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의 난

三輔亂

1 개요

흥평연간에 있던 이각, 곽사가 싸우고 헌제가 탈출하느라 그 일대가 막장이 된 헬게이트. 당시 후한의 수도권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삼보, 즉 경조윤(京兆尹), 우부풍(右扶風), 좌풍익(左馮翊) 일대가 초토화되면서 여기서 살던 30만 가구에 이르는 인구가 단 2년 사이에 전멸해 버렸다.

2 종합적인 사건의 흐름

2.1 이각, 곽사의 집권

2.1.1 첫 번째 학살

처참한 대형 참사의 서막을 활짝 열어재낀 첫 번째 학살은 192년 이각과 곽사가 여포, 왕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을 때 일어난다. 공격을 버티지 못한 여포가 달아나고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점령할 때 노소를 불구하고 약탈하여 모두 죽이니 태상 충불

나라의 대신이 되어 폭력을 금지시키고 모욕을 막지 못하여 번뜩이는 칼날이 궁궐로 향하도록 하였으니 달아난들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고 외치다가 죽었고, 태복 노욱, 대홍려 주환, 성문교위 최열, 월기교위 왕기가 죽고 관리와 백성 만명이 죽어 거리에 시체가 널려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얼마 안 있어 7일에는 왕윤과 송익, 왕굉도 함께 잡아 죽인다. 사손서는 이때 동탁을 죽이고도 모든 공을 왕윤한테 돌려 일단은 죽지 않는다. 아무리 후한 말기에 관직이 난발했다고는 하지만 학살 한 번에 저정도로 고위 관직에 있는 인물들이 싹 쓸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의 전조에 불과했다.

2.1.2 마등, 한수와의 대결

동탁이 아직 살아 있을적, 관동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해 동탁은 마등한수를 불렀다. 그런데 이들이 준비를 마치고 도착했을때는 동탁이 왕윤과 여포에게 살해당하고, 왕윤과 여포가 이각과 곽사에게 축출당한 뒤였다. 이각과 곽사는 일단 한수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양주로 돌아가게 하고, 마등을 정서장군으로 삼아 미에 주둔시켰다.

194년, 마등이 이각과 곽사에게 군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데 때마침 시중 마우, 간의대부 충소, 좌중랑장 유범[1] 등이 그를 부추기니 마등은 장안을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한수, 유언과 연합을 해 장편관으로 향하였으나 계획이 들통나 조정내의 협력자들은 모두 목이 날라가고[2] 중재하려고 온 한수도 힘을 합쳐 이각 곽사에게 대항하나 곽사와 번조의 군대에 패배한다. 그리고 이때 번조는 다 붙잡은 한수를 놓아주는데 번조를 따르던 이각의 조카 이리가 이 일을 이각에게 말했다. 이각은 일단은 번조의 세력이 강하기에 놔뒀고, 8월에 풍익으로 쳐들어온 강족을 곽사는 번조와 함께 격파한다. 그리고나서 195년 2월 이각과 곽사는 번조를 회의장으로 유인해 살해했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장제가 알아서 장안을 나가 홍농에 주둔하게 돼 이각과 곽사가 사이좋게 정권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2.1.3 그 동안 백성들은?

문제는 위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날 동안 이각과 곽사는 꾸준히 약탈을 행해왔고, 삼보 지역에는 194년 4월부터 7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 큰 가뭄이 들어 곡식 1곡의 가격은 50만 전, 콩과 보리 1곡의 가격은 20만 전 까지 오르니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어 백골이 길거리에 쌓이게 되었다.

황제는 후문을 시켜 태창의 곡식을 풀어 구휼하려고 하나 후문은 이 와중에도 삥땅을 쳐서 백성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황제가 직접 확인해보고 그에게 벌을 내리기도 하였고,[3] 거기에 황제가 내리는 물건들이나 대신들이 푸는 물건들은 이각이 인마이포켓.[4]

조정에 누군가가 구휼을 실시 -> 다른 누군가는 그걸 빼돌림, 무한반복. 이런 미칠 듯한 조정의 빙빙 도는 삽질에 백성들의 삶은 더더욱 악화되어 그야말로 죽지 않아서 살아간다고 할 정도로 약 2년 만에 삼보의 인구는 괴멸되었고 이 시기를 좁은 의미로 삼보의 난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이 와중에 일식이 일어나고 지진이 발생하며 아무 이유도 없이 멀쩡한 건물이 무너지고 혜성이 나타나는 등 망국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2 이각, 곽사의 내분

2.2.1 계기

195년 2월, 번조를 죽인 후 아주 잠시 동안 이각과 곽사는 서로 술자리를 열어 즐기며 서로를 자기 집에 재우기도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으나 곽사의 처가 이각이 곽사에게 비첩을 줄 것을 두려워해 이 둘을 멀어지게 할 계획을 세운다.

