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軌
생몰년도 미상
서진 때의 인물. 자는 공도(公度).
태원 사람으로 오경에 박학해 특히 천문과 이기[1]에 밝았으며, 하락[2]의 참위에 대해 정밀하면서 미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도를 신봉해 항상 황정을 복용하면서 하루 세 번 조제해 그 나이가 수백 세에 이르도록 얼굴이 미소년 같았다고 하며, 늘 자신은 먼 조상 윤희가 주 강왕과 주 소왕 때 풀로 된 누각에 살고 있으면서 노군과 만나 경을 토론하거나 주 목왕이 그 누관을 다시 수리해 도 있는 선비들을 초대한다는 것을 듣다가 그 누관에 살게 되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윤희가 자주 찾아와 만났다고 하면서 윤희가 도의 요체를 주어 앉은 자리에서 사리지는 등 변화의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소주, 병주 지역의 집안들이 윤궤를 받들어 모셔 여러 세대를 두고 그 자손들이 윤궤를 보니 그의 얼굴은 항상 50세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나타나기도 하면서 산에 들어가 일 년이고 반 년이고 나타나지 않거나 처자나 식구는 없었다고 하며, 천하의 성쇠치란의 시기와 안위길흉의 소재를 예견하면서 말해 맞지 않는 경우가 없엇다.
300년 12월에 그가 낙양의 성 서쪽 어느 집에 이르러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했지만 사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거절했는데, 윤궤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주인이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해 주식을 차려주면서 윤궤가 타고 온 푸른 노새에게 몇 곡의 곡식을 먹이로 줬다. 윤궤나 노새는 먹지 않았으며, 다음날에 윤궤는 떠나기 전에 그 주인에게 보답으로 신약 한 알을 주어 늘 그 몸에 지니도록 하면서 내년에 전쟁이 일어나 죽어 가는 자가 땅에 가득할 것으로 이 약은 몸과 생명을 온전하게 해 줄 것이라 했다.
그 말대로 301년에 조왕 사마륜의 난을 일으켜 죽은 자가 많았으며, 온 집안에 모두 군대에 입대해 살아 돌아온 자가 없거나 집에 남아있는 이들도 살해당해 살아남은 자가 없었지만 윤궤가 준 약을 가진 그 사람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윤궤는 허리에 칠죽관 수십 개를 차고 다니면서 그 속에 모두 약이 들어있었는데, 그 약은 사람 입에 넣어주면 죽은 자가 즉시 살아나는 것으로 천하에 크게 역질이 번지자 윤궤가 가지고 있는 대추 크기의 약을 얻어 지닌 사람은 그 약을 문에 바르게 되면 온 집안이 그런 전염병에 걸리지 않거나 이미 병이 들었더라도 즉시 살아났다.
제자인 황리가 육혼산에 살고 있어 그 산의 호랑이가 나타나고 이어서 지붕에 괴이한 새가 나타나자 윤궤가 호랑이는 큰 나무를 베어 기둥으로 삼아 집 둘레 사방 각 1리쯤 되는 곳에 하나씩 묻었다가 나무마다 도장을 찍는 것으로 해결했으며, 괴이한 새는 주부(奏符)를 짓는 것으로 해결했다.
어떤 사람이 부친의 상을 당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치를 수 없자 윤궤가 만나보고 탄식하면서 그 아들이 고아라서 곤궁한 처지를 설명하자 불쌍히 여겨 그에게 납을 준비하게 했는데, 그 아들이 수십 근의 납을 준비하자 산속의 작은 집으로 가지고 갔다. 화로 속에 납을 녹여 대추 크기의 신약을 끊는 납 속에 던져 놓고 저어 은으로 만들었으며, 은을 그 아들에게 주면서 집이 가난해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지 못한 것을 염려해 준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사족의 귀한 자제로 공무를 처리하다가 장부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아 관전 백만을 배상할 일이 생기자 농토, 집, 수레, 소 등 전 재산을 팔려고 내놓았다가 팔리지 않아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윤궤가 평소 알고 있던 큰 부자에게 부탁해 백만 전을 꿔 달라고 요청하면서 급한 사람을 구했다가 20일 후에 갚아주겠다고 했다.
부자에게서 백만 전을 받았다가 갇힌 사람에게 주면서 주석 백 냥을 가져오도록 해 그 사람이 백 냥의 주석을 사서 돌아오자 이를 솥에 넣고 끊이면서 녹였다가 신약 한 수저를 그 끊는 주석에 던져 넣자 모두 황금으로 변했으며, 그 금을 저울에 달아 팔아서 백 만전을 마련해 부자에게 갚았다. 윤궤는 뒤에 남양의 태화산에 이르러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관련 사료
- 신선전
- 태평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