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국내 바둑 기전의 하나.
한국에서 2번째로 오래된 기전, 주최사는 중앙일보로 그 시작은 1966년부터 시작되었다. 영원한 국수인 조훈현 九단이 국수전에서 명성을 떨쳐 국수라 불리웠던 것처럼 이 대회에서는 이창호 九단이 13연속으로 왕위 타이틀을 지켜내면서(1995-2007) 유명해진 대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 초반에 이창호의 국내 전 타이틀 석권을 저지한 것은 왕위 타이틀을 틀어쥐고 놓지 않았던 유창혁 九단의 공이 가장 크기도 했다.
그러나 주최사의 재정적인 문제[1]로 2007년 41번기를 마지막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2 상금 규모
2010년 기준으로 총상금 한화 3억원, 우승자에게는 4000만원, 준우승자에게는 1/2수준의 상금이 돌아간다.
3 대회방식
초기 대회는 토너먼트로 왕위를 정하고 차회부터는 국수전과 마찬가지로 도전기 방식을 취한다. 때문에 전년도 왕위가 도전자에게 1승도 거두지 못할 경우, 이 역시 전패준의 조건을 충족하게 된다. 결승전은 7전 4선승제와 5전 3선승제를 채택하였으며 마지막 대회에서는 5전 3선승제를 채택했다.
4 전패준의 역사
국수전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전패 준우승이 나온 경우가 있다. 단, 왕위 타이틀을 얻었던 기사가 오직 6명이라는 점과 특히 이창호 九단의 13연속 왕위전 방어라는 기록 때문에 국수전보다는 수가 상당히 적다. 이 부분 최다타이틀 보유자는 조훈현 九단의 맞수로 칭해졌던 서봉수 九단이다.
년도 | 전패준 | |
1976 | 서봉수 | |
1978 | 서봉수 | |
[2] |
5 대회 연혁
아래의 표는 우승연혁과 우승한 기사의 당시 단수를 적는다.
년도 | 왕위 | 단수 |
1966 | 김 인 | 五단 |
1967 | 김 인 | 六단 |
1968 | 김 인 | 六단 |
1969 | 김 인 | 七단 |
1970 | 김 인 | 七단 |
1971 | 김 인 | 八단 |
1972 | 김 인 | 八단 |
1973 | 하찬석 | 五단 |
1974 | 김 인 | 八단 |
1975 | 서봉수 | 五단 |
1976 | 조훈현 | 六단 |
1977 | 조훈현 | 七단 |
1978 | 조훈현 | 七단 |
1979 | 조훈현 | 七단 |
1980 | 서봉수 | 七단 |
1981 | 조훈현 | 八단 |
1982 | 조훈현 | 九단 |
1983 | 조훈현 | 九단 |
1984 | 조훈현 | 九단 |
1985 | 조훈현 | 九단 |
1986 | 조훈현 | 九단 |
1987 | 조훈현 | 九단 |
1988 | 조훈현 | 九단 |
1989 | 조훈현 | 九단 |
1990 | 이창호 | 四단 |
1991 | 유창혁 | 五단 |
1992 | 유창혁 | 六단 |
1993 | 유창혁 | 六단 |
1994 | 유창혁 | 六단 |
1995 | 이창호 | 九단 |
1996 | 이창호 | 九단 |
1997 | 이창호 | 九단 |
1999 | 이창호 | 九단 |
2000 | 이창호 | 九단 |
2001 | 이창호 | 九단 |
2002 | 이창호 | 九단 |
2003 | 이창호 | 九단 |
2004 | 이창호 | 九단 |
2005 | 이창호 | 九단 |
2006 | 이창호 | 九단 |
2007 | 이창호 | 九단 |
6 역대 우승자
아래는 역대 왕위 칭호를 가졌던 기사들이며, 총 6명의 기사가 이 영광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기록순서는 최초 타이틀을 딴 번기의 오름차순으로 정렬함을 기준으로 한다.
왕위 | 통산우승 |
김인 | 8회 |
하찬석 | 1회 |
서봉수 | 2회 |
조훈현 | 12회 |
이창호 | 14회 |
유창혁 | 4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