한 번은 곽사가 이각이 준 음식을 가져오니 곽사의 처는 그것을 받은 뒤 자신이 미리 준비한 약을 빼내어 마술? 곽사에게 보여준다. 속아넘어간 곽사는 이각에 대해 의심을 품다가 큰 경계심을 가지게 되어 급기야 이각이 연 연회에 가서 술에 취하자 똥물을 먹고 토하여 술을 깨고자 했다. 당연히 이각 또한 이런 곽사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마침내 내분이 시작되었다.

2.2.2 이각의 황제 선점

한번 싸우기로 결심하자 곽사는 먼저 황제를 선점하고자 하였으나 이 일이 이각에게 발각되어 3월 25일에 이각은 먼저 조카 이섬을 시켜 수레 3대를 끌고와 양표의 반대를 무시하고 천자에게 한 대, 복씨에게 한 대, 좌령과 가후에게 한 대를 주어 북오로 끌고 온다. 그 뒤 황제 일가를 자신의 영에 둔 다음 궁전을 불태우며 관사를 약탈하고 천자의 물품까지 자신이 가져가 버린다.

그러자 황제는 공경들을 곽사에게 보내 이각과 화해하기를 시도했으나 곽사는 공경들을 사로잡았다. 이때 붙잡한 사람들은 양표, 장희, 왕융, 유연, 사손서, 한융, 선번, 영합, 주준, 양소, 강선 등. 그리고 붙잡은 공경들에게 향연을 베풀며 이각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자 양표는 "아니, 한 놈은 천자를 볼모로 잡고 다른 한 놈은 공경들을 볼모로 잡다니 이게 뭐하는 짓이여"라고 외쳤다가 곽사에게 살해당할 뻔 한 것을 양밀 등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고 주준은 이런 현실에 빡쳐서 화병으로 죽고 만다.

2.2.3 곽사의 공격

그리고 곽사는 이각 휘하의 장포와 모의하여 이각을 공격하기를 꾀하고 4월 25일, 이각을 공격해 곽사군의 화살이 황제의 해가리개에까지 날라오고 이각 자신의 왼쪽 귀에까지 맞을 정도였다. 장포는 방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양봉이 곽사를 막아서자 도망쳐 곽사에게 귀부하였다.

2.2.4 그동안 천자의 취급

이각은 황제 일가와 몇몇 중신들이 붙들고 있었는데, 이 곳에서도 중신들의 취급은 시궁창급이라 황제가 신하에게 무언가를 하사하면 이각이 이를 횡령하고 대신 질나쁜 품목을 대신 내놓았다. 헌제가 이 사실에 분노하기도 하여 양기조온 등이 나서 처우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상대가 이각인데 될 리가 없다. 특히 조온은 편지를 올렸다가 죽을 뻔 했으나 이각의 아우 이응 덕분에 살아난다. 물론 이 와중에 백성 수만 명이 죽기까지 하니 말 다했다.

5월이 되자 보다못한 천자가 황보력을 보내 화해를 추진하니 곽사가 이를 허락하나 이각은 여포를 토벌하고 4년 동안 국정을 보좌하여 삼보를 편안하게 하였는데 어찌 공경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곽사 같은 말 도둑놈하고 같은 취급을 하냐며 황보력을 죽이려 하나 왕창 덕분에 황보력은 죽지 않고 도망가게 된다. 이각은 곧 대사마로 임명된다. 한편 곽사의 경우 대장군을 칭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자칭인 탓에 게임 등의 매체에서는 이각의 부하로 나오는 경우가 잦다.

2.3 천자의 탈출

2.3.1 장안 탈출

195년 6월, 이각의 수하 양봉송과가 이각을 죽일 것을 모의하였으나 일이 누설되자 군사를 거느리고 이각에게 반란하니 이각의 무리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경오일[5]이 되자 섬현의 장제가 와 둘은 화해시키고 일단 천자를 홍농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한다.

