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타카

織田信孝
1558 ~ 1583

오다 노부나가의 삼남. 아명은 산시치마루(三七丸)인데 이유는 생일이 3월 7일이라서(...)[1]

호족 간베 씨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간베 노부타카라고도 부른다. 간베 씨는 이세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 지역의 여러가지 일에 관여하였다. 1577년의 사이카슈 공격, 1578년의 아라키 무라시게 공격전에 참여하여 전공을 쌓았다. 행정관으로서의 재능도 나타나서, 여러 교섭활동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1582년에는 오다의 시고쿠 정벌 예비 사령관에 임명되는 등 노부나가의 아들이자 인재로 탄탄대로를 밟고 있었으나.....

같은 해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하자 상황이 급변한다. 노부타카 군은 이탈자가 속출하여 아케치 미츠히데의 토벌을 위한 독자적 활동도 못하였다.[2] 결국 주고쿠에서 급전하여 돌아온 하시바 히데요시와 합류하고 나서야 활동할 수 있게되었고, 명목상 총사령으로 야마자키 전투를 이끌었다.

야마자키 전투의 총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키요스 회의에서 오다가문의 후계자는 조카인 산보시로 결정되었다. 노부타카는 산보시의 후견역으로서 형 노부타다의 영지였던 미노 국을 받아, 기후 성의 성주가 되었다. 이로 인해 노부타카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 후, 히데요시와 대립한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접근해, 가쓰이에와 고모인 오이치와의 혼의를 중개했다. 이렇게 해 시바타 카츠이에, 타키가와 카즈마스 등과 결탁하여, 같은 년 12월, 산보시를 옹립해 히데요시에 대해서 거병했다. 그러나 이 히데요시의 기동전에 의해서 항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인질을 내주고 산보시를 히데요시에게 인도하며 허무하게 끝났다(...)

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가 일어나자, 노부타카는 다시 거병했다. 그러나 형인 노부카츠에 의해 같은 년 4월에 거성인 기후성을 포위당했고, 의지했던 가츠이에도 기타노쇼 성에서 자결하자, 히데요시에게 항복했다.

노부타카는 겐페이 시대에 미나모토노 요시토모[3]가 암살당한 장소로 보내져 자결했다. 사세구는 "예로부터 종이 주인을 치는 곳이구나. 천벌을 기다려라 하시바 치쿠젠"이지만, 창작설도 있다.

노부나가의 자식들 중 그와 가장 닮았었다고 한다.

1 창작물에서

1.1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Attachment/오다 노부타카/Example.png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폐급. 아버지에겐 한참 못미친다...

1.2 바사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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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간베 노부타카'라는 이름으로 등장. 중간보스들 중 1명으로, 공중요새를 이끌고 나온다.
  1. 노부나가는 다른 아들들의 아명도 이런 식으로 지었는데 오다 노부타다 항목 참조.
  2. 미츠히데의 사위이자 사촌형제인 츠다 노부스미를 살해하기는 했는데.... 이 인물은 아케치에게 가담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3.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형제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