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und Burke
1729년 01월 12일 ~ 1797년 07월 09일
영국의 보수주의자, 고전적 자유주의자, 철학자, 정치인이다. 그는 보수주의를 최초로 창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선량한 이들의 수수방관은 악이 승리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다)
보수주의 아버지로 알려져있지만 정작 당시에 애드먼드 버크를 보수주의자라고 일컫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시 영국 기준으로[1] 진보적인 휘그당 당원이였다.[2][3]
그러나, 버크가 현대에 와서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당시 토리당처럼 반동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기존의 정치 체제와 관습적인 사회적인 전통을 유지하되 잘못된 부분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1 생애
1.1 미국 독립혁명에 찬성하다
버크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 역시 영국인의 후예들이므로 식민지배 또한 영국 헌정 질서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영국 헌정 질서란,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라는 대원칙이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 버크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의 봉기가 영국 헌정 질서의 위반에 대한 항거라고 규정하며 옹호했다.
(주로 사회계약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개인의 자유 때문에 독립혁명을 옹호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버크는 그의 저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그러한 자유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다. 그의 자유관은 중세적 자유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 보수주의 사상
일반적으로 사상사에서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경제에 있어서 기회주의적이란 평을 받는다. 어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근거로 시장의 기능을 불신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정부의 개입이야말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유시장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보수주의 철학의 큰 흐름은 대체로 전자로 이어졌다. 버크는 후자에 속했다.
보수주의자라고 무조건 시장경제의 열정적 옹호자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버크 빼곤 다 자유시장에 있어 기회주의적이었다.
2.1 엘리트주의
그는 엘리트(기득권층)이 있어야 사회가 잘 돌아간다고 주창했다. 그는 이런 엘리트가 사회를 이끌고 지도해야 사회 전반적으로 목표가 생긴다고 했다.
2.2 점진적인 진보
그는 프랑스 대혁명식의 급진적인 개혁이나 진보를 혐오했다, 대신 영국의 의회주의와 같은 점진적인 진보를 원했다.
보수주의의 아버지이지만, 보수도 혐오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기준에서 보수는 수구적 반동적이였기 때문에, 버크같은 점진적 보수는 진보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급진적인 개혁은 결과적으로 사회를 진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란만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영향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라고 여겨진다. 정작 자신은 보수를 혐오했는데 그의 사상은 현대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기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