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카즈요시

太田一吉
(? ~ 1617)

전국시대의 다이묘.

본래 가문은 스가와라(菅原)씨로 시바(斯波)씨의 가신이지만 아버지가 오다 가문을 섬겨 니와 나가히데 휘하에서 미노슈 중 한 사람으로 지내다가 오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으며, 1586년의 규슈 정벌 때 히고 방면군의 제7군의 일원으로 종군했다. 도요토미가 조선을 공격해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나고야에서 예비대 중에서 제11군의 일원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1594년에 나츠카 마사이에의 분고에 영지를 받자 그의 요청으로 황폐화된 농촌 재건에 협력했다.

울산성의 축성을 감독했고 1597년에 정유재란에 군감으로 참전했으며, 1600년에 윌리엄 애덤스의 리프테 호가 일본에 도달하자 이에 대해 흥미를 보여 애덤스에게 융숭한 대접을 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때 조카 오타 마사나리에게 동군, 아들 오타 카즈나리 등을 서군에 참여시키면서 자신은 병을 핑계로 우스키 성에서 농성했다. 동군 측에서는 서군 측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겨 구로다 조스이가 공격하자 사가노세키 전투에서 다와라 치카가타와 싸워 큰 피해를 입히고 항복했으며, 영지를 몰수당해 교토에 은거하다가 1617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