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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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지 십층 석탑(유리 보호막을 씌우기 이전 모습) |
1 개요
圓覺寺址十層石塔. 조선 세조 13년, 1467년에 세조의 왕명으로 원각사가 지어질 때 함께 건조된 십층석탑. 현재 탑골공원에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호이다.
2 내용
높이는 12m이고 전체를 대리석으로 건조하였으며, 형태가 기존 석탑들과는 달리 매우 특수하고, 의장(意匠)이 풍부하여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례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최우수작이라 할 수 있다.
몇 십 년 전, 고려 말기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용된 석재가 대리석으로 동일하며 똑같이 높이가 낮고 3-4층단을 가진 기존의 탑과는 달리 높고 층이 매우 높게 만들어졌다.
상륜부는 현재 알 길이 없으며 산성비때문에 유리 보호막으로 보관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보물로 지정되어 아직까지 한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우 수려하면서도 기교적인 그 면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에 꼽히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국보 제2호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