황제 또한 옛 수도가 그리워지던 참이라 이각과 곽사에게 선유해서 화해를 시켜 이각과 곽사는 서로의 아들을 인질로 삼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각의 마누라가 아들을 사랑하여 떠나보내려 하지 않기에 아직 화해가 되지 않고 있었고 강족과 호족은 이각이 궁녀를 주기로 했다며 궁녀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천자는 이 때 유애를 시켜 공신들을 물밑에서 지키기만 하던 가후에게 부탁해 이들을 처리해줄 것을 부탁하니 가후는 이각의 주력군인 강족과 호족에게 관직과 금을 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종요한빈이 헌제를 도와 계략을 세워 천자의 탈출을 돕는다.[6] 이렇게 이각군의 세력은 엄청나게 약해지자 이각은 다시 화해를 하기로 해 각각 딸을 인질로 삼기로 하고 화친을 한다.

2.3.2 언제 출발하나?

7월 갑자일[7], 다리를 건널 때 곽사의 군대가 이각의 군사를 막으며 전투가 벌어질 뻔하나 유애와 양기의 힘으로 패릉에 무사히 도착한다. 따르던 자들은 모두 굶주렸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아서 장제가 지위에 따라 차등 있게 음식을 주었다. 오랜만에 나눠주는데 삥땅이 없어! 이각은 지양에 주둔한다.

그리고 곽사는 또 황제를 고릉으로 모셔야한다고 한다. 공경들과 장제가 홍농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크게 회의를 열어서 그것에 관하여 의논했으나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황제가 단식투쟁을 한 다음에야 곽사는 가까운 현으로 가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8월에는 신풍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때 가후는 천자에게 인수를 반납하고 단외라는 자에게 의지하러 떠나 버리고 곽사가 변심하여 오습을 시켜 학사를 불태우고 천자를 미땅으로 끌고가려하니 충집이 이를 알고 양봉, 동승, 양정에게 밀고하여 이를 막으니 곽사는 남산으로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10월 1일 곽사의 수하인 하육, 고승은 승여를 협박해 곽사의 말대로 서쪽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유애는 어서 황제에게 한 군영으로 가라고 하고[8] 황제는 양정과 동승의 호위를 받아 양봉의 진영으로 간뒤 그들의 힘을 빌어 곽사군을 격퇴하고 10월 5일 화음에 도착한다.

2.3.3 지들끼리 싸우는 멍청이들

여기서 영집장군 단외가 계속해서 공신들과 천자에게 물품을 공급하나 양정과 불화가 생기고 같은 편인 충집, 좌령은 단외가 반역하려 한다고 한다. 양표, 조온, 유애, 양소가 단외는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나 동승과 양정이 단외가 곽사를 끌여들였다고 말하자 헌제는 길 남쪽에서 노숙한다.

10일에는 양봉, 동승, 양정이 단외를 공격하기 위해 천자에게 조서를 내리도록 하지만 천자는 단외에게 죄가 확실하지 않다며 거절한다.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독단으로 공격했지만 10일이 넘기도록 함락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단외는 계속해서 식량을 공급하는 등 두 마음을 품지 않으니 결국 황제는 두 세력을 화해하게 한다.

2.3.4 이각, 곽사의 연합

천자는 일단 무사하게 도망친 듯 싶었으나 이각과 곽사가 천자를 보낸 것을 후회하며 다시 연합한다. 이 소식을 듣고 양정은 남전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곽사한테 차단당해 남전으로 가며 리타이어. 거기다가 양봉, 동승과 사이가 나쁜 장제까지 배반하여 다시 천자를 쫓으니 홍농의 조양에서 따라잡히게 된다. 12월, 양봉과 동승군은 홍농의 동간에서 이각, 곽사, 장제군과 싸우나 대패. 그 후에 이각, 곽사, 장제군은 홍농으로 들어가면서 수많은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칼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사성교위 저준은 주위 사람들에게 살 수 있겠냐고 묻는 이각에게

너희들 흉악한 역도들이 천자를 압박하여 겁주고, 공경들에게 피해를 입게 하고 궁녀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게 하니, 국가를 어지럽히는 신하들과 도적들 중에 아직 이와 같은 적은 없었다!

고 외치니 이각이 그를 죽인다. 이 와중에 대장추 묘사, 보병교위 위걸, 시중 주전이 도륙당한다.

천자는 조양으로 도주해 논밭 사이에서 노숙을 할 정도로 비참하게 보냈으며 다시 이각의 군대가 쫓아오자 이번에는 흑산적의 일파인 백파적 수령 이락, 한섬, 호재와 심지어 흉노족의 우현왕 거비[9]를 불러 힘을 합친다. 천자군은 이곳에서 이각군을 격파하여 계속 나아가지만 다시 이각의 군대와 싸워 천자의 군대가 대패하니 궁인들이 도륙당하고 광록훈 등현, 정위 선번, 소부 전분, 대사농 장의 등이 사망한다.

