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량

楊諒
(575 ~ 605)

수나라의 인물. 자는 덕장(德章). 수문제의 다섯째 아들.

581년에 한왕에 봉해졌고 592년에 옹주목, 상주국, 우위대장군, 전좌위대장군에 임명되었으며, 598년에 고구려영양왕이 말갈족의 무리 만여 명을 인솔해 요서를 공격하자 2월 4일에 왕세적과 함께 행군원수가 되어 수륙 30만을 거느리고 요동을 공격했다. 그러나 임유관에 나아갔다가 물이 불어나 군량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행병이 나타나자 9월 21일에 철수했으며, 599년에 돌리가한이 장손성을 통해 도람가한이 공격도구를 만들어 대동성을 공격한다고 상주하자 양량이 원수가 되었지만 군영에 나아가지 않았다.

600년에 달두가한이 요새를 침범하자 사만세와 함께 마읍도로 나아가 영무도로 나아간 양광, 양소 등과 함께 공격했다.

양량은 수문제의 총애를 받아 병주총관이 되었으며,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허락되어 율령에 구속받지 않게 되었다. 양용이 참소로 폐출된 것을 보고 불만스러워했으며, 촉왕 양수가 처벌을 받자 스스로 편안하지 못해 은밀히 반란을 일으키기로 한다. 수문제에게 돌궐이 강대해 무기를 수리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상주해 허락을 받았으며, 공역을 일으켜 무기를 수리하면서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좌우의 사인들이 거의 수만 명이었다.

그런데 돌궐에게 패한 일로 그가 거느린 장수 중에 연루되어 제명된 사람이 80여 명이나 되고 그들을 남령 이남에 해당하는 영표를 방어하는 것에 배치되었으며, 양량은 오래된 친구들이라는 이유로 남게 할 것을 주청했지만 번왕이 되어 조정의 명령을 공경해야 한다면서 사사로운 이유로 국가의 헌법을 폐할 수 없다고 해서 거부되었다.

수문제가 죽고 604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양소가 총괄하는 수나라의 군사에 여러 차례 패하면서 진양에서 항복했으며, 이후 제명되어 백성으로 살게 되면서 호적이 파이고 유폐되었다가 605년에 죽임을 당했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고수전쟁편과 양광의 황제 즉위 이후의 행보가 다르다. 고수전쟁에서는 자만심이 강하고, 남탓 잘하며[1] 고집 쎄고 앞뒤 생각 안하는 그냥 개념없큰 인물로 묘사되지만, 수양제 즉위 후에는 나름 개념있고 효심은 깊지만, 여러 부분에서 능력이 딸리는 안타까운 역할로 나온다.[2]
  1. 요하에서 8만 대군이 전멸하자, 이 모든탓을 고경에게 돌리고, 지 잘못은 생각 안하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늙은이들이랑"이라면서 휘하장수들 탓한다.
  2. 단, 능력이 그렇게까지 딸린다고 보기는 힘든것이 양광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태자인 형을 유폐시킨 것을 눈치챘었다. 그렇지만, 하필 상대가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수나라 최강의 먼치킨으로 나오는 양소인지라 양소에게 일방적으로 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