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1세

역대 러시아 제국 차르
표트르 1세예카테리나 1세표트르 2세

Екатерина I Алексеевна
예카테리나 1세 알렉세예브나
1684년 4월 15일 ~ 1727년 5월 17일
재위: 1725년~1727년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5대 차르이자 첫 여제다. 표트르 1세의 황후이기도 하다. 본명은 마르타 헬레나 스코프론스카로 리투아니아 출신의 평범한 농민 또는 하급 공무원[1]의 자식이었던 그녀는 1689년 부모가 역병으로 사망하자 라트비아의 유복한 가정의 하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여제 즉위 이후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다 살이 쪄서 전혀 그래보이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검은 머리가 아름다웠다고. 그녀의 고용주였던 요한 글뤼크(Johann Glück)가 일기에 자신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17세의 나이에 스웨덴 군인과 약혼했으나 곧 스웨덴군이 표트르 1세에게 패배해 철수하면서 이는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고용주인 요한 글뤼크가 러시아측의 번역가로 일하게 되면서 함께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이 와중에 러시아 장교들과 관계를 맺은 적도 있었던 듯 하다.

모스크바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귀족들의 관심을 샀으며 곧 표트르 1세의 친구인 멘시코프 공작에게 팔려가 그의 정부가 되었다.하지만 멘시코프 공작은 결혼하게 되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했고, 1703년에 멘시코프 공작의 저택을 방문한 표트르 1세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여 그에게 헌납되었다. 1704년부터 표트르 1세의 정부가 되었다. 원래 표트르 1세의 황후였던 에우독시아 로푸키나는 이미 1698년 강제로 이혼당하고 수도원에 유폐되어 있던 처지였던지라, 마르타는 표트르 1세의 여러 정부들 중에서 유독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1712년 정식적으로 황후로 책봉되어 예카테리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루머에 의하면 황후가 되기 전에 바람을 피다가 걸려서 상대남이 효수되었다고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다 그렇듯 신빙성은 낮다.

표트르 1세의 전처 소생인 황태자 알렉세이가 1718년 표트르 1세 정책에 대한 반역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고, 1725년 표트르 1세가 죽게 되자 황태손인 표트르(훗날 표트르 2세로 즉위한다.)를 제치고 표트르 1세의 측근들과 근위대가 힘을 합쳐 그녀를 제위에 올리게 된다. 그녀는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문맹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은 귀족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1세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에 행사에 참가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화근이 되어 재위 2년 만에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그녀의 둘째 딸 엘리자베타는 옐리자베타 여제로 즉위하게 되고, 나중에 맏딸 안나의 아들이 표트르 3세로 즉위하게 된다.

막시밀리언 셀이 주연한 미국-이태리- 소련 합작의 미니시리즈 피터 대제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표트르를 마음에 둔 지고지순의 순애보 처녀로 묘사되고 있다. 표트르가 스웨덴 군에게 털린후 고뇌할때 사랑을 고백하고 지긋히 안아주는 건 명장면. 마지막에는 역사대로 가장 믿을만한 가족으로 인정되어 제위에 오른다. 더빙성우는 송도영.
  1. 그녀의 부모의 신분은 제대로 알려 진 게 없지만, 매우 한미한 신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