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당나라)

劉仁願

생몰년도 미상

당나라의 장수. 자는 사원(士元).

645년에 고구려 원정에 참전해 공을 세우면서 상주국이 되었고 여양현개국공, 우무위봉명부좌과의도위가 되었으며, 647년에는 행군대총관으로 임명되어 이세적을 따라 설연타를 공격했다. 648년에도 대총관이 되어 요동을 공략하고 649년에 우무위□□부과좌의도위에 임명되었으며, 651년에는 철륵에 들어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절충도위에 임명되었다.

654년에는 총산도행군대총관이 되어 정지절을 따라 하로를 토벌했으며, 656년에는 좌효위낭장으로 옮겼다가 657년에는 과거를 관장하고 659년에는 토욕혼, 토번을 위무했다. 660년에 소정방이 이끄는 백제 원정에 참전했으며, 661년에 소정방의 명으로 사비성을 지키게 되었다.

웅진도독부가 설치되면서 웅진도독이 되었지만 복신이 이끄는 백제의 잔당의 공격으로 포위되었다가 유인궤의 원군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유인궤와 함께 지라성, 윤성, 대산, 사정의 성책을 부쉈다. 유인원이 상주문을 올려 치주, 청주, 내주, 해주의 군사 7천명이 파견되었으며, 7월 30일에 유인궤와 함께 백제의 잔당군을 공격해서 웅진의 동쪽에서 물리치고 진현성을 함락했다.

8월에는 손인사, 문무왕과 함께 육군을 거느려 주류성으로 나아가 함락했으며, 백강 전투에서의 승리로 백제 잔당군이 평정되자 유인원은 당고종이 상주한 일에 대해 이는 모두 유인궤가 한 것이라 이야기했고 상관의는 유인궤와 함께 유인원을 칭찬하면서 유인원에 대해 통제권을 쥐고서도 현명한 사람을 추천할 수 있으니 군자라 할 만하다고 했다.

664년에는 우위위장군을 지내면서 유인궤가 귀국하려는 것을 만류해 그만두게 했으며, 665년 가을 8월에는 사신으로 가서 부여융, 문무왕과 취리산에서 맹약을 맺었다. 668년에는 비열도의 행군총관, 우위위장군으로 있으면서 고구려 정벌에서 머뭇거렸다는 죄에 연루되어 요주로 유배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