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華存
(252 ~ 334)
어려서부터 도를 좋아하면서 성격이 조용하고 공손했으며, 노자, 장자를 즐겨 읽고 삼전[1], 오경[2], 제자백가의 저작 등도 두루 읽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신선을 우러러보면서 도를 탐구해 날아오르기를 구했다.
자주 참깨가루, 복령환을 복용하고 토납술을 하면서 섬생을 해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렸으며, 친척들이 왕래해도 전혀 나오지 않았고 늘 따로 한적한 곳에 지내려 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275년에 유문에게 억지로 시집을 가 유박, 유하 등을 낳았으며, 그러면서도 정신을 수련하기를 원했다.
아들이 설 수 있게 되자 방을 격리시켜 따로 지내면서 재계했으며, 3개월이 지나자 여러 신선들이 나타나 도에 관한 책을 전수했고 이후에도 여러 신선들이 위화존에게 강림했지만 그의 남편인 유문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 유문이 죽은 후에는 천하에 기근이 일어나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진선으로부터 중원에서 난이 일어난다는 징조를 받았으므로 두 아들과 함께 강을 건넜다.
훗날에는 강남에서 노닐다가 무주의 병산에 정실을 짓고 임여수 서쪽에는 단을 설치했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는 황폐해져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도교에서는 모산파의 개조로 여겨지고 있다.
관련 사료
- 태평광기
- 집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