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양

劉陽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왕랑의 가전에 따르면 왕랑이 젊을 때 교제가 있었던 인물로 패국의 유명한 선비였는데, 조조의 자질을 알아보고 조정에 큰 위협이 될 거라 여겼다. 조조를 적대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하며,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조조가 삼보의 난에서 헌제를 구출했다가 수도를 허도를 옮기면서 헌제를 옹립해 권력을 잡자 유양이 이미 죽었음에도 그의 아들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고 하며, 조조의 수색 작업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유양의 아들은 도망가려고 했지만 많은 친지나 친구들 중에는 누구 하나 유양의 아들을 숨겨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젊은 시절에 유양과 친분이 있던 왕랑이 자신의 집에 숨겨주면서 조조를 찾아가 인정에 호소했다고 하며, 오랜 기간이 지나자 조조는 유양에 대한 마음을 풀어 유양의 아들은 무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