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충

王世充
(?~ 621)

중국 수나라 말기의 군웅. 자는 행만(行滿).

본래는 서역에서 사는 호족으로 본래 성씨는 지(支)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왕씨에게 개가한 것을 따라가면서 왕씨가 되었다.

속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언변이 있었고 서전을 섭렵하고 병법, 율령에 정통했으며, 수양제가 자주 강도에 행차하자 수양제의 안색을 살피면서 아첨을 하거나 돌을 조각하거나 장식하고 진귀하는 물건을 바치자 총애를 얻었다.

처음에 좌익위가 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강도군승이 되었으며, 613년에 회남의 군사 수만 명을 징발해 유원진을 공격해 장강을 건너 싸움에서 모두 승리해 토벌했으며, 항복한 사람들을 불러 불상 앞에서 향을 피워 맹세하면서 죽이지 않기로 했다. 흩어진 사람들이 바다로 들어와 도적이 되려고 하자 황정간에서 3만여 명을 생매장했으며, 왕세충이 장수로서의 재주가 있어 더욱 수양제의 총애를 받았다.

614년에는 맹양이 반란을 일으켜 장백산에서부터 여러 군을 공격해 10여 만의 무리를 이루고 도량궁을 점거하자 왕세충은 맹양을 막았는데, 다섯 개의 목적을 만들어 험하고 중요한 것을 막으면서 약하게 보이도록 했다. 백성들이 보루를 구축해 견고하게 지켜 들판에 노략질 할 것이 없어서 맹양의 무리들이 굶게 되었는데, 이들은 군사를 적게 남겨두어 목책을 포위하고 사람을 나누어 남방에서 노략질했다.

왕세충은 이들의 해이함을 살피다가 이들을 격파해 1만여 명을 죽였으며, 617년에는 강도통수를 지내면서 가을 7월에 이밀을 토벌하기 위해 장강, 회수에 있는 병사들을 인솔했다. 위제, 왕변, 맹선의, 독고무도, 유장공, 방옥 등과 무리를 합해 이밀을 공격했으며, 618년에 수양제가 우문화급에게 살해당하자 낙양에 있던 월왕 양통을 옹립하여 황제로 추대했고 여러 차례 이밀의 군사와 싸워 끝내 격파했다.

619년에는 월왕 양통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연호를 개명(開明), 국호를 정(鄭)이라고 했으며, 620년에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패하고 투항자들이 늘어나자 두건덕에게 지원을 요청해 당나라와 싸웠다. 621년 5월에 두건덕이 당나라에게 패해 생포되자 당나라에 항복했으며, 장안으로 이송되었다가 622년에 독고수덕에게 암살당했다.

야사에 의하면, 15만의 장정들로 구성된 이밀의 군대를 7만의 노병들로 회전에서 개박살내고서는 이밀의 본진까지 가서는 이밀아! 목을 내놓거라!라고 했다 카더라. 근데 정사에는 저런 공적을 세운 기록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