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迪
생몰년도 미상
광릉 사람으로 빈한한 집안의 출신이며, 헌제 초년에 장굉과 장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면서 일으킨 서주 대학살로 인해 강동으로 피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일어난 서주 대학살은 동탁을 공격하기 위한 18로 제후가 결성되었지만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한 후에 제후들이 목표를 잃고 친원소파와 친원술파로 나뉘어져 싸우게 되었으며, 이후 친원소파에 해당하는 조조와 친원술파에 해당하는 도겸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전쟁 상황은 도겸이 2차례로 조조를 공격한 후에 조조가 도겸을 2차례 공격하면서 학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장강을 건넌 원적이 강동에서 지낸 후에는 벼슬을 지낸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진융, 복양일, 장찬 등과 함께 지향하는 것이 있어 육모를 찾아가서 교유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육모가 적은 물건이라도 나누어 주고 동고동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