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문트 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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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und Husserl (1859. 4. 8 - 1938. 4. 27)

독일철학자. 현상학의 창시자로 불리며, 현대 유럽철학의 시조[1]

1 생애

1859년 합스부르크왕조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태어나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였으며, 이후 1878년 베를린으로 가서 철학, 물리학, 수학, 천문학을 공부한다. 1881년 다시 으로 돌아간 후설은 1882년까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란츠 브렌타노 밑에서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이 때 철학에 심리학적 토대를 세우고자 했던 스승의 영향은 이후 그의 현상학이라는 철학적 탐구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883년 〈편차 계산론에 관한 연구〉(Beiträge zur Theorie der Variationsrechnung)로 박사학위를 받고 계속 스승 밑에서 연구하게 되며, 1887년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Über den Begriff der Zahl. Psychologische Analyse)이라는 논문을 인정받아 교수 허가를 취득한다. 이후 대학에서 강의하던 후설은 1901년, '논리연구 II. 현상학과 인식이론'을 출간하여 현상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개척한다. 하지만 나치 치하에 접어든 독일정부의 반유대주의정책으로 인하여 후설은 1933년에는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게 되고, 1936년에는 벨그라드의 철학 학회로부터 탈퇴할 것을 강요당하는등 나치에 의해 탄압을 당하던중 1938년 사망한다. 1년 후인 1939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벨기에의 루벵대학에서 후설 아르키브가 창설된다. 1950년 부터 후설의 전집이 발간되기 시작하여 2012년 42권까지 출판되었지만 아직 완간되지는 않았다.

2 사상

그의 사상은 당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팽배해있던, 영국미국을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기존의 철학의 연구 대상으로 보았던 인간의 의식체계나 인식론 역시도 심리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철학은 과학 철학의 형태로 발전하거나, 또는 철학과 과학을 분리하는 움직임(분석 철학, 비판 철학 등)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후설은 이러한 실증주의가 참된 의미에서의 객관이 될 수 있는가를 비판하여 새로운 철학을 제창하였다.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빌헬름 분트에 의해 제창된 게슈탈트 심리학은 사람의 심리야말로 모든 과학의 근원이라는 이른바 '심리학주의'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후설은 이러한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결론이 결국은 반박 가능한 논리인 귀납적인 추론에서 나온 것임을 비판하며, 철학은 이러한 과학보다 더 엄밀한 학문으로서 만들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실증주의에서 대상과 실체를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며,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이용하여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상 역시 의식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대상으로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어떠한 물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우리의 의식을 통하여 인식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물체와의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물체에 대해 인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떠한 물체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음은 물론이며, 그 물체의 실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의 지향성'이라 하며, 후설 철학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의식이 어떠한 지향성을 갖는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별'이라는 대상을 바라본다고 할 때, 그것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실체로서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그것에 대한 시나 노래를 짓는 등의 예술적인 대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그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의식이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이는 실증주의에서 실체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러한 의식의 가치판단과 같은 주관성을 부정한 것은 명백한 오류임을 보여준다고 후설은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실증주의가 철학의 목을 잘랐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설은 인간의 의식에서 드러나는 그 자체로의 '현상'을 서술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철학적 경향을 '현상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3 영향

그는 이후에 등장한 현상학실존철학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장폴 사르트르, 마르틴 하이데거, 모리스 메를로퐁티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하이데거후설의 실제 직계 제자이기도 하였는데[2], 학내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 운동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3]
  1. 현대철학에서 영미철학은 분석철학이 유럽철학은 현상학이 주된 사조이다.
  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현상학'을 공동집필 하였고, 후설이 은퇴할 때 후설의 추천으로 하이데거가 후설의 후임교수가 되었다.
  3. 나중에 히틀러의 학술원 원장을 했다는 점 및 1941년 그의 저서에서 후설에게 헌정한다는 헌정사를 삭제한 점에서 의혹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