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데뷔한 한국의 여자 가수. 1985년 4월 27일생.
예쁘장한 외모와 고운 음색을 갖춘 실력파 여고생 가수 컨셉을 들고 나왔으며, 정석원이 프로듀싱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1집 Leegahee[1]를 발매 하고 데뷔를 했으나
철저하게 망해버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솔직한 직설적인 더불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기까지 한 가사를 곡에 붙인 것 때문에, 1집의 12곡 중 8곡이 방송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2]
타이틀 곡으로 점찍어 두었던 "오빠는 황보래용"[3] 조차도 금지곡 크리.[4] 부랴부랴 타이틀곡을 "바람맞던 날"로 바꾸어 활동을 했으나, 몇 번 활동하지 못 하고 묻혀버렸다(...).
물론 이가희 본인이 방송 출연을 극히 꺼려했다는 얘기도 있고, 라이브가 무척 약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5] 데뷔 이전의 주목에 비해, 너무나 빠르게 묻혀 버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설들이 인구에 회자가 된 것. 이후 이가희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와 최후의 만찬 OST에 참여하는 것을 끝으로 연예계에서 사실상 은퇴하였다.
보컬로서의 평가는 냉정하게 말해서 음색이 가늘고 예쁘다는 점을 빼면 실력파라고 말할 정도의 좋은 보컬은 아니었지만, 1집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6] 현재까지도 아쉬워 하는 팬들이 많다.
후속 앨범을 발매 해 줄것을 원하는 팬들이 많으나, 본인의 의지는 별로 없는 듯했고 결국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7]
느낌상은 정석원의 피그말리온 분위기였는데 정석원이 이후로 전향하며 궤를 달리하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미 015B의 후광은 많이 사라졌을 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혼자 추구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석원의 음악인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은 완벽주의자였지만 연예인이란 관점에선 보면 장호일하고도 인지도[8]나 인기도 나름 눈물나는 판인데, 하물며 잘나가던 연예인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고, 두루 통할수 있는 기본적인 가창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가희의 가창력은 보편적인 편은 아니었기에 이가희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는 힘들었다.
비록 2집도 나오지 않았고 한동안은 게임 노래을 부르고 하다가 사라진 이가희지만, 정석원이 이가희라는 이름으로 된 명반 하나 만들어 준 것만도 개인적인 자랑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여 스텝이 엄청나다. 015B의 정석원과 장호일, 이승환, 유희열, 윤종신, 윤상, 하림, 황성제, MGR등등. 실제로 앨범 스태프란엔 "포이동 드림팀" 이라는 표기가 적혀있을 정도였다.
- ↑ 금지곡 사유가 "설교조의 가사" "특정 연예인 실명 언급" "심한 욕설" "외계어" 등이었다. 10년이 지난 뒤의 가요 시장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당시는 가수들 머리 염색조차 못 하게 했던 시절이긴 했다.
- ↑ 애초에 정석원은 이 곡을 쓸 당시 가장 뜨거웠던 남자배우의 이름을 따서 <오빠는 송승헌>이나 <오빠는 원빈>이라고 짓고 싶었다는데, 송승헌 팬클럽과 원빈 팬클럽의 평화를 위해 이가희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황보래용은 천계영 작가의 오디션에 나온 등장인물로,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바람.
- ↑ 금지곡이 된 사유가 배불뚝이와 대머리 비하(...).
- ↑ 두 가지가 합쳐져서 TV출연이 싫어서 일부러 노래를 엉터리로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 ↑ 1집 제작에 참여한 스텝들을 쭉 생각해보자.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가사와 밀도있는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대중적으로 실패한 원인이라고 한다. 즉 이 차이가 대중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
- ↑ 기독교 관련 연극을 하는 등 계속 무대에 오른 것을 보면 타고난 끼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 ↑ 실제로도 공중파 토크쇼의 고정패널로 나올 정도로의 재치와 입담을 지닌 장호일에 비하면 정석원의 공중파 등장횟수는 진짜 드문 편이었다.