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

Francisco de Almeida(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
(1450 ~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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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군인.

어려서 군대에 입대하여 1476년에 포르투갈과 아라곤, 카스티야 왕국의 연합군이 싸운 3월 1일에 일어난 토로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그 이외에도 모로코에서 참전하고 1492년에 그라나다 공략전에도 참가하였다.

1505년 마누엘 1세의 명을 받고 인도의 총독으로 임명받고 함대 21척으로 1000명의 선원과 1500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3월 25일에 아프리카 동부로 출발하기 시작하여 1505년 5월에 킬와, 1506년 8월에 몸바사, 잔지바르 등을 점령하였다.

9월 13일에는 안야딥 섬(오늘날의 안제디바)에는 요새를 건설하고 항구도시인 카나노르를 건설하며 10월 31일에 코친에 도달하여 본거지로 삼아 요새를 강화하였으며 1507년 3월에는 모잠비크를 점령하였다.

1508년에 동아프리카, 남아라비아, 인도의 이슬람 세력들이 이집트에게 포르투갈을 견제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자 이집트가 오스만과 손을 잡고 포르투갈을 응징하기 위해 디우에 함대를 집결시키자 아들인 로렌초에게 작은 선박을 주어 정찰을 시켰다.

그러나 아들이 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의 연합 함대를 이끄는 후세인 쿠르디의 공격으로 잡혀서 죽임을 당하자 함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로 후퇴하였으며,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가 후임 총독으로 부임하자 그를 가두었다.

1509년 2월 2일에 디우에서 17척으로 군인 1500여명과 군함 200여척의 병력으로 집결한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캘리컷, 구지라트의 연합 함대를 이끈 쿠르디를 격파하였으며 이 승리로 포르투갈의 인도양 무역을 활성화하였으며 승리한 이 해에 투옥한 알부케르케를 풀어주고 총독 자리를 물려주었다.

1509년 12월에 포르투갈로 귀국하기 위해 출발했지만 1510년 2월에 희망봉에서 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