되어 플레이어를 후원한다. C급 스폰서에 오세아니아, 동아시아쪽으로 넘어가는 스케일이 큰 발견물들은 계약할 수 없지만, 동아프리카, 인도쪽에도 발견물이 널렸고, 선호하는 것 중 자체의 부가가치가 낮은 편이라 계약을 맺고 발견하는 편이 유리한 교역품이 있는지라 포르투갈 국적이라면 정말 유용하다. 여담으로 감식안이 낮아 모조품으로 자주 돈을 뜯어낼 수가 있다.(...)
  1. 다만, 천만 다행히도 이미 스리랑카 왕실이 몰래 석가모니의 이빨을 빼돌리고 돌로 만든 레플리카를 대신 갖다놔서 파괴되었다던 이빨은 현재까지도 무사히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