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된 알바니아 지역의 독립전쟁.
당시 유럽 열강들과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발칸 국가들과 그들의 지배자였던 오스만 제국과의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다.
알바니아는 1479년에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어 주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400여년 지배를 받아왔다. 19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의 약세가 두드러지고, 오스만 제국의 점령지였던 발칸 반도 일대가 독립 및 무장 항쟁들로 이어지면서, 알바니아 또한 뒤늦게 독립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08년 이전까지는 산발적이고 지역적인 규모의 투쟁이 이어졌지만, 1908년부터 전국적으로 규합해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이스마일 케말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이 투쟁은 1908년부터 1912년 7월 독립 선언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실질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통치력을 마비시켰다.
1912년 발칸 전쟁이 발발할 무렵, 세르비아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알바니아를 노리고 있었고, 러시아 제국는 그 배후에서 세르비아를 지원하였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가 아드리아해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알바니아의 독립을 표명하였으며, 독일 제국과 이탈리아가 여기에 동조했다. 결국 1912년 11월, 알바니아 측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이탈리아(삼국동맹)의 지지를 받아 독립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원래 주인인 오스만 제국은 영토의 손실을 막으려고 했지만, 계속된 제1차 발칸전쟁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실질적으로 알바니아를 지키기가 불가능해졌다.
오스만 제국 측의 요청으로 1912년 12월부터 시작된 런던 회의에서,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동맹국들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통치자로 독일의 귀족 빌헬름 비드를 선정하지만, 주변국들과 열강의 복잡한 이해 관계와 맞물려서 회담이 장기화되는 사이, 제1차 발칸 전쟁이 재개되면서 알바니아 문제에 대해서는 명료한 결론을 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뒤, 제2차 발칸 전쟁이 전개되고 있을 무렵인 1913년 7월, 런던에서 주최된 6개국 대사회의에서 열강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 회의의 결과를 토대로, 세르비아는 옛 알바니아 영토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코소보 지역과 지금의 마케도니아를 획득하였으나, 아드리아해 진출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자신의 알바니아 장악을 막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험악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으며, 1, 2차 발칸 전쟁과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의 독립은 80여년이 지난 뒤의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배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