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케

epoché
고대 그리스철학자 피론피론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용어. 멈춘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보통 멈춘다고 했을 때는 논리의 전개를 멈추라는 의미였다.

이런 식이다.

"이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이야기 하다 보면 저렇게 되고, 그러니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고 눈이 하얀색인데 눈은 물이 얼어서 된 거고 물은 시꺼먼데 그럼 눈도 까만 거 아니냐고"

"고마 해라. 에포케epoché다."
이런 것들이 진절머리가 났던 회의주의자들은 이렇게 그만 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써왔던 것이다. 다른 예로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를 들 수 있다 고만해 이 미친놈아 이것도 훌륭한 에포케다

20세기에 와서 에드문트 후설현상학에서 이걸 차용해와서 현상학적 에포케를 고안해냈는데, 이것도 별로 그 사용법은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대형 병원의 40대 피부과 의사 A가 고기집에 혼자 앉아서 돼지 껍데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보통 이러고 있으면 그런 대형 병원 의사가 뭐하러 돼지 껍데기를 먹고 있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피부과 의사니까 피부를 많이 다뤄 그걸 먹고 싶어졌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아니면 왜 그 나이에 혼자서 고기집까지 와가지고 그러고 있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현상학에서는 그런 외부 요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이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즉 그런 외부 요인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그의 대형 병원 피부과 의사라는 직위를 괄호 안에 넣어두고, 혼자 왔다는 사실도 괄호 안에 넣어둔다. 그러니까 A(피부과 의사, 40대, 혼자 옴). 이렇게 되고, 현상학은 의식의 지향성을 다루기에 그의 지향성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지를 차근차근 검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