사도 조온, 태상 왕강, 위위 주충, 사예교위 관합도 이각한테 붙잡혀 죽을 뻔 했으나 가후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2.3.5 안읍으로

그 와중에 치중을 잃은 천자는 보행으로 섬현으로 달아난 뒤 북쪽으로가 하수에 도착하게 된다.[10] 이 때 이락이 구해온 배를 타기 위해 비단으로 연을 만든 다음 상홍이 천제를 업어 옮겼으며 배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이락과 동승이 칼로 찍어 손가락을 끊으니 배 안에 잘린 손가락들이 손으로 움켜쥘 정도였다고 한다.그렇게 배를 타지 못한 자들은 이각에게 습격을 받아 궤멸하는데 여기서 앞서 겨우 목숨을 건졌던 위위 사손서도 목숨을 잃는다.

이렇게 힘든 길을 거쳐 소달구지를 타고 안읍에 도착하니 근신 중 따르는 자는 양표, 한융 등 10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천자는 울타리의 문도 닫기지 않는 가시 울타리 안에 거주하며 천자가 조회를 열면 병사들이 보고 웃을 정도로 장수들이 먹는 음식은 천자보다 좋았으며 다투어 표를 올려 벼슬을 달라 하니 송곳으로 문자를 그리거나 상황이 나쁘면 이것도 못 하고 이런 무뢰배들에게 관직을 주니 심부름꾼이나 의사같은 자들이 모두 도위에 임명되게 된다. 이 때 그래도 깜냥에 맞게 관직을 받은 것은 도정후에 임명된 서황 정도. 하지만 한융이 이각, 곽사, 장제 군으로가 드디어 강화를 맺는데 성공하여 궁인과 관리, 부녀자들을 돌려받게 되나 황충(곤충)이 안읍을 습격해 관원들은 먹을 곡식이 없어 대추와 채소를 먹었다고 한다.

2.3.6 그 와중에 장안

40여 일 동안 비어있던 장안은 강자들은 흩어지고 약자들은 서로 잡아 먹으니 2~3년 간 다시는 사람의 흔적이 없어졌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2.4 조조의 등장

2.4.1 낙양으로

해를 넘어가 196년 제일 윗자리에 있어야할 천자가 그 모양이니 통솔이 될 리가 없고 위아래가 어지러워 결국 양식이 다했다. 2월 달에는 내분이 일어나 한섬동승을 공격하는데 이 동승이라는 놈은 도망쳐서 원술군의 장노와 함께 천자를 구원하려는 조조의 세력 조홍을 막고 있었다.

양봉, 한섬, 호재는 낙양을 목표로 길을 나서 7월 달에 낙양에 도착하는데 이때 장양이 식량을 가지고 도로에서 영접하며 낙양까지 인도를 한 다음 그 자신은 아무런 욕심도 없다며 모든 일을 공경대신들에게 맡기고 떠나니 천자는 그를 대사마로 봉한다.

헌제는 옛 중상시 조충의 집에 기거하고 후에 8월 달이 되어 장양이 궁궐의 수리를 완료하자 양안전이라 이름짓고 그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낙양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어서 백관들은 가시나무를 헤치며 담벽 사이에 의지하였고 장양을 제외하고는 물품을 보내는 군주가 없으니 관리들은 굶주리고 곤핍하여 상서랑 이하 관리들은 스스로 밖으로 나가 야생벼를 채취하였으며 굶어죽거나 병사들에게 죽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2.4.2 천자 옹립

이 때, 조조는 조홍의 군세가 동승에게 막히자 먼저 여남, 영천의 황건적 세력을 토벌한 다음 장양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장양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일단은 거부하고 있었는데 이때 동소가 장양을 설득하니 장양은 조조에게 길을 빌려준다.

거기다가 천자군 내부에 불화가 있는 것을 이용, 동소는 양봉에게 편지를 보내 조조를 끌어들일 것을 권한다. 이 소식을 들은 양봉의 부하 서황도 이를 옳다 여기니 양봉은 좋다며 조조를 끌어들이고 결국 조조는 낙양에 도착. 진동장군 비정후, 녹상성사, 사례교위로 봉해지나 조조 또한 이때 시중대숭과 상서 풍석을 죽여버린다. 한섬은 자신의 출신 때문인지 조조가 도착하여 천자를 호위하니 달아난다.

