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모리츠나

渡辺守綱(わたなべ もりつな)
(1542 ~ 1620.05.11)

목차

생애

전국시대의 후기와 에도 막부 초기의 무장이자 도쿠가와 16신장 중 한 사람으로 통칭은 한조(半蔵)로 와타나베 한조 혹은 의 한조이며, 핫토리 한조대구를 이루는 별명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충실한 심복으로 와타나베 타카츠나의 아들이다.

야전 지휘관보다는 일선에서 싸우는 부사관 타입에 가까운 인물로, 봉록은 고작 수천 석이었으나 항상 이에야스의 옆을 시위하는 뛰어난 무용의 사나이로 1562년에 미카와 국의 하치만 전투에서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장수인 이타쿠라 시게사다에게 패했을 때 후미에서 분전하여 창의 한조라 불리게 된다.

1563년에 일어난 미카와 잇코잇키가 일어나자 잇코슈의 문도였기 때문에 잇코잇키에게 가담하였다가 이에야스가 위기에 빠지자 '불적이 되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주군을 구하고 떨어지겠다' 선언하며 창을 마구 던지고 휘두르고 싸워서 이에야스를 구해냈다고 하지만 잇코잇키가 이에야스가 격파된 이후에 용서받아 이에야스에게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에 1570년의 아네가와 전투에서 적장에게 돌격하여 제일 먼저 공을 세웠으며, 1573년의 미카타가하라 전투,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 1584년의 코마키 나카쿠테 전투 등에서 선봉을 맡았는데,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야마모토 간조를 격파하였다. 1590년에 이에야스가 간토(관동)으로 이봉되면서 무사시 국 히키군 3000석을 받았으며, 1600년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참전하면서 다년 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1000석이 가증되면서 기마 30명 분의 6000석을 받는 것과 함께 아시가루 100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613년에는 이에야스로부터 오와리 번의 번주로 임명받은 도쿠가와 요시나오의 츠케가로가 되었으며, 무사시 국 4000석이 증가되는 것과 동시에 오와리 국의 이와사쿠 오오아자이와사쿠의 5000석과 미카와 국의 테라베의 5000석으로 총 1만 4천 석을 받아 테라베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1615년 오사카 전투에는 요시나오의 출진을 보좌하였으며, 1616년 이에야스가 사망하자 오와리로 간 요시나오를 직접 보좌했다가 이후 사망한다.

이에야스와는 '아' 하면 '어' 하는 정도의 사이로 이에야스가 야밤에 급히 가마를 타고 외출하려고 할 때 이에야스보다 한발 앞서서 가마꾼으로 변장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앞쪽의 가마꾼이 뭔가 듬직해 보여서 이에야스가 자네는 이름이 뭔가 묻자 한조올시다 대답했더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있으며, 얼굴에 큼지막한 상처가 2개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