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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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志潭

1941년 5월 3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 생애

1941년 5월 3일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1961년 국립체신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1]

낮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중앙우체국에서 일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대학공부를 해야 했다. 대학 2학년 말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돈이 없어 동기의 졸업앨범 복사본으로 졸업을 기념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67년 11월~1970년 9월 군법무관 생활을 마친 뒤, 1970년 10월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였다.

1974년 서울가정법원 판사, 1980년 1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81년 4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되었다.

1981년 9월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장을 역임했고, 1990년 3월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92년 8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92년 9월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1993년 10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두루 거쳤다. 1995년 6월 29일, 그가 삼풍백화점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건물이 붕괴되어 기적처럼 목숨을 건지기도 하였다.

1996년 3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장으로 승진하였고, 1998년 3월에는 울산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10월~2005년 10월까지 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 있었다. 대법관 퇴임 당시 그의 퇴임사를 가지고서 현직 부장판사[2]가 법률신문에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비판에 대해서는 너무 심한 비아냥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별로 깔 것도 없는 글인데 깠다는...

2000년 7월~2005년 10월에는 제13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역대 최장수 중앙선관위장이기도 하였다.

법복을 벗고 나온 2005년에는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가 되었고, 2006년 11월에는 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아들 유도윤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창원지검 검사로 있다.
  1. 당시 체신고 출신은 졸업 후 공무원으로 5년을 근무해야 해 대학에 갈 수 없었지만, 4·19혁명이 일어나고 제도가 바뀌어 입시를 치를 수 있게 됐다.
  2. 신동승 서울 행정법원 부장판사, 사시 2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