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lisabeth Philippine Marie Hélène de France
1764년 5월 3일 ~ 1794년 5월 10일
통칭 마담 엘리자베트(Madame Élisabeth). 프랑스의 왕족으로, 루이 페르디낭 왕세자와 왕세자비 마리 조제프 드 삭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오빠인 루이 16세가 즉위함에 따라 왕의 여동생 신분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올케 언니가 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었고, 3살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 후 마루산 후작 마리 루이즈가 그녀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오빠인 루이 16세와 유독 사이가 좋아 성장한 후에도 당시 왕족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결혼을 하지 않고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충성심이 깊고 온화한 성품으로, 오빠인 루이 16세뿐만 아니라 올케인 마리 앙투아네트와도 친밀한 사이였으며, 조카들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좋은 고모였다.
루이 16세의 남동생들인 루이 18세와 샤를 10세는 혁명 당시 국외로 망명하였지만, 여동생 마담 엘리자베트만은 끝까지 국왕 일가와 운명을 함께 했다. 1791년 바렌느 사건에서 국왕 일가와 함께 도주를 하다가 발각되어 끌려온 후 국왕 일가와 함께 탕플 탑에 감금되었다.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되기 전날 마담 엘리자베트에게 편지를 썼으나, 이 편지는 결국 전해지지 못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편지를 통해 마담 엘리자베트에게 자신들(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을 위해 복수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며,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마담 엘리자베트와 아이들만은 살아남고 아이들이 나중에 고모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지만 가족들 중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만 살아남음에 따라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후에도 마담 엘리자베트는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와 함께 탕플 탑에 계속 감금 중이었으나[1], 1794년 5월 10일 결국 마담 엘리자베트도 30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된다. 그녀는 국외로 망명을 시도하고 국왕 일가의 도주를 도운 죄목 이외에 조카 루이 17세와 근친상간을 하였다는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었고, 결국 그 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었다. 한 나라의 공주가 조카인 왕세자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죄목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는 데다가 평소 신앙심과 충성심이 깊었던 마담 엘리자베트가 그럴 짓을 할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기에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사형 집행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마담 엘리자베트는 처형 당일 처형장으로 가기 전 함께 사형될 사형수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으며, 단두대에서 마담 엘리자베트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숄이 흘러내렸고 그녀는 사형 집행인에게 숄을 다시 걸쳐 달라고 했으나 그 순간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져 유언이 되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다만 어디까지나 같은 탑에 감금되어 있었을 뿐이고, 마담 엘리자베트와 마리 테레즈는 서로를 만나지 못했으며 마담 엘리자베트가 죽은 후에도 마리 테레즈는 고모의 죽음 소식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