2.4.3 허창으로 천도

천자를 만난 조조는 동소에게 조언을 구하니 동소는 허창으로 천도할 것을 권한다. 그 말을 듣고 양봉에게는 예물을 주며 우리는 천자의 식량을 구하러 노양 땅에 잠시 머문다고 하니 양봉은 예물에 눈이 멀어 그걸 그냥 보내버린다. 뒤늦게 천자가 허창을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양봉은 한섬과 힘을 합쳐 조조를 습격하지만 양원의 골짜기에서 복병에 당해 대패하여 달아나고 서황은 조조에게 항복한다. 9월 천자는 허도에 도착하게 되니 이제서야 종묘사직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3 주요 인물

3.1 관계자

  • 조조: 천자를 옹립하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음.
  • 이각: 198년, 조조가 보낸 단외배무에게 사망.
  • 곽사: 197년, 위에서도 한 번 등장한 자신의 부하 오습에게 배반당해 미땅에서 사망
  • 장제: 196년, 강화를 맺은 후 군량이 부족하여 형주를 약탈하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 그 세력은 조카인 장수가 이어받는다.
  • 장양: 조조와 친분 관계를 맺고 천자에게 잘보여 대사마의 직위도 얻었으나 198년에 양추에게 살해당한다.
  • 양봉, 한섬: 조조에게 대패하자 원술을 의지하러 떠남.
  • 이락, 호재: 일단 하동에 남기는 했지만 얼마 안되어 이락은 병으로 호재는 원수에게 죽음.
  • 양표: 조정에서 또 온갖 일을 당하지만 어찌되었든 살아남음.
  • 가후: 처음에는 단외를 의지하다가 장수를 의지하러 간다.
  • 동소: 결국 조조 밑으로 들어가 열심히 승진한다.
  • 서황: 조조 밑에서 온갖 전공을 세우며 쾌속승진.

3.2 다른 군웅들은?

  • 유비, 여포: 조조와 대치중.
  • 원술: 조조의 천자 옹립 방해에 실패하자, 자신이 천자가 되겠다고 선포한다.
  • 원소, 공손찬: 원소는 국의의 활약에 힘입어 드디어 공손찬을 누르고 있는 시점.
  • 유언: 194년에 장남 유범이 마등의 편을 드니 유언 또한 유범을 지원하였는데 이게 발각되자 장남 유범, 유탄이 사형되고 셋째 유모는 정신병을 앓다가 죽어 4남 유장에게 정치를 맡기고 은퇴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
  • 마등, 한수: 세력 유지.
  • 장로, 유표: 난을 피해 온 유랑민을 흡수하여 세력 확대하기 바쁨.
  • 손책: 강동 정벌.

3.3 그 외의 인물들

물론 너무나도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헌제 탈출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란을 피해 달아난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도 꽤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정은, 후선, 이감은 이 난으로 세력을 키움.
  • 왕충은 배고픔에 시달려 식인을 함.
  • 누규 또한 형주에서 세력을 키우다 위에서 말한 굶주림에 시달린 왕충에게 패해하여 몰락.
  • 소칙의 가족은 난을 피해 북쪽으로 탈출
  • 조전, 영용 등이 난을 피해 형주로 피신.
  • 진기, 진군 부자가 서주로 피신. 진군은 잠시지만 유비에게 임관하게 됨.
  • 사견, 사원 형제가 촉으로 피신.

4 창작물에서

대부분의 경우 연의에서처럼 조조가 이각, 곽사의 군대를 물리치고 천자를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조조전.
  1. 촉에 있는 유언의 장남이다.
  2. 이 일로 유언의 장남, 차남이 죽고 셋째는 미쳐서 죽는다.
  3. 이 기록을 보고 호삼성은 헌제가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은 아니지만 천하를 잃은 것은 권위가 떠나가고 작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는 백성들을 얻을 수 없었다고 평했다.
  4. 보다못한 가후가 말리기까지 했다.
  5. 그런데 이해 6월 초하루가 경자일이기 때문에 경오일은 없다. 오(午)가 자(子)로 잘못 쓰인 것이라면 6월 1일이 된다.
  6. 다만 이 둘에 관해서는 가후와는 달리 정확하게 어떤 일을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7. 역시나 경오일이 초하루라 갑자일은 없다. 子가 午로 잘못 쓰인 것이라면 25일이다.
  8. 곽사, 양정, 동승, 양봉은 각자 군영을 운영하고 있으니 황제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9. 여기서 좌현왕 거비라고 되어있는데 어부라가 195년에 죽은 뒤로 좌현왕은 유표였고 거비는 우현왕이었다. 자치통감의 경우도 우현왕이라 기록했기에 여기서는 우현왕으로 기록한다.
  10. 이락이 말을 타라고 했으나 백관을 버릴 수 없다고 발